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하게 걸어 나가기 위한 전략이라고, 아주 역설적으로 얘기하면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웃음). 말하자면 내가 대통령을 무사하게 마치고 고개 들고 걸어 나가기 위한 전략이 그겁니다. 검찰이 내 손에서 움직이기 시작하면 나만이 아니고 내 주변 사람들이 전부다 방심을 하게 되고 그리고 어지간한 건 묻으려고 하고, 사고는 묻으면 묻을수록 크게 폭발하거든요."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9월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취임 초기에 검찰과 긴장 관계를 만든 배경'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부림사건' 변호를 계기로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때부터 대통령에서 물러난 이후까지도 검찰과 갈등했고, 결국 검찰수사 와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반면 집권 이후 고려대-영남 편중 인사 등을 통해 검찰을 자기 뜻대로 움직여온 이명박 정권은 퇴임 8개월을 앞둔 현재 검찰의 집중포화 대상이 됐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검찰 포토라인에 선 것을 비롯해 최측근 인사들이 여러 의혹 속에 검찰 수사 대상이 된 상황은 이 대통령이 임기말에 서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최시중] MB는 알고 있었을까... 정치자금법 위반혐의 적용여부 주목
검찰은 피내사자 신분으로 소환한 최 전 위원장에게 알선수재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할 가능성이 높다. ㈜파이시티 측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시기와 명목, 금액 등이 상당 부분 확인됐기 때문이다. 최 전 위원장이 중학교 후배인 이아무개씨를 통해 ㈜파이시티 이아무개 대표의 돈을 받는 장면을 찍은 이씨 운전기사의 사진 2장도 유력한 증거물로 등장했다. 검찰은 최 전 위원장이 돈을 받은 뒤 권혁세 금융감독위원장 등에게 청탁전화를 한 정황도 확보했다.
고향 친구 이상득 의원의 동생인 이명박 대통령에게 서울시장을 거쳐 대선에 도전하라고 권유했던 '멘토'가 수감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퇴임 직전인 2006년 5월에 파이시티에 대규모 점포 건설을 허용하는 시설변경 승인이 난 것도 확인됐다. 이번 사건이 이 대통령에게까지도 직접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최 전 위원장은 또 "돈을 받아 2007년 (당시 한나라당) 대선 경선 여론조사 등에 썼다"며 사건을 'MB 대선자금' 문제로 확대시켜, '떠오르는 태양 박근혜'도 버거운 이명박 대통령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었다. 검찰이 그에 대한 구속영장에 정치자금법 위반을 적용시킬 것인지 주목되는 이유다.
최 전 위원장은 이미 종편특혜, 정연주 전 KBS사장 퇴진 압력 등과 별개로 돈 문제와 관련해 여러 의혹에 휘말린 바 있다. '양아들'로 불리는 정용욱 전 방통위 정책보좌역(해외 체류)의 불법자금 수수의혹, 2009년 7월 미디어법 통과 직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돈봉투 살포 의혹, 2008년 추석(9월 14일) 직전 당시 한나라당 친이계(이명박계) 의원 3명에게 3500만 원 제공의혹 등이 그것이다.
[박영준] 파이시티-민간인 사찰 건으로 자택 동시 압수수색
최 전 위원장이 검찰조사를 받은 25일 대검 중수부와 서울중앙지검은 동시에 'MB 청와대 왕비서관'으로 불린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의 용산 자택을 동시에 압수수색했다. 검찰의 두 수사 부서가 동시에 한 곳을 압수수색한 것은 이례적인 일인데, 대검 중수부는 파이시티 사건으로, 서울중앙지검은 민간인사찰 문제와 관련해 압수수색에 나섰다.
박 전 차관은 민간인 사찰 문제와 관련해 출국금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박 전 차관이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이 장진수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에게 총리실 하드 디스크의 영구삭제를 지시하며 건넨 '대포폰'의 주인과 여러 차례 통화한 내역을 확인하고 출금조치했다고 한다.
검찰은 파이시티 건과 관련해서는 이아무개 ㈜파이시티 대표로부터 2005년 이후 박 전 차관에게 수억 원을 전달해왔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계좌추적 등 물증확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차관이 2007년에 '파이시티 사업이 어떻게 돼 가고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다"는 강철원 전 서울시 정무조정실장의 발언도 알려졌다.
박 전 차관은 두 사건에 대한 관련 의혹을 전면부인하고 있다. 이미 CNK 사건과 이국철 SLS 회장의 로비사건 등의 의혹을 피해갔던 그가 이번 사건도 비켜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상득] 보좌관 박배수, 또 청탁자금 의혹
검찰은 이상득 새누리당 의원 관련 수사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불법자금 수수혐의로 구속돼 있는 그의 전 보좌관 박배수씨의 다른 혐의도 찾아냈다.
울산지검 특수부는 박씨에게 경남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수억 원을 건넨 혐의로 사업가 강아무개씨와 공범 1명에 대해 최근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이들을 찾고 있다. 강씨는 청탁 이후에 실제로 경남은행에서 200억 원을 대출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개 의원 보좌관이 나서서 대출 받기에는 큰 거액이라는 점에서 이 의원이 그 배후에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의원은 이와 함께 영업정지된 프라임저축은행으로부터 구명 청탁과 함께 4억 원을 받았다는 의혹, 박배수씨가 대형로직스로부터 워크아웃 및 검찰수사 청탁명목으로 받은 불법자금 수사과정에서 나온 이른바 '장롱 7억 원'문제, 김학인(구속기소) 한국방송예술진흥원 이사장으로부터 공천헌금 2억 원을 수수했다는 의혹으로 검찰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김인종] 내곡동 사저, 김인종 전 경호처장 소환-시형씨 서면조사
김인종 전 청와대 경호처장은 24일 검찰에 출두해 약 9시간 동안 조사 받았다. 내곡동 MB사저 건립부지 매입 의혹사건과 관련해서다. 검찰은 민주당이 고발한 사건의 피고발인 자격으로 부른 김 전 처장에 대해 청와대 경호처가 이명박 대통령의 아들 시형씨와 이 대통령의 퇴임후 사저 부지를 54억 원에 공동 매입하는 과정에서, 시형씨는 싸게 사는 대신 경호처가 추가 비용을 부담한 게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조사했다.
이 문제로 퇴임한 이후인 지난해 <신동아> 12월호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 내외가 매입 전에 내곡동 사저 부지를 방문한 뒤 OK해서, 매입했다"고 밝혔던 김 전 처장은 검찰조사에서도 같은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검찰은 시형씨에 대해서는 한 차례 서면조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