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목숨을 건 77일간의 옥쇄파업에도 쌍용자동차 전체 노동자의 37%인 2646명이 희망퇴직, 무급휴직, 정리해고라는 이름으로 대량해고가 됐다. 1년 뒤 복직을 약속받은 노동자조차 쌍용자동차 해고자라는 낙인으로 상실감, 스트레스로 자살, 돌연사 등에 시달린 3년간 22명이 죽음을 맞이했다. 이 죽음을 추모하며, 대한문 분향소를 지키고 있는 쌍용자동차 노조조합원을 통해 그 심경을 들어 본다. <기자 말>
대한문 분향소에 가면 늘 밝은 얼굴로 분향 객에게 음료를 건네고, 먹을거리를 나눠주고, 주변을 정리하며 순박한 미소를 덤으로 얹어주는 한 사람이 보인다.
쌍용자동차 정비지회 사무장인 김성진(41)씨. 성진씨는 1996년 쌍용자동차에 입사해 만 14년을 일했다. 2009년 대량해고 때 파업에 동참해 해고노동자가 됐다.
당시 성진씨는 조합 간부였고, 정리해고 싸움이라 합의가 안 되면 파업이 불가피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옥쇄파업까지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지금도 산 자(남은 자)와 죽은 자(해고자) 모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며, 옥쇄파업까지 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 "회사가 정말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는지"라고 되묻는다고 말했다.
"사측은 노조를 꼭두각시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노조는 노동조합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고라도 '정리해고' 문제만큼은 해결하려 힘을 다했지만, 회사는 '협의' 자체를 거부했어요. 노조는 배수의 진을 친 심정으로 옥쇄파업에 들어가 사측의 '협의'를 끌어내려 했지만, 사측은 완강히 거절했지요. 용역과 공권력의 이름으로 무자비한 진압을 통해 파업을 분쇄해 정리해고를 단행했고, 정부는 침묵했어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정부는 단순히 침묵만 한 것이 아니라 사건에 직접 개입되어 있더군요."22번째 죽음 "그저 멍해지더라"... 위기감 밀려왔다정비지부 평택지회는 2009년 2월부터 파업을 위한 천막을 공장 안에 치기 시작했고, 회사의 강경한 태도로 파업에 동참하게 됐다. 투쟁이 깨지자 현장 밖으로 밀려났고, 재작년부터 자살 사망 등으로 돌아가시는 분이 생겨났다.
22번째 죽음에 대해 성진씨는 "그저 멍해지더라"고 표현했다. 처음부터 죽음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죽음이 자꾸만 늘어가면서 조금씩 두려움이 밀려왔고, 점점 더 두려움이 커졌다. 무언가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밀려왔다. 재작년까지 투쟁다운 투쟁을 하지 못했다. 결국 그해 11월 산업은행 앞에서 15박 16일 노숙투쟁을 한 것이 전부였고, 법적 절차가 진행 중이었다.
작년 회계 부분에 부정 의혹이 나오면서 투쟁이 본격화됐다. 투쟁준비 과정에 죽음이 발생하면서 투쟁의 정체성이 가려졌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쌍용자동차 노조는 왜 죽어야만 투쟁을 하느냐"는 오해를 하기도 했다. 투쟁의 시기를 놓쳐, 투쟁준비 중에 죽음의 이어졌을 뿐인데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마음이 아팠다.
"이상하게 우리가 투쟁을 준비하고 있으면, 그때 누군가 목숨을 버리는 거예요. 타이밍을 놓치는 거죠. 그래서 분향소를 차리게 되고…. 사람들이 "왜, 너희는 사람이 죽어야만 투쟁을 하느냐?"고 하는 말이 비난처럼 들렸어요. 비난은 아니겠지만…. 무엇보다 투쟁의 정체성이 '죽음'으로 인해 가려지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그는 엄밀히 말하자면 "지난해 12월에 시작한 희망텐트나 투쟁사업장의 연대 투쟁인 희망광장은 공동투쟁이었을 뿐 쌍용자동차가 의지적으로 해 온 투쟁은 아니었다"고 개인적인 평가를 한다.
지난 2일 이윤형 동지의 비보를 접했다. 5일 지부에 보고하고, 주체적으로 대한문에 분향소를 차리게 됐다. 개인적으로는 5일 대한문에 분향소를 차린 것을 쌍용자동차 노조가 주체적으로 투쟁을 시작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21일, 4차 포위의 날에도 죽음 때문에 멈춰서야 하느냐는 우려하는 마음이 있었다고 한다.
"분향소를 차리고 지키는 것은 힘든 일이에요. 보셔서 아시겠지만, 여기에 우리 정비지회 조합원이 5명인데 하나같이 웃음도 없고 말수도 적어요. 내성적인 성격이라 상처를 더 많이 받고, 이겨내기도 더 힘이 들어요. 하지만 이 죽음을 넘어서지 못하면, 투쟁은 이기지 못한다, 죽음을 넘어서 23번째 죽음을 멈춰보자! 설마 20일이야 넘겠느냐는 생각으로 분향소를 차렸어요."사실 22번째만 분향소를 차린 것은 아니었다. 첫 번째 죽음의 비보로부터 20번째도, 21번째도 분향소를 차렸지만, 사회 전반의 공감대를 끌어내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분위기가 달랐다. 3일, 7일… 날짜기 지날수록 분위기가 달라졌다. 분향소를 찾은 시민의 공감대가 확산하면서 판이 커져 '범국민추모대책위원회'까지 꾸려졌다.
분향소를 이어갈 5월 18일 이후 투쟁의 방향이 어떻게 전개될 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는 주체적 투쟁 방향에 시민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연대 폭을 넓혀가게 된 것으로 투쟁에 자신감이 더해졌다. 시민의 더 적극적인 연대가 이뤄진다면, 저들을 길거리가 아닌 일터로 돌려보내는 일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간 우리끼리 투쟁... 시민과 연대할 생각 못했다
"지금까지는 우리끼리의 투쟁이지 시민과의 연대를 생각지 못했어요. 개인적으로 대한문에 분향소를 차리고 난 후 느낀 것은 이제 틀에 박힌 투쟁이 아니라 투쟁의 방식도 변화되어야 한다는 점이에요. 주체적으로 투쟁을 전개하되, 시민과의 공감대를 넓혀가야 한다는 것. 투쟁하는 동지들 즉 주체가 살아서 움직여야 연대의 힘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죠.제 개인적으로 이번 대한문 분향소가 쌍용자동차 지부가 주체적 투쟁을 시작한 시작점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시민이 폭넓은 공감대와 연대를 이끌어낸 것도 하나의 성과라고 볼 수 있고요. 자신의 투쟁사업장도 힘든데, 연대해주는 동지들과 분향소를 찾아주시는 시민께 감사드립니다."
22번째 죽음을 추모하는 대한문 분향소를 시작으로 강력한 투쟁을 전개하기로 했다. 올해 안에 단 하나의 성과라도 낼 수 있으면 하는 것이 그들의 바람이다. 투쟁이 장기화하지 않고, 그들이 하루빨리 공장으로 돌아가 생활인으로 자리를 잡도록 하려면 시민의 더 적극적인 관심과 연대가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4월 26일부터 대한문 분향소 앞 집회는 '범추위' 에서 집회 신고를 한 합법적인 집회입니다. 경찰은 합법적인 집회장에 들어와 현수막의 개수를 문제삼아 침탈하고 기도회 물품을 부쉈습니다. 5월 18일까지 분향소와 집회가 이어집니다. 많은 관심과 연대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