[기사 수정 : 10일 오후 7시]"자, 보세요. (스웨덴 자동차 회사였던) 볼보(volvo)하면 '안전'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안전' 때문에 볼보가 매각됐잖아요. 뭔가 새로운 이미지가 들어가야 하는데, 요즘 자동차 가운데 안전하지 않은 차가 어디 있습니까?"조원홍 현대자동차 마케팅사업부장(전무)의 말이다. 항변에 가까운 어투였다. 10일 오전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그룹 사옥 1층 대회의실. 현대차 그룹이 새로운 글로벌 브랜드 전략을 발표하는 자리다. 이 자리에서 한 기자가 "현대차가 2~3년에 걸쳐 캐치프레이즈만 바꿔서 내놓는 것은 아닌가"라고 물었다. 그는 이어 독일의 대표적인 자동차업체인 폭스바겐(Volkswagen)의 예를 들어가며, "폭스바겐하면 '자동차(Das Auto)'가 떠오르는데, 현대차는 과연 무엇을 내세우겠다는 것인가"라고 따졌다.
조 전무가 답변에 나섰다. 그는 이날 브랜드 전략을 발표했다. 기자의 질문에 다소 아쉽다는 표정이었다. 이어 "현대차는 그동안 자동차 시장에서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시장 경향에 맞춰 재빨리 제품을 내놓는 업체를 일컫는말)로서 역할을 잘해왔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 글로벌 톱5 회사로서 (현대차가) 고객들에게 기대 이상의 경험을 드리겠다고 말씀드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차 고위임원의 항변... "볼보에서 배워야"조 전무는 이어 스웨덴 자동차회사였던 볼보의 예를 들었다. 볼보는 지난 1990년대 자동차 시장에서 '안전의 대명사'로 불렸다. 이 회사는 자동차 안전과 관련된 특허기술을 가장 많이 보유한 회사다. 1999년 경영난으로 미국 포드사에 매각됐다가, 2010년 중국 자동차 회사 지리가 인수했다. 조 전무는 "볼보하면 '안전'밖에 떠오르지 않는다"면서 "요즘 차 가운데 안전하지 않은 차가 어딨나. 그 때문에 (볼보가) 발목이 잡혀서 매각되지 않았나"라고 반문했다.
자동차회사의 고위임원이 공개 석상에서 특정 회사의 이름을 대놓고 거론하면서, 비판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해당 기자가 "볼보의 경우는 규모의 경제를 이뤄지 못해서 매각된 것"이라고 재반박하자, 조 전무는 "그런 부분도 있긴하다"며 한발 물러섰다.
이날 현대차가 내놓은 새로운 브랜드 방향은 '리브 브릴리언트(Live Brilliant)'다. '삶, 생활'이라는 뜻의 '리브(Live)'와 '눈부신, 찬란한' 의미를 갖는 '브릴리언트(Brilliant)'의 단어를 합했다. 따로 우리나라 말로 표현된 구호를 내놓지는 않았다. 조 전무는 "한글로 돼 있는 구호를 만들까 고민도 했었다"면서 "당초 글로벌 브랜드 캠페인으로 시작했고, 하나의 메시지 전달로 효과를 볼수 있다고 판단해 그대로 (영어로만) 쓰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회사쪽이 이날 공개한 60초짜리 영상을 보면, 삶으로서 자동차의 친숙함을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어 "당신의 자동차 안에 빛나는 인생이 있다"는 설명을 깃들였다. 현대차의 광고 밑바탕엔 이미 품질에 대한 자신감이 깔려 있었다. 대신 상대적으로 낮은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총력에 나서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리브 브릴리언트'가 뭐길래... 정의선의 '모던 프리미엄', 성공할까이동주 현대차 브랜드전략실 이사는 "그동안 현대차는 고객들에게 다소 딱딱하게 접근한 것이 사실"이라며 "이제는 감성적으로 우리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를 보여주고, 고객들과 함께 가겠다는 출발점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과연 시장에서 제대로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특히 국내 시장에서 현대차에 대한 제품 가격, 애프터 서비스 등에 대한 불만이 여전한 상황이다. 이날 발표 현장에서도 "자칫 브랜드 마케팅 강화가 제품 가격 상승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는가"라는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또 "현대차 스스로 제품이나 서비스 등에서 먼저 성숙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우선 아닌가"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대해 조원홍 전무는 "세상에 완벽한 브랜드는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어 "지난해 '새로운 생각, 새로운 가능성(New Thinking New Possibilites)' 구호를 내놓은 이후 이번 브랜드 경영을 위해 1년 넘게 준비했다"면서 "우리 제품이 시장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고 보고, 지금 마음을 다지자는 판단을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 브랜드 경영 강화는 정몽구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 부회장은 이미 '디자인 경영'을 내세우면서 기아차의 혁신을 주도했다. 그는 지난해 말부터 정 회장의 '품질 경영'을 대체할 새 화두로 '모던 프리미엄(현대적인 고급화)' 전략을 내놨다. 이 전략을 위한 브랜드 마케팅으로 '리브 브릴리언트'를 내세운 것이다.
조 전무 역시 "(이번 브랜드 전략은) 최고 경영층의 브랜드 경영 철학이 담겨져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또 "그동안 품질경영을 위해 노력했다면, 이제는 고객과 소통하고, 실질적으로 고객들이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회사가 되겠다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올해 내놓을 신차 싼타페와 K9 등과 함께 브랜드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개선시켜 나간다는 계획이다. 현대차 스스로 고백했듯이 브랜드 이미지는 하루 아침에 나아지지 않는다. 단순히 제품 품질이 나아졌으니, 이젠 브랜드도 올리자는 생각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소비자를 대하는 진정성 있는 태도 변화가 우선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