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1일 서울 노원구 월계동의 아스팔트 콘크리트(아스콘)에서 방사능이 검출돼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검출된 방사능이 대체 어디서 왔는지는 아직도 해명되지 않았다. 또 아스콘이 철거되고 방사성 폐기물 분류작업이 시작되기까지 4개월이나 걸렸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노원소방서는 지난 2011년 11월 1일 서울 노원구 월계동 907번지 두 곳에서 기준 이상의 방사능이 검출됐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이후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추가 조사 결과 월계동 277번지에도 방사능이 검출됐고, 4일부터 이 세 곳의 아스팔트 포장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그 뒤 일주일 만에, 원자력안전위원회(안전위)는 자연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고 핵분열 과정에서 생성되는 세슘 137이 월계동 아스콘에서 발견됐다는 분석결과를 냈다. 보도자료에서 안전위는 "세슘 137이 1.82~35.4 Bq/g로 아스팔트 재료에 혼합됐다"고 밝혔다.
안전위는 이 수치가 아스콘을 원자력안전법 및 방사성폐기물관리법에 따라 처리할 만한 정도라고 판단했고, 이미 철거된 아스팔트 330톤을 일반폐기물과 방사능폐기물로 분리하기로 결정했다. 그중 236톤을 노원구청 뒤 공영주차장에, 나머지 94톤을 마들체육공원 내 공사 중인 수영장에 임시 보관했다.
그러면서도 안전위는 "인근 주민들이 받는 연간 방사선량은 0.51~0.69mSv로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민들을 안심시켰다. 이 수치는 원자력안전법에서 정한 일반인 연간 선량한도(1mSv, 인체에 해가 없다고 생각되는 방사선의 양적한계)에 못 미친다는 것이다.
안전위는 지난 2011년 10월 26일 출범한 대통령 직속 상설 기구로, 원자로 관계 시설과 방사성 물질ㆍ폐기물 등의 검사와 규제 및 국내외 원자력 사고에 대비한 핵 안보 업무를 담당한다. 원자력 진흥기구와 원자력 구제기구의 업무가 분리되지 않는다는 국제사회의 지적에 따라 신설된 기구다.
"해외 자재 수입 과정에 방사능 검사 추가해야" 그렇다면 핵분열 과정에서만 생긴다는 세슘을 포함한 이 아스콘은 어디서 왔을까? 안전위는 "국내 도로포장과 관련된 아스콘에 방사성물질 혼입 원인 규명과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위해, 국내 모든 정유사, 철강회사, 아스콘 제조업체 등에 대한 총체적인 실태조사를 금년 말까지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아스콘 제조업체 실태파악과 관련해 안전위의 한 관계자는 25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 통화에서 "아직 실태조사 중이다"고 말했다. "언제쯤 가능한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아직 조사 중이라 말하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지난해까지 실태조사를 마치겠다고 계획했지만 올해 4월 말 현재에도 "진행 중"이라고만 답변하고 있는 것이다.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는 아스콘의 방사능이 해외 골자재에서 유입됐을 것이라 본다. "안전위에 방사능 유입 방지 시스템을 건의했지만 언제나 묵묵부답이다"라며 "골자재들이 어디서 유입됐는지 검찰, 경찰에서 조사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해결방안으로 "해외 자재들 반입 과정에 방사능 검사를 추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폐아스콘 처리에 관여한 노원구청 토목과 관계자는 "방사능이 검출된 아스콘은 경기북부 아스콘협동조합이 조달해 모 업체에서 2000년에 설치한 것으로 이 회사는 2003년에 폐업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유입 원인을 파악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아스팔트 방사능 검출은 월계동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이후에도 서울 강동 마천동 도로와 경북 포항 남구 유강리 송도동 도로, 경주 감포읍 도로 등 세 곳에서 방사능 아스팔트가 신고됐다. 4월 22일자 <국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지난 2월 24일 서울 마천동 도로의 방사능이 함유된 폐아스콘 107톤은 분류되지 않은 채 수도권 매립지에 매립됐다. 전국에 걸쳐 방사능 아스팔트가 발견되고 있다는 점은 방사능 아스팔트의 유입 경로를 밝혀내 차단하는 일이 시급함을 보여준다.
철거 후 폐기물 분류작업까지 4개월이나 지체돼
노원 월계동 방사능 검출 후 안전위의 초기 대응은 빨랐지만 철거된 폐기물 처리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임시 보관 중인 노원구청과 마들체육공원 인근 주민들이 계속 민원을 제기했다. "다른 곳으로 이전해 달라"는 요구였다.
안전위가 지난 1월 19일 폐기물 분류 지점을 노원구 공릉동 한국전력 연수원으로 지정하자 인근 주민들이 또다시 반발했다. 인근에 서울과학기술대학교와 서울여자대학 등이 들어서 있는데다 주택가가 밀집했기 때문이다. 결국 안전위와 노원구청은 폐아스콘을 보관 중인 구청 내 공영주차장에서 분류하기로 합의했다.
지난해 11월 아스팔트 오염 관측 후 추가 조사에 참가한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분류작업이 늦어진 것과 관련해 "아무래도 전례가 없던 초유의 사건이기 때문에 안전위, 서울시, 노원구 등 관계기관이 누가 책임을 지고 어떻게 비용을 부담할 것인가를 합의하는 과정에서 늦어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분류 업체 선정도 쉽지 않았다. 국내 처음으로 시도하는 방사능 처리 작업인 만큼 공포가 컸기 때문이다. 지난 2월 2일부터 분류용역 입찰이 시작됐으나 입찰 업체가 나타나지 않았다. 세 번째 입찰 만에 한 업체가 최저가 입찰을 받게 됐다. 마침내 지난 3월 23일부터 330톤의 폐아스콘이 일반폐기물과 방사능 저준위 폐기물로 분류되고 있다. 방사능이 검출된 지 150여일 만에 폐기물 분류가 시작된 것이다.
"철거한 아스콘 전부 방사능폐기물로 지정해야" vs. "분류하는 것 가능"
방사능이 검출된 폐아스콘을 일반폐기물과 저준위폐기물로 분류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김익중 교수는 "철거된 아스콘을 전부 방사능 폐기물로 지정하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운반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필요한 작업이다"며 "방사능 수치가 높은 부분을 분류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반면 노원 방사능 아스팔트를 최초로 신고한 백철준(43)씨는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방사능은 물과 기름처럼 딱 분리가 되는 게 아니다"며 "지금 분류하는 분들이 연구원들도 아닌데다 세슘은 아주 작은 입자로 존재하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분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백씨는 지금의 분류작업을 "뜨거운 감자이자 골치 아픈 문제인 방사능 아스팔트를 어떻게든 빨리 처리하고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꼼수"라고 꼬집으며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굉장히 위험한 작업이다"라고 말했다. 백씨는 대신 "철거한 아스콘 모두를 방사능폐기물로 지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자는 25일 오전 서울 노원구청 뒤 폐아스콘 분류현장을 찾았다. 3미터 높이의 펜스에는 방사능 측정 상황판이 걸려 있었다. 이날 상황판에는 25일 아닌 24일자 측정수치만 기록돼 있었다.
입구 안으로 들어가니 일반폐기물로 분류된 도로 폐기물이 높이 2M, 길이 30M로 길게 쌓여 파란 천막으로 덮여 있었다. 분류 작업장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었다. 대신 시민들이 참관할 수 있도록 만든 유리창이 있었다. 유리창 안에는 컨베이어 시설이 있고 방사능 폐기물로 분류된 더미들이 한쪽에 쌓여 있었다.
기자가 '분류과정에서 먼지나 분진에서 방사능이 나오지 않느냐?'고 묻자 업체 관계자는 "분류 작업 도중에 나오는 먼지에 방사능이 함유돼 있을 수 있다"며 "이것들은 배기정화시스템을 통해 환기되며 환기된 공기는 감시장치를 통해 즉각 그 수치가 측정된다"고 답했다.
현재 폐아스콘은 98% 분류됐고 원자력안전위원회의 2차 정밀 조사를 끝으로 최종 처분장으로 보내진다. 이 폐아스콘은 현재 건설 중인 경주 방사능폐기물처리장으로 보내질 가능성이 높다. 일반폐기물로 분류된 도로 폐기물은 재활용은 불가능하고, 사회에 노출되지 않게 매립지 등으로 보내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