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역을 강화하겠다는 것은 국민 기만입니다." 26일 광우병 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이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산 쇠고기의 즉각적인 수입중단과 유통 중단 및 수입조건 재협상을 촉구하고 나섰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와 광우병위험감시국민행동, 한미FTA저지범국본에서 주최한 이번 기자회견에는 광우병 전문가와 시민단체 대표, 정치인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오는 5월 2일 촛불집회 4주년 기념 기자회견과 촛불집회를 열 계획이다.
"정부가 약속한 4가지 조치 이행하라" 기자회견에 참여한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의 요구는 간명하다. 지난 24일에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병했으니 국민들과 약속했던 네 가지 조치들을 실행에 옮기라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지난 2008년 5월 8일 주요 일간지 1면 하단에 미국에서 광우병이 추가로 발생할 경우 ▲ 즉각 수입을 중단하고 ▲ 수입된 쇠고기를 전수조사하며 ▲ 미국에 검역단을 파견하여 현지실사에 참여하고 ▲ 학교 및 군대 급식을 중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광우병 발견 이틀이 지나도록 이 네 가지 조치 중 어느 하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처음에는 검역 중단을 한다고 발표했다가 곧 검역 중단을 취소하고 검역 강화로 대응 수준을 완화했다. 수입을 중단할 경우 통상마찰이 우려되며 감염된 쇠고기의 경우 국내 반입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정부 입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박상표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정책국장은 "정부와 보수 언론들이 이번에 광우병에 걸린 소가 젖소이고 광우병 역시 비정형성 광우병이라면서 특이한 것처럼 강조하고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며 "2003년 미국의 첫 번째 광우병이 젖소에서 발생했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산 젖소는 한국에 수입되고 있고 특히 거세된 수소나 불임젖소, 30개월 미만의 젖소들은 식용으로 수입되고 있다. 박 국장은 "캐나다와 일본 모두 젖소에게서 광우병이 발견된 사례가 있다"며 "젖소니까 광우병 문제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비과학적인 견해"라고 일축했다.
박 정책국장은 "비정형성 광우병이기 때문에 사람은 안전하다는 얘기 역시 비과학적"이라고 설명했다. 보통 광우병은 정상적인 프리온 단백질이 변형돼 생기는데, 이때 발견된 변형 프리온 단백질의 분자량이 일반적인 경우에 비해 많거나 적은 광우병을 비정형성 광우병이라고 한다. 박 국장은 "비정형성 광우병 역시 여러 국가에서 보고된 바 있으며 영장류를 포함한 동물 실험에서는 전염이 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역시 "학자들 사이에서 비정형성 광우병 역시 전염성이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의견을 보탰다. 또한 그는 "정부에서는 검역을 강화하겠다고 하지만 도축할 때 소의 뇌를 검사하는 방법 말고는 광우병을 검증할 수 없다"며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검역을 강화하는 것은 대안이 될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 현재 검역권 행사 가능" 전문가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 정부가 이 건과 관련해 검역권을 행사할 권리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통상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지금 한국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중단을 할 수 있는 권리가 확보되어 있음에도 검역중단이나 수입중단을 정부 스스로 포기하고 있는 것"라고 지적했다. 또 송 변호사는 "보수언론에서는 유럽의 다른 국가들도 수입중단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보도하는데 광우병 발생국들과 광우병 미발생국인 우리나라를 동일하게 놓고 비교할 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송 변호사는 "국제법적으로는 WTO위생검역협정 5조 7항에 따라서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더라도 입수 가능한 적절한 증거에 의거 위생검역 조치를 취할 수 있고, 국내법적으로는 농림부 고시에 따라 수입중단을 할 권리가 있다"며 이는 권리일 뿐만 아니라 국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당연히 취해야 할 의무"라고 꼬집었다.
이어 "지금 검역중단이나 수입중단 조치를 할 수 있는 이유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위해 촛불을 들고 시위에 참여해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 덕분에 정부가 다 포기했던 검역주권을 일부라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를 하다 처벌받은 사람들에 대한 사면과 명예회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대표자들은 이명박 정부에게 이명박 정부의 장기인 '선조치 후보고'를 주문했다.이태호 한미FTA저지범국본 공동집행위원장은 "국민 대다수의 안전이 달린 이 문제야말로 이명박 정부가 선호하던 '선조치 후보고'할 사안"이라며 "지금 정부의 대처는 정부와 여당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이해할 수 없으며 국가를 관리하겠다는 기본적인 태도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박석운 한미FTA저지범국본 대표 역시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가치"라며 "일단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즉각 중지하고 국민들이 신뢰하는 전문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안전성을 검증하는 절차를 가지자"고 말했다.
윤금순·박원석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당선자도 "정부가 광우병이 발생하면 즉각 수입 중단하겠다고 몇 번이나 약속해 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며 "즉각적인 검역중단과 수입중단이 이뤄지지 않으면 관련된 정부 책임자들을 직무유기로 고발하고 19대 국회에서 수입위생조건 재협상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미FTA저지범국본은 오는 5월 2일 오전에 촛불집회 4주년 기자회견을 열고 오후에는 촛불집회를 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