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2시 450명 정원인 홍익대학교 가람홀은 서울 신촌지역 대학생들로 가득 찼다. 수업시간임에도 많은 학생들이 워크숍에 참여했다.
신촌지역의 3개의 학교(서강대, 연세대, 홍익대) 총학생회단은 3월부터 회의를 구성해서 주거문제해결에 논의했고 '정책워크숍'을 준비해왔다고 한다. 이들은 4월 19일 '대학생주거네트워크'를 발족시켰다. 그리고 5월 3일, 박원순 서울시장, 7명의 전문가 패널, 그리고 각 대학 총학생회장이 홍대 가람홀에서 워크숍을 진행했다.
사회를 맡은 홍익대 부총학생회장 김아름씨는 "대학생들이 (서울시장에게) 정책제안을 하고 정책토론을 요청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는 말로 워크숍을 시작했다.
박원순 시장은 "대학생이 주거문제 때문에 너무 큰 고통을 당하는 것 같다"고 인사말을 시작했다. 그는 "떠들면 (하숙집에서) 바로 쫓아낸다는 말들도 있고 (대학생들이) 정신적으로 받는 고통이 클거라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기 공간 한 평 없다는 것이 우리 시대의 비극"이라며 "서울시가 워낙 과밀한 지역"이지만 "노력하면 길이 과연 없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말을 이었다. 박 시장은 "여러분이 미래를 꿈꾸는 일에 이런 물리적인 일로 장애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인사를 마쳤다.
고시원에서 살고 있는 한 서강대 학생은 "고시원 자체가 너무 좁고, 창문이 없으며 빨래 널 공간도 없는데다가 방음도 안 된다"며 열악한 주거환경을 토로했다. 그리고 "집에 가면 편해야하는데 독서실처럼 조심스럽다"며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홍익대 3학년 박아영씨는 "자취생활 3년 동안 3번 이사를 했다"며 주거가 불안정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학교에서 가까울수록 집세가 비싸 부담이 되기 때문에 이사를 갈 수밖에 없었다"며 "그때의 집세가 지방에 있는 가족 전체의 거주비와 비슷했다"고 말했다.
'하숙집 DB' '종점 기숙사'... 대학생 주거문제 해결책 제시
발제자로 나선 연세대 총학생회장 김삼열씨는 기존의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의 대학생 주거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제안했다. 집주인이 정보를 독점하니 탐색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게다가 집주인들의 반상회 등으로 일종의 '담합'이 이루어져 학생들만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이미 연세대 총학생회는 80여 개의 방의 정보를 데이터화했다. 김씨는 "(주거정보를) 데이터화해서 지속적으로 정보를 갱신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그렇게 될 경우 "정보접근이 용이하고 기존의 하숙집 가격이 오픈되기 때문에 경쟁시장이 된다. 그렇게 되면 임대료의 안정화가 될 것"이라며 첫 번째 발제를 마쳤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서강대 총학생회장 고명우씨는 "지방에서 상경한 대학생들이 등록금과 주거비의 이중고에 처해 있다"고 말하며, "기숙사가 가장 손쉬운 해결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학교근처니 안심이 되고 교통비도 안 들고 밥값도 싸다"는 근거를 들었다.
하지만 "지방 출신 수도권 대학생 15만5000여 명 중 약 2만7000명만이 기숙사에 들어간다"며 "수도권 대학생 중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의 비율이 38%에 달한하지만 서울 내 대학의 기숙사 수용율 17%는 너무 적다"고 비판했다.
고씨는 "등록금은 심의위원회에서 심의하는데 기숙사는 그런 과정이 없다"며 기숙사 건설과 관련해서 민주적인 절차를 요구했다. 이에 그는 '기숙사심사위원회'를 제안했다. 이 역시 공급자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주거문제의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제안이었다.
고씨는 기숙사 건설 부지에 대한 방안으로 종전부동산과 버스 종점지역을 활용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는 "국가공공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남은) 터를 국가가 매입하려고 준비하고 있으며 감정가액으로 판매된다"며 "이런 부지를 서울시나 대학에서 매입하여 임대주택 등을 건설하는 방안이 있다"고 방안을 제시했다.
그리고 "버스 종점지역은 땅값이 낮아 매입하기 쉽다"며 "버스 종점이니까 교통도 편리"하기 때문에 기숙사, 임대주택 건설지로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버스 노선을 정하는 주체가 서울시"라며 "버스 종점에 기숙사나 임대주택을 짓고 각각 대학에 맞게 버스 노선을 조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학생들이 아직도 이런 상황에... 기성세대 대신해 사과드린다"
전문가 패널로 참석한 교육과학기술부 교육시설지원팀의 조일환 과장은 "(주거문제에) 충분히 지원 못했던 부분이 아쉽다"며 "국민주택기금, 사학재단기금을 저리에 활용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서울시에서 기금을 가져와 활용하면 주거환경이 좋아질 것"이라고 지원 방향을 제시했다.
이어서 조 과장은 "대학연합 기숙사를 고려하고 있다"며 "사용하지 않는 국공지 중 대학 밀집지역 위주로 고려하고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서울시 주택정책과의 여상건 과장은 "서울시에서도 기숙사 문제를 의지를 갖고 접근해가고 있다"며 "(주거정보) DB를 어떻게 공익과 연결시켜서 서울시민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게 할 것인가가 고민의 핵심인 것 같다"고 밝혔다.
서울시 도시계획국 시설계획과의 장영환 과장은 도심 내 기숙사 확충을 위해 "층수를 더 높게 짓는 것, 녹지관계를 세분화시켜 검토하기, 인접 건물과의 거리로 인한 높이 규제 완화를 검토하겠다"고 도시계획 차원의 방침을 밝혔다.
첫 인사 후 줄곧 객석에서 워크샵을 경청하던 박원순 서울시장은 자신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로 소감을 밝혔다. 그는 "고등학생 때부터 서울 생활을 했다. 독서실에서 몇 년 지냈는데 아예 잘 데가 없어서 책상에 엎드려서 잔 적도 많았다"며 "그게 1970년대인데 아직도 이런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에 대해 너무나 죄송한 일이다. 기성세대를 대신해서 사과 말씀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거권은 국제인권선언에 명시되어 있는 권리"라며 "오늘 논의된 것을 충분히 검토하겠다"는 약속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