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요즘 가족 생계를 위해 아파트 경비 알바일을 하고 있습니다. 2일은 주간조로, 2일은 야간조로, 2일은 휴무로 계속 돌고 도는 근무 형태로 일하고 있습니다. 3일은 주간조라 오전 8시까지 아파트 입구 경비실로 출근했습니다. 야간조에게 근무 인수인계를 받고 오전 근무를 서고 있었습니다. 오후 1시가 다 되어갈 무렵이었습니다. 휴대폰으로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여보세요. 변창기씨죠? 여기는 서울경찰청 지능범죄 수사과입니다. 저는 김기철 수사관 입니다. 혹시, 김대만이라고 아나요? 42살이고 광주 출신입니다."경찰이라 하니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그 사람 이름도 들어본 바가 없는데 무슨 일일까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사람이 제가 사용하지 않고 있는 은행계좌를 돈세탁에 사용할지도 모른다 했습니다. 그러면서 "성인 사이트나 게임 사이트 사용 하느냐?"고 묻거나 "OO은행, OO은행 계좌 계속 사용하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어 말했습니다.
"지금 인터넷 할 수 있나요? 5분이면 됩니다. 네이버로 서울경찰청 치시고 개인정보침해신고에 들어가 등록하세요. 그러면 수사에 도움이 됩니다."계속 이야기를 들으면서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금융범죄 수사팀 이상호 팀장을 바꾸어 주겠다"며 전화를 바꾸었습니다. 부르는 소리가 나기에 전화를 끊어 버렸습니다.
어느날 오후 갑자기 걸려온 전화... "수사에 협조 좀 해주시죠""수사를 위해 녹음 중인데 전화를 끊으면 어떻게 합니까?"그랬더니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저는 그 사람과 계속 통화를 했습니다. 그는 "인터넷 뱅킹 하느냐?"고 묻기도 하고 "공인인증서 사용하느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저는 "오래전 사용 했으나 요즘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답하니 그 쪽에서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습니다.
전화 온 번호를 보니 +02-546-4001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앞에 +가 왜 붙어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대로 통화를 시도하니 없는 국번이라 나오고 앞에 있는 +를 빼고 걸어보니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국번이거나 고객의 요청으로 통화할 수 없는 번호 입니다"라는 음성만 들려 왔습니다.
같이 근무 서는 다른 직원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 했더니 당장 112에 전화를 걸어 위에 밝힌 두 수사관 이름이 있는지 물어 보았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이 없다고 했다 합니다. 앞서 자신이 김기철이라고 주장한 사람이 알려준 다른 번호인 1566-0112로 전화를 걸어보니 울산 경찰청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옆에 있던 직원은 "보이스 피싱이니 그런 전화오면 바로 끊으라"고 조언해줍니다.
"요즘 그런 전화 사기꾼들이 엄청 많아요. 조심하세요. 그 사람들은 인터넷에 떠다니는 정보를 수집해서 사기를 칩니다. 그 사람들이 말한 대로 인터넷 검색해 보면 마치 진짜로 서울 경찰청 홈페이지처럼 꾸며 놓고 있어요. 거기다 창기씨 정보 입력하면 큰일나요. 그 사기꾼들은 그 정보를 가지고 이용해 먹어요."점심시간 제 폰으로 전화를 한 사람은 제 생년월일도 알고 있었고 제가 개설한 은행통장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저에게 무얼 캐내려고 했을까요? 그 사람은 5분이면 된다면서 인터넷을 하라고 했습니다. 네이버로 들어가 '개인정보침해신고'를 하라 했습니다. "지금 근무중이라 인터넷을 할 수 없다"고 하니까 계속해서 하라고 강요했습니다. 정말 말로만 듣던 보이스 피싱 사기꾼이었을까요?
500원 짜리 지폐 쓴 뒤 잡혀 간 아버지... 경찰이 두렵습니다저는 어려서부터 경찰의 경자만 들어도 두려웠습니다. 어릴 때 겪은 일 때문입니다. 강원도 평창 화전민 출신인 아버지는 결혼하고 제천으로 가 살다가 제가 6살 무렵 울산으로 내려와 살았습니다. 울산에서도 돈벌이가 안 되자 아버지는 강원도로 벌목하러 갔습니다. 누군가가 소개하면서 몇 개월 벌목작업을 하면 목돈을 만질 수 있다고 했다 합니다. 몇 개월 후 아버진 돈을 벌어 왔습니다. 당시 귀했던 500원 지폐로 월급을 받아 왔습니다.
버스 차비가 10원쯤 할 때이니 500원도 큰 돈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잔돈이 없어 500원을 들고서 동네 가게로 가서 여러가지 먹을 거리를 샀습니다. 500원을 내고 거스름 돈을 받아 집에 왔는데 그날 저녁 무렵 사복 형사가 와서 아버지를 잡아 갔다고 합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동네 가게 아주머니가 경찰에 신고를 했다는 것입니다. 말씨도 강원도 말씨고 귀한 500원 짜리 지폐를 가져와 물품을 사니 수상했다는 것입니다.
이틀 후 아버지는 초주검이 되어 돌아 왔다 합니다. '다시 한번 살펴보고 수상하면 신고하자'는 유형의 문구를 우리는 어려서부터 너무나 많이 보고 들으며 자랐습니다. 그렇게 동네 사람마저 수상하게 여기고 신고하는 투철한 신고정신이 남쪽을 지배하던 시절에 벌어진 웃지 못할 일입니다. 아버진 그날 이후 경찰만 보면 두려워 했습니다.
한편 1990년대 초 저는 현대그룹 계열 중 하나인 목재회사에 들어가 일하다 노조활동에 가담했습니다. 오래되어 정확한 날은 기억 못 하지만 어느날 저녁, 집에 있는데 느닷없이 소속도 밝히지 않은 사복 형사가 찾아와 저를 잡아가려 했습니다. 1990년대 초 노동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던 때였습니다. 현대그룹 노동조합 총연합(현총련)을 구성하여 현대그룹과 맞설 때였습니다. 백골단이라는 체포조가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며 집회하는 노동자를 잡아가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노조 상집을 하고 있었는데 한 달 간을 이유도 모른 채 쫒겨 다녔습니다. 그 때 많이 듣던 말들. 안기부, 군 기무사, 중앙정보부, 남산 같은 말이었습니다. "누가 남산에 끌려가 반 병신이 되었다더라, 누가 안기부에 끌려가 죽었다더라" 그런 이야기가 심심찮게 소문으로 들려오던 시절이었습니다.
요즘 <빛과 그림자>란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 아버지가 남산에 이유도 모른 채 끌려가 고문 당하다 숨지게 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복 형사는 그 아들을 잡아다 두려움을 주어 그 아버지 죽음을 묻어두게 합니다. 이 드라마를 보면 그때의 일과 얼마 전 작고하신, 젊은 시절 모진 고문을 당한 김근태 선생님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떠오릅니다.
느닷없이 걸려온 '보이스 피싱'... 지금도 가슴 쓸어내립니다몇 년 전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남북교류가 활발히 전개되었습니다. 남쪽 가수가 북쪽에 가서 노래하고 북쪽 가수가 남쪽에 와서 공연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반갑습니다'는 노래가 한 때 남쪽에서 유행하기도 했었습니다. 그 기류를 타고 온라인 상엔 북쪽 노래가 많이 흘러 다니고 있었습니다. 민중가요를 모아 놓은 사이트엔 북쪽 노래도 많이 올라 있었습니다. 저는 북쪽 노래를 제가 드나드는 카페에 퍼 올렸습니다.
"변창기씨 여기는 제주 경찰서 사이버 수사대 입니다."그런데 어느날 뜬금없이 경찰이라며 전화가 왔습니다. 그리고 울산에 있는 저더러 제주도로 조사 할 게 있으니 오라 했습니다. 저는 "먹고 살아야 해서 못 간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진술서라도 써 보내라 했습니다. 진술서 보고 더 조사해야 할지 말지를 결정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경찰은 "민중가요 홈페이지에 (북쪽 노래가) 있는 건 괜찮으나 그것을 다른 곳에 퍼 나르면 북한 찬양죄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난 그런 줄 몰랐다"고 했습니다. 그냥 유행 하기에 복사해서 올린 것 뿐인데 그게 죄가 되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경찰 경자만 들어도 무섭습니다. 현대차 10년 다니다 정리해고 된 저는 너무 억울해 비정규직 노조활동을 겸하고 있습니다. 불법파견이라고 대법원에서 판결난 데다 얼마 전 노동위원회에서도 부당해고 판결을 내리고 복직 명령을 내렸습니다. 저도 정규직 전환과 복직의 희망을 가지고 불법파견 정규직화 집회에 빠지지 않고 나가고 있습니다. 거기 가 보면 어김없이 사복 형사들이 우릴 감시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들을 보면 속으로 많이 두렵습니다.
그런 이유로 경찰과는 별로 가까이 하고 싶지 않고 만나고 싶은 생각도 없는데 갑자기 경찰이라며 전화가 와 속으로 너무 놀랐습니다. 또 무슨 일로 전화가 왔는지 두렵기만 했습니다. 다른 근무자가 경찰에 전화를 걸어 확인한 결과 위에서 말한 그런 경찰관 이름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흔히 말하는 '보이스 피싱' 사기구나 하는 것을 직감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 어디 사기 칠 사람이 없어 경찰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한 저에게 사기를 칠까요? 낮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을 쓸어 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