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총선이 한창이었던 4월 11일 오후 4시쯤,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심상치 않은 바람이 불었다.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는 고도 1800m 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기상변화가 심하다. 해가 쨍쨍 찌는 더위 속에서도 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지는 등 변덕부리는 기상 때문에 사람들은 가방 속에 우산을 항상 챙기고 다닌다.
이날도 오전부터 한참 덥기에 반팔과 반바지 차림을 하고 학원을 갔었다. 그러나 오후 4시쯤 되면서 매서운 바람이 불어 닥치면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보통 비가 오더라도 공기가 차갑진 않았는데 가을로 접어드는 날씨어서 그런지 공기마저 차가웠다. 추운 비바람을 뚫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갈수록 더욱 거세지는 엄청난 비에 우산은 얼굴만 가려줄 뿐 내 몸으로 파고 들어오는 비를 막지는 못했다.옷은 다 젖고,차가운 바람이 닥치는 바람에 한기는 내 뼈를 파고 들어오는는 듯 했다. 나는 등하교시 현지인들의 이동수단이 '콤비(Kombi, 봉고차 같은 미니버스)'라고 불리는 조그마한 버스를 타고 다닌다. 그날도 역시나 콤비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저씨뻘 되는 현지인이 나무 그늘에서 혼자 비를 맞으며 떨고 있어서 우산을 같이 쓰자고 제안한 뒤 콤비를 함께 기다렸다. 피부색도 언어도 다르지만 같은 인간으로써 그리고 나보다 어른인데 떨고 있는 모습을 못 본척할 수 없었다. 작은 우산 안에 들어온 두 남자는 서로의 체온의 따스함을 의지하며 콤비를 기다렸다. 그러나 갑작스레 비가 쏟아서인지 지나가는 콤비도 많지 않았고, 도착한 콤비도 모두 가득차서 우리를 못 본 듯 그냥 지나갔다.
한참 지나 콤비 한 대가 도착했다. 그런데 콤비 운전수가 "돌라, 돌라"(dollar, dollar)라며 1달러를 달라고 하는 것이다. 원래 차비가 50센트인데 비가 온다고 두 배로 올리다니! 날씨를 악용해 자신들 맘대로 가격을 두 배로 올려 받는 것이 못 마땅했던 나는 돈이 있었음에도 다음 차를 기다리기로 했다.
트럭 짐짝이 된 내 신세
10분 뒤에 조그만 트럭이 섰다. 콤비를 기다리던 현지인들이 모두 몰려들어 차 트렁크에 올라타는 것이었다. 나도 그들처럼 트럭을 얻어 타고 귀가했다. 그러나 공짜는 없다. 이런 차들도 요금 50센트를 똑같이 받는다. 짐바브웨의 통화(通貨)는 US달러이다. 그런데 동전이 없기 때문에 주변 국가인 남아공화국의 '란드'나 보츠와나 '뿔라' 동전을 같이 사용한다.
짐바브웨 사람들은 하라레의 변덕스런 기상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우산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 이유는 우산을 살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 부러지거나 구부러진 우산을 쓰고 다니기도 한다. 그런 우산도 없는 사람들은 비닐봉지를 머리에 뒤집어쓴다.
나를 집으로 데려다 주었던 작은 트럭의 트렁크에는 나를 포함하여 모두 6명이 탔는데 공간이 좁아서 앉지도 못한 채 쭈그리고 가야만 했다. 게다가 트렁크 안은 비로 인한 습기로 찝찝했다. 나는 차를 타고 이동하는 15분 내내 잠겨 지지 않고 계속해서 열리는 고물 트렁크 문을 손으로 꽉 잡으며 갔다.
운전기사와 가까운 자리에 있는 아주머니가 차장 역할을 했다. 그 아주머니는 탑승자에게 각각 50센트씩 차비를 걷어서 운전기사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그 좁은 공간에 처박힌 나는 시선 처리가 애매해서 멀뚱멀뚱 거려야만 했다. 차비는 차비대로 내고 이게 무슨 꼴인가!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 같은 처지이거나 혹은 테러범에 납치된 여행객 같은 신세처럼 생각되었다.
아프리카에서 배운 '행복이란!'그렇게 걱정하며 불편해하는 건 오로지 나뿐이었다. 5분 정도가 지나자 현지인들은 '쇼나어'(짐바브웨 현지 언어)로 얘기를 나누며 뭔가 즐거운 일이 있었던지 밝게 웃으며 재잘거렸다. 쇼나어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나도 그 분위기를 느끼면서 저절로 미소를 지었다.
비닐봉지를 머리에 쓰고 옆의 남편에게 기댄 여인과 남편, 학교를 막 끝냈는지 노트를 손에 쥐고 있는 학생, 직장인인 듯 셔츠와 양복바지 차림의 아저씨 두 명, 시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주머니 그리고, 나를 포함하여 모두 여섯 명의 탑승객은 어느새 비좁고 불편한 차에서도 웃음을 나누고 있었다.
이 차가 없었더라면 아직도 콤비를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마지막으로 승차한 내 뒤에 있던 몇몇은 이 차도 타지 못했었다. 나는 우산이 있어서 비는 덜 맞지만 우산이 없이 기다렸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생각을 하니 불편한 공간이 오히려 감사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불편한 트럭이었지만 비를 막아주는 지붕이 있었고, 창문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비좁은 덕분에 서로의 체온을 나누면서 추위를 달랠 수 있었기에 잠깐이지만 트럭 짐칸의 분위기는 따스했다. 아, 인류애란 이런 것 아닐까! 까맣던 노랗던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것.
전철도 커피전문점도 없는 가난하고 불편한 나라 짐바브웨에서 행복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만약 한국 사람들이라면 짐바브웨의 불편한 상황에 처하면 불평할 것이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웃고 즐겼다. 추울 수 있으니 따뜻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처치 곤란할 만큼 소유를 하고도 불안해한다.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짐바브웨보다 수십 배 부유한 나라, OECD 회원국인 한국은 행복한 나라인가? 카페만 들어가도 따뜻할 수 있는 한국 시민들은 이 따뜻함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나? 문득 의문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