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틴스프링스(Curtin Springs) 야영장에서의 아침을 에뮤가 헝클어놓았다. 원래 겁이 많은 녀석이어서 사람에게 접근을 안 하는데, 여기 터줏대감인지 남의 집 캠핑트레일러 발판도 쪼아 먹고,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더니 급기야 우리 식탁까지 와서 간섭이다. 타조 사촌 격인 에뮤는 못생긴 편인데, 가까이서 보니 참 얄밉게도 생겼다.
참다 못한 최 감독이 녀석을 졸졸 쫓아다니며, 촬영을 시작했다. 에뮤가 이리저리 회피해도 끝까지 따라가 캠코더를 코 밑에 들이댄다. 학을 뗐는지, 에뮤가 멀리서 배회할 뿐 다가서질 않는다. 녀석, 우리 최 감독을 쉽게 봤다가 큰 코 다쳤다. 밥 먹는 시간을 방해받는 게 싫어 쫓아버리긴 했지만, 미안하긴 하다. 어쩌면 녀석의 동네에 들어와 귀찮게 한 건 우리일지도 모르는데….
내 삶에는 브레이크가 필요해약 700Km 떨어진 쿠버피디(Coober Pedy)로 이동을 준비하다 발견한 미쯔비시 '파제로'가 낯익다. 설마했는데, 달하우지스프링스에서 본 잉꼬 커플의 차가 맞다. 바로 옆에서 야영을 했는데도 몰랐다니…. 인연이다 싶어 아는 체를 하니, 무척 반긴다. 카타추타와 울룰루의 해넘이를 보았냐고 묻는 그들의 표정은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얼굴이다. 그러더니 남자가 물었다.
"에어즈 락(울룰루)에 올라가 봤나?""아니, 원주민들이 원하지 않는 것 같아서….""우리도……."통하는 바가 있다. 오다 가다 스치는 길 위의 인연이지만, 오래 지속해도 좋을 사람이 있다. 달하우지스프링스에서 이들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런 예감이 있었다. 참하고 진실해 보이는 인상과 젊은 연인이 갖는 어떤 풋풋한 기운. 서로가 지났던 길에 대해 공감을 나누고, 앞으로 지날 길에 대한 정보를 나눴다. 비슷한 시기에 우리는 프레이저 아일랜드에 있었고, 달하우지스프링스 야영장을 공유했으며, 그들이 지나 온 쿠버피디를 향해 가려하고 있다.
연인 사이인 31살의 매튜(Mattew Cornford)와 25살의 제니퍼(Jenifer keppie)는 둘 다 간호사로 영국인이다. 1년 간 직장을 쉬고, 호주 전역을 차로 여행 중이라고 한다. 정말 부럽다. 한참 일에 묻힐 젊음의 한 시기를 오로지 자기를 위해 쓰겠다고 결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용기가, 그럴 수 있는 그들의 사회가 부럽다. 이제 겨우 주 5일 제의 단맛을 알아가는 우리네와는 먼 곳의 일처럼 느껴진다.
내게도 이런 기회가 올까? 아니, 나는 이런 기회를 만들 수 있을까? 인생의 어느 한 부분에 브레이크를 걸고 싶다. 관성대로 살아가지 않도록 잠시 멈추고 싶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유보하는 그런 삶 말고, 제대로 오늘을 살아 보고 싶다.
시동을 걸고, 내비게이션을 켰다. 475km직진 후 우회전 어쩌고……. 바로 내비게이션을 껐다. 아웃백에서의 모든 길이 그러했듯, 쿠버피디까지도 그냥 앞만 보고 가면 된다는 뜻이다. 얼마쯤 가다가 마운트코너를 다시 만났다. 울룰루라는 주연에 가린 멋진 조연 마운트코너. 울룰루를 찾아가느라 그냥 지나치던 날, 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내 너를 잊지 않으마 다짐했었다. 오늘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운트코너를 향해 차를 몰았다.
그러나 나는 순진했다. 눈에 보인다하여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아직도 깨닫지 못한 것이다. 마운트코너로의 접근로를 찾기 위해 50Km쯤 달렸으나 어찌된 일인지 많이 가까워진 느낌이 없다. 여전한 크기 그대로다. 더 들어간다면 오늘 쿠버피디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다. 선택의 기로에서 또 마운트코너를 포기했다. 오늘 꼭 쿠버피디에 가고 싶다는 욕심을 놓을 수 없었다. 정작 짧은 여행의 브레이크조차 써먹지 못하는 자가 인생의 브레이크를 운운하다니…. 나름 아쉬운 마음에 마운트 코너를 배경으로 달리기를 했다. 심장이 터지는 흥분 속에 그를 기억하기 위해.
성업 중인 폐광 쿠버피디쿠버피디로 가는 길은 건조하다. 단지 대기만 그런 게 아니라 마음까지 바삭바삭 말라버릴 듯 무미건조하다. 제한속도 130Km를 알리는 표지판이 획 스쳐가지 않는다면, 얼둔다(Erldunda) 로드하우스에서의 차 한 잔과 말라(Marla) 로드하우스 풀밭에서의 샌드위치 점심이 기억의 한 점을 찍지 않았다면, 자동차는 그저 풍경의 런닝머신 위에 서 있는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세트장처럼 풍경은 차창으로만 스치고 지평선은 고정된 채 한 번도 거리를 좁히질 않는다.
나는 이 무미건조한 길이 사랑스럽다. 드물게 마주치는 차와 운전대에서 살짝 검지손가락만을 펴 수인사를 나누게 하는 이런 단조로움이 마냥 좋다. 영원처럼 여정이 이어질 듯 여운을 남기는 그런 길이 늘 그립다. 9시간도, 700Km의 길도 흘러 쿠버피디를 알리는 표지판 앞에 섰다.
"오팔의 수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Welcome to the capital of opal) "쿠버피디는 아버지를 따라 금을 찾아나섰던 소년이 1915년 오팔을 발견한 이래 오늘날까지 이곳은 오팔과 번영을 함께 한 오팔의 왕국이다. 전세계 오팔의 95%가 호주에서 생산되는데, 그 중 70%가 넘는 양을 쿠버피디에서 감당하니 이런 표현도 무리는 아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이 작은 도시 주변은 오팔 광산에서 파 올린 폐석이 곰보자국처럼 쌓여 있다. 개미굴이나 달의 분화구 같은 구멍이 연이은 삭막한 풍경은 황폐한 미래를 그린 <매드맥스>가 왜 이곳에서 촬영되었는지를 알게 한다.
역설적이게도 성업 중인 광산이 만들어 낸 폐석의 흔적이 폐광의 느낌을 자아낸다. 이 도시('도시'라기엔 민망한 '마을'의 수준이지만)의 풍경은 '왜! 이리도 우리네 태백'의 그것과 닮아있는지…. 파먹고 남은 무더기의 쓸쓸한 그림자 때문일까? 아니면 함석 울타리와 지붕으로 엮인 광산촌 특유의 건물들 때문이었을까? 먼 청춘의 기억을 더듬는 중년처럼 어쩐지 쿠버피디는 불안과 노쇠의 감정을 머금고 있어 우울한 분위기를 풍긴다.
동네에서 가장 높은 언덕인 빅윈치(The Big Winch)에 올라, 일몰을 목도하고서야 다소 안정의 마음을 찾는다. 사람과 풍경이 실루엣으로 남고 온갖 색이 그저 흑백으로만 버무려지는 시간이 되어서야 어색과 우울은 잠시 안정과 쓸쓸함에 덮였다. 무슨 생각들일까? 우리 네 사람, 저마다 다른 방향에서 다른 감정에 잠겨 있다.
지나온 길을 응시하는 것일까? 아니며 가야할 길을? 그도 아니면 지금 이 자리, 이 마을을 느끼는 것일까? 우리는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가? 시드니에서 와서 퍼스로 갈 것이며, 당장은 그레이트빅토리아 사막에 들어갈 것이다. 인생은 여행과 같다고? 여행의 여정은 이토록 명확한데 삶의 길은 왜, 이리 흔들리는 것일까.
어둠이 사물의 형태를 다 지웠을 때에야 빅윈치를 내려와 식당을 찾았다. 쿠버피디에는 이주한 그리스인이 많아 그리스 식당이 몇 눈에 띤다. 먼 길을 달린 노고와 무사히 도착한 것에 관해 간단히 축하를 했다. 그리고 이제 다가온 1350Km 그레이트빅토리아 사막 횡단을 위한 만찬을 그중 한 곳에서 가졌다. 사는 게 별건가. 며칠의 야영 뒤에 맞는 뽀얀 접시 음식 몇이면 그만인 게지. 민망하리만치 깨끗하게 그릇들을 전부 비운 아내가 그런다.
"꼭 떡밥 같아. 사막에 들어가기 전에는 이렇게 배불리 먹이지."쿠버피디는 목적지이면서 그레이트빅토리아 사막을 위한 경유지였다. 아직 쿠버피디를 구경하지도 않았는데, 다들 마음은 그레이트빅토리아에 대한 부담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기대와 불안의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지하 세계를 경험하다 아침. 지하 동굴 숙소에서 눈을 떴다. 거칠게 판 사암 동굴에 대강 벽을 세워 방음조차 되지 않는 숙소지만 나름의 맛이 있다. 흡사 프랑스 동부에서 경험한 마지노 요새와 같은 느낌인데, '더그아웃(Dugout)'이라는 쿠버피디의 지하가옥도 1차 대전에 참전했던 퇴역군인이 벙커생활의 경험을 살려 만들기 시작한 이래 유행한 것이라니 비슷할만도 하다.
독특한 지질로 인해 습기가 차지 않고 실내온도가 23도 가량을 유지하는 땅속 집은 여름철 온도가 50도에 육박하는 이곳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였을 것이다. 오죽하면 '백인들의 굴'을 뜻하는 원주민 말인 '쿠파피티(Kupa piti)'가 도시 이름이 되었을까. 땅값과 굴착비용을 합하면 우리 돈 수억 원 이상이 들지만, 더그아웃을 갖고자 하는 쿠버피디 주민의 열망은 계속되고 있다.
이곳은 주택뿐 아니라 호텔, 상점, 교회도 다 땅을 파고 들어서 있다. 성 베드로와 바울 교회(St.peter & Paul Catholic Church)도 외양은 돌을 쌓아올린 작은 건물이지만 실제 예배공간은 사암을 파고 들어간 굴 속이다. 겨우 30여 개가 될까한 의자들이 정갈한 조명 아래 놓여있는 모습이 정감있다.
로마 시대 박해를 피해 지하무덤에서 예배를 보던 카타콤베가 떠오른다. 비록 박해가 아닌 더위를 피해 파고 들어온 공간이지만 바벨탑을 연상케 하는 거대교회의 위압을 뛰어넘는 어떤 매력이 있다.
쿠버피디의 지하세계를 느끼기 위해 '우무나 오팔광산박물관'(Umoona Opal Mine & Museum)에 들렀다. 쿠버피디의 특징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짧은 기록 영화와 함께 오팔광산 채굴 체험을 하거나 더그아웃 견본주택을 구경할 수 있다. 싱크대와 냉장고가 비치된 부엌, 편안한 간접조명이 있는 거실, 달랑 침대 하나 뿐인 침실로 구성된 더그아웃은 소략하다기보다 아늑한 느낌을 먼저 준다.
내가 묵은 숙소의 요새같은 느낌이 아니라 꼭 일반 주택에 바위 내장재를 붙인 것처럼 멋스럽고 푸근하다. 여기 살게 된다면 꼭 이런 집을 짓고(사실은 '파고') 싶다. 환기 파이프 하나를 제외하면 모든 벽이 바위인 땅속 공간의 적막과 단절을 몸으로 느껴보니, 왜 옛 선사들이 동굴을 수도처로 삼아 정진했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마늘과 쑥 한 줌이면 짐승의 티도 벗을 것 같은 그런 공간이다.
우무나 박물관의 본색은 오팔 상점이다. 지하가옥을 보든, 오팔광산을 보든 궁극은 오팔상점으로 인도된다. 동서양을 뛰어넘은 만국 공통의 상술. 아내와 경숙은 오팔의 현란한 광채에 팔려 영혼을 잃었다. 내 생애 이토록 진지하게 몰입하는 아내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던가. 색 있는 돌에 매겨지는 가치를 메마른 남정네들은 잘 모르지만, 아내는 비실용적인 것이야말로 실용이 상상할 수 없는 무한의 가치를 지녔다 말한다. 그래도 잘 모르겠다.
10월의 탄생석이라느니, 보는 각도에 따라 빛을 달리한다느니,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해도 내겐 그저 '돌'이었다. 망연자실, 시간을 잊은 여인을 기다리는 같은 처지의 최 감독도 마찬가지 생각일 것이다. 심슨 사막의 특이한 언덕 지형을 보고도 그저 '돌무지'로 치부했던 양반이니까. 그런 맥락에서 모든 남성은 최 감독식 감성의 소유자다. 그리고 그 최 감독식 감성의 효용가치는 높다. 덕분에 오팔 이미테이션이 박힌 찻 숟갈 하나를 획득하는 것으로여인들의 쇼핑은 끝났으니까.
박물관을 나오다 한국 청년들을 만났다. 셋이서 기아 카니발로 호주 전역을 여행 중이라는데 생숫값 아끼려 수돗물을 받아먹고 잠도 차 안에서 구겨 잔단다. 짠한 마음에 당장 이들을 데리고 존스 피자 바(John's Pizza Bar)로 갔다.
마음 한 켠 안쓰러움도 있지만 이리 다녀도 전혀 누추해 보이지 않는 젊음에 대한 부러움, 내 젊은 날 여행지에서 받았던 고마움에 대한 보상 심리가 작용했던 것 같다. 먹성 좋은 젊은이들이 손사래를 칠 때까지 피자를 먹였다. 누군가에게 대접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이토록 기분 좋은 일일 줄이야.
이 셋은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끝내고, 여행 중이란다. 귀국길에도 저마다 다른 나라를 더 여행하려는 계획들이 있어 격려해 주었다. 돈은 앞으로도 계속 벌 것이지만 인생의 이때는 다시 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심 마흔 줄 가까운 나이에도 영혼이 젊으면 젊은 것이라 자부하며 살았건만, 생물학적인 젊은 육체와 밝고 긍정적인 정신의 진짜 젊음 앞에선 내가 어쩐지 작아지는 느낌이다. 그래도 마냥 든든하다. 우리 뒤에 이런 젊은이들이 있어서.
여정도 다르거니와 온로드로 여행하는 그들과 오프로드를 지향하는 우리 사이의 간극으로 일행이 될 수는 없었지만 피의 끈끈함을 느낀다. 작별의 아쉬움을 달래며 소주를 선물하니 그들의 포장김치를 내준다. 벼룩의 간을 내먹는 심정으로 김치를 받았다. 한국가게를 만날 수 없는 아웃백의 오지에선 너무도 간절하고 그리운 맛이었으므로. 김치를 먹을 때마다 너희를 떠올려주지. 그리울 이들이여 안녕!
지구 속 또 다른 행성 브레이크어웨이 쿠버피디 북쪽 30여Km 지점의 브레이크어웨이(Breakaways)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촬영되거나 <매드맥스>처럼 3차 대전 이후의 폐허를 묘사할 때 활용됐던 무대다. 생명체가 없는 어느 행성에 불시착한 느낌이 이러할까. 채색된 지층과 바삭바삭하게 말려진 흙이 여느 사막과 다르게 낯설다. 생명의 기운은 느낄 수 없고 오직 바람만이 옷과 살을 뒤흔드는데 그 속에서도 건조함이 묻어난다.
7000만 년 전 바다였던 기억도 다 잊은 채 브레이크어웨이의 바람은 갈증만을 실어 나른다. '광야'가 주는 '야생성'과 '색기(色氣)'는 다 접어둔 채 일체무념의 공간이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신', 혹은 '깨달음'을 이야기할 때의 '광야'도 브레이크어웨이의 기운을 닮은 공간이리라.
브레이크어웨이 가까운 곳에서 '도그펜스'(The Dog Fence)를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개(딩고)를 막기 위해 세운 세계 최장의 울타리다. 지독한 독선. 무한한 광야를 단절하는 장애물 앞에서 인간의 집착과 집념을 본다. 동부 해안 서퍼스파라다이스에서 시작되어 세두나까지 이어지는 5300Km의 철망이 양을 사이에 둔 딩고와의 싸움 때문이었다니. 평생을 238Km 철책에 막혀 단 한 번도 육로로 대륙에 나아가 본 적 없는 반도인의 눈에 대지를 막은 울타리는 같은 맥락으로 오버랩 된다.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아 스스로 자기 한계를 그었듯 이 철망도 사람의 마음을 가두는 감옥이 되어가지는 않을까. 딩고는 막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무언가 더 큰 걸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1885년 완성한 이래 해마다 엄청난 유지보수비가 들어가는 저 울타리는 과연 딩고를 다 막아내고 있기는 하나?
차를 돌려 쿠버피디로 돌아왔을 때, 마을의 황량함을 덮어줄 어둠이 다시 내리고 있었다. 내일 그레이트빅토리아 사막 진입을 위해 세 액체를 가득 채웠다. 연료, 물, 그리고 술. 언제 리쿼스토어를 만날지 모르는 여정인지라 맥주와 포도주를 한아름 샀다. 맥주는 낮의 갈증을 풀고 물을 대체할 수 있어 좋고 포도주는 추위가 밀려오는 밤의 담소를 위해 좋다. 앨리스스프링스에서 부정맥으로 힘들어했던 최 감독이 약 대신 포도주를 먹고 안정이 된 이래 포도주는 필수품이 되었다.
우리 차를 향해 무리에서 이탈한 애보리진이 다가와 돈을 요구한다. 낮에도 그렇지만 밤엔 특히나 약에 취한 듯,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는 애보리진들을 많이 보게 된다. 돈을 줄 수 없다고 말했고, 화를 내는 그의 눈동자에서 체념과 공허를 읽었다. 그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몇 푼 동전을 쥐어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의 처지를 위해 아무 일도 해줄 수가 없어서다. 그리고 이성과 다르게 본능은 피부색이 검은, 일정한 직업 없이 술에 취해 흔들거리는 이들과 거리를 두고 싶어 해서.
앨리스스프링스처럼 이곳도 원주민은 그들의 땅이었던 곳에서 변방인의 삶을 살고 있다. 과거 원주민에 대한 정책에 대해 정부가 사과하고 그들의 복지를 위해 경제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지만 정작 애보리진들에게 필요한 건 삶의 정체성 회복이었다. 사방의 벽을 감옥으로 여기는 사람들, 땅의 기운을 느끼며 자유로운 방랑으로 살아가던 이들에게 정주생활이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삶의 목적을 잃은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알콜에 중독되어 잠시 현실을 잊거나 걸인이 되어 거리를 배회하는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내겐 해법이 없다. 호주 정부처럼. 개인 소유 관념이 없는 애보리진 문화를 존중한다고 내 차 유리를 깨고 카메라를 집어가는 저들을 허용할 수는 없잖은가. 핀케, 앨리스스프링스, 쿠버피디…. 아웃백의 모든 도시와 마을들은, 아니 호주라는 나라는 이 원주민 문제를 나와 같은 심정으로 대하고 있지 않나 싶다. 이해는 하되 현실은 현실이라는. 그래서 보아도 안 본 척, 있어도 없는 척. 무관심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건 아닌지.
숙소에 돌아와 내일의 여정을 생각했다. 홀에서 밤새 마시며 떠드는 서양인들 때문인지 사막에 대한 설렘과 염려 때문인지 밤새 뒤척였다. 좀체 날은 밝지 않았다.
호주 아웃백 여행 여정
덧붙이는 글 | 2009년 7월~8월 사이에 다녀온 여행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