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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이 조선의 도읍으로 정해지면서 뜬 산이 북악산, 낙산, 인왕산, 그리고 남산이다. 300미터가 채 안 되는 전형적인 도심 속의 낮은 산들이지만 시민들에게 건강과 계절의 즐거움을 선사해주는 데는 이만한 곳이 없지 않나 싶다. 걔 중 이맘때면 개나리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더욱 가보고 싶게 하는 곳이 남산이다.

남산에 오르는 초입길이나 방법은 참 다양하다. 보통 국립극장이나 명동, 남대문시장 쪽에서 걸어서 혹은 자전거를 타고 오르기도 한다. 바쁜 도시인이나 노약자를 위해 케이블카나 버스, 또는 손쉽게 택시를 타고 올라갈 수도 있다.

남산은 올라가는 길이나 방법을 달리하면 다른 산처럼 느껴지는 매력이 있어 좋다. 봄이 무르익고 있는 요즘, 내가 선택한 남산 가는 초입 길은 바로 '경리단 길'이다.

'꺼리'가 많은 즐거운 언덕길 '경리단 길'

 주차장 갤러리, 그 안에 있는 작품도 재미있다.
주차장 갤러리, 그 안에 있는 작품도 재미있다. ⓒ 김종성


수도권 전철 6호선 녹사평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나오니 웬 이국적인 군복을 입은 외국인이 눈을 맞추며 어깨를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덩치 큰 외국인 부부 두 명과 주인을 닮은 개 한 마리가 버스정류장 벤치를 만석으로 만들고 있다. 이곳이 이태원과 한 동네구나 알게 된 것은 이태원우체국, 이태원 동물병원을 지나가면서다. 서울에 살지만 생소했던 '경리단 길'은 지나가는 주민들에게 물어보면 쉽게 알려준다. 초입에 있는 대성교회를 물어봐도 된다.

'경리단 길' 초입에 들어서서 맨 먼저 마주치는 것이 제일시장. 간판까지 번듯하게 나 있는 시장 통이지만 내가 본 시장 중 가장 작은 미니시장이다. 덕분에 겹치는 업종 없이 열너덧 개의 가게가 옹기종기 이웃처럼 모여 있다.

그런데 다른 시장과 달리 상인 분들이 여행자와 눈을 맞추는 게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어떤 할머니는 미소까지 짓는다. 순간 녹사평역 앞에서 마주친 외국 군인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살짝 눈인사를 했던 게 떠올랐다. 외국인 특히 서양인들의 인사습관을 시장 통 할머니에게 받게 되었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아 나도 슬쩍 답 미소를 날렸다.  

 폴란드에서 만든 그릇을 파는 이채로운 가게, 그릇들의 모양이 이국적이고 참 예쁘다.
폴란드에서 만든 그릇을 파는 이채로운 가게, 그릇들의 모양이 이국적이고 참 예쁘다. ⓒ 김종성

시장 입구의 고기 집에서 어느 서양인 가족이 둥글게 모여 앉아 푸짐하게 삼겹살을 구워먹는 모습이 재미있어 흘끔흘끔 쳐다보며 본격적으로 언덕 '경리단 길'을 오른다. 택배 화물차, 택시 등으로 꽉 찬 2차선의 좁은 차길에 뚜껑이 없는 오픈카, 영화에서나 보았던 진한 노랑색의 스포츠카가 섞여 있어 이국적인 기분을 들게 한다.

그런 차들이 주차되어 있던 어느 집 주차장은 흥미롭게도 갤러리로 변신하여 여행자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원하는 작가에겐 무료로 작품 전시를 해준다는 안내 글귀를 보니 동네 분위기가 훈훈하게 느껴진다. 

흥미로운 기분을 더욱 상승시킨 건 폴란드 그릇가게 간판을 보고 나서. 지하에 있는 작은 가게지만 '왜 하필 폴란드 그릇을 가져와 장사를 하게 되었을까?' 의문을 들게 하는 이국적이고 예쁜 그릇들로 눈이 즐거운 곳이다. 일하는 분도 친절하게 내 의문을 풀어주시고 그릇과 도자기는 중국을 위시한 아시아의 전유물인 줄 알았던 내게 또 다른 역사, 문화적 지식을 불어 넣어 주었다.

이처럼 '경리단 길'은 볼거리, 사진거리, 먹을거리가 많기도 한 길이다. 가까운 이태원 번화가에선 못 느꼈던 이국 문화에 대한 친근함과 호기심이 모락모락 샘 솟는다. 좀 쉬어갈 겸 좌석이 서너 개인 작은 커피숍에 들어가, 서울에 이런 길이 다 있다니 속으로 감탄하며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었다. 그때 문득 내가 서울 촌놈이 된 기분이다. 어떤 사물에 호기심이 가면 이름과 뜻이 궁금해지듯 갑자기 '경리단 길'의 이름 유래가 궁금해져 '병영 슈퍼'에 들어가 생수를 사며 물어보았다. 길 입구에 '경리단'이라는 군부대가 있어서 그런 이름이 생겨났단다.    

작지만 큰 고마운 산, 남산

 '경리단 길'을 다 오르니 쉬어가라는 듯 남산 야외공원이 맞아준다.
'경리단 길'을 다 오르니 쉬어가라는 듯 남산 야외공원이 맞아준다. ⓒ 김종성

'경리단 길'을 다 오르면 하얏트 호텔이 보이고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수고했다는 듯 건너편에 산책하기 좋은 남산 야생화 공원과 야외 식물원이 맞아준다. 공원 안 원두막 정자에 누워 있는 사람, 크고 작은 개들과 함께 산책 나온 사람들, 공원 가운데 만들어 놓은 시냇물 가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 바로 밑의 분주한 서울 풍경과 다르게 참 한갓지고 여유로운 봄날의 한때다.

걷기 좋고 넓은 남산 야외식물원 가운데 '서울타워'라고 써 있는 나무 팻말의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보통 '남산타워'로 알고 있었는데 유명하다는 '도쿄타워'에서 자극을 받은 서울시 당국자들이 이름을 바꾸었나 보다. 하늘을 향해 구불구불 뻗어있는 애국가에 나오는 남산 위의 소나무들에 감탄하면서, 정겨운 약수터에서 물도 마셔가며 산길 산책로를 조금 걸어 오르면 길가에 벚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남산 순환로가 펼쳐진다.        

 남산순환도로를 따라 개나리와 벚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나 시민들에게 계절의 즐거움을 선사해준다.
남산순환도로를 따라 개나리와 벚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나 시민들에게 계절의 즐거움을 선사해준다. ⓒ 김종성

 땀을 뻘뻘 흘리며 서울타워를 향해 달려 오르는 자전거 라이더의 모습이 순례자같다.
땀을 뻘뻘 흘리며 서울타워를 향해 달려 오르는 자전거 라이더의 모습이 순례자같다. ⓒ 김종성

이제 남산 순환로 인도를 걸어 서울타워까지 가는 길은 온통 개나리꽃과 벚꽃들의 길이다. 서울의 다른 동네에선 벚꽃이 다 졌다는데 이곳은 그래도 산 위에 있어서인지 봄날의 절정을 달리고 있다. 이 길을 걷는 사람들 대부분이 고개를 위로 향한 채 혹은 입을 반쯤 벌린 채 감탄을 하며 걷는 둥 마는 둥. 순환로 중간에 전에 없던 남산 속 소나무 탐방로와 전망대가 생겨 다시 와보길 기약하게 한다.

인도 옆 차길로 시내버스와 서남 아시아에서 온 외국인들을 실은 관광버스가 연이어 서울 타워를 향해 올라간다. 내 눈길을 끈 건 힘들게 그렇지만 열심히 페달질을 하며 산을 오르는 자전거 라이더. 땀을 뻘뻘 흘리고 숨을 헉헉대는 모습이 왠지 경건해보여 무슨 순례자 같다. 남산은 걷는 사람은 물론 자전거 타는 사람, 버스나 택시를 타고... 누구나 오를 수 있는 고마운 산이다. 게다가 산에 전망 좋은 도서관이 두 개나 있으니 작지만 크게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하산길에서 만난 장충단 공원은 산행을 마무리하기 좋은 곳이다.
하산길에서 만난 장충단 공원은 산행을 마무리하기 좋은 곳이다. ⓒ 김종성

산행의 또 다른 묘미는 하산길인데 이날은 남산 순환로를 따라 국립극장, 장충단 공원 방향으로 내려가 수도권 3호선 전철 동국대입구역에 다다랐다. 공원 안에 작은 폭포, 괜히 건너가고픈 오래된 돌다리, 경로당도 있는 넓은 장충단 공원은 산행을 마무리하기 좋은 곳이다. 장충단 공원 인근엔 유명한 족발집들이 많아 산행 후의 맛있는 식사를 해도 좋겠다.

내게 더욱 좋았던 건 이젠 사라졌겠거니 생각했던 제과점 '태극당'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촌스럽지만 당시엔 무척 세련됐을 이름이 붙은 달달한 아이스크림, 과자들을 후식삼아 먹다가 손에 쥔 냅킨에 써 있는 글자가 눈에 띈다. '菓子 中의 菓子 (과자 중의 과자)' 서울에서 제일 오래되었다는 빵집의 변함없는 추억어린 구호가 집으로 가는 틈틈이 여행자를 웃음짓게 한다.

 수도권 전철 6호선 녹사평에서 내려 - 경리단 길 - 남산 야외 식물원 - 남산 순환로 - 서울타워 - 남산 순환로 - 장충단 공원 - 3호선 동국대입구역
수도권 전철 6호선 녹사평에서 내려 - 경리단 길 - 남산 야외 식물원 - 남산 순환로 - 서울타워 - 남산 순환로 - 장충단 공원 - 3호선 동국대입구역 ⓒ NHN

덧붙이는 글 | 4월 24일에 다녀왔습니다.



#남산#경리단길#벚꽃#남산야생식물원#장충단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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