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신 : 5일 오전 9시 15분]당권판-비당권파 격돌... 19시간 논의에도 '수습책' 못 내놔
통합진보당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갈등은 4일과 5일 이틀에 걸쳐 열린 전국운영위원회에서 폭발됐다. 장장 19시간에 걸쳐 진행된 운영위는 '비례대표 경선 부정'의에 대한 후속 조처를 결정해야 하지만, 5일 오전 9시 현재까지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순위 경쟁 명부 비례대표 사퇴를 처리하려는 운영위원들과 당권파들이 매섭게 맞서고 있는 것이다.
50여 명의 당권파 측 당원들은 "당원이 뽑은 후보가 사퇴하려면 당원이 결정해야지 운영위원들이 무슨 권한이 있냐"며 "이런 게 패권주의"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노총 경기지역본부' 조끼를 입은 한 참석자는 "당원을 감히 모욕하고 4년 만에 다시 당을 깨냐"며 힐난했다. 이들은 후속 조처안건을 처리하려는 운영위원들에 맞서 고성으로 회의를 방해했다. 힘을 써 운영위원들에게 다가가려 하기도 해 당직자들로부터 제재를 받기도 했다.
상황이 격해지자 사회권을 포기한 이정희 공동대표 대신 의장직을 맡은 유시민 공동대표는 운영위 정회를 선언했다. 당 홈페이지에서 생중계되는 만큼 별도의 참석자들 없이 운영위를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비례대표 사퇴의 건' 두고 당권파 반발 극심
당권파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힌 안건은 4일 운영위에 회부된 '비례대표 선거 진상조사위 결과 보고에 대한 후속 조치'의 건이다. 후속조치에는 공동대표단이 총사퇴하고, 비례대표 순위 경쟁 명부의 후보자 전원 사퇴가 핵심 안건으로 담겼다. 더불어 비상대책위를 구성하고 관련자 전원 당기위원회 제소 등의 내용도 함께 다뤄졌다.
이 같은 후속 조치 안건에 대해 비례대표 8번 이영희 후보, 11번 나순자 후보, 13번 윤난실 후보는 4일 운영위에서 "후속 조치의 건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켜 달라"며 자진사퇴의 뜻을 밝혔다. 12번 유시민 후보 역시 "당의 공동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비례대표 경선 부정에 대해) 실무적·실제적 책임져야 할 사람"이라며 "사퇴하는 게 마땅하다"고 말했다.
안건 처리에 앞서 진행된 토론에서 당권파 운영위원은 "직선제로 올라온 운영위원들이 당원 총투표로 결정된 비례대표에게 사퇴하라니 이건 쿠데타", "누더기가 된 천안함 보고서 같은 진상'조작'보고서를 기정사실화 해 후속조치 나와서는 안 된다"며 맹렬히 반대했다.
그러나 유시민 공동대표는 "운영위에서 사퇴를 결정해주면 내가 그만두겠다고 하는 것보다 덜 고통스러울 것 같다"라며 안건 통과를 호소했다. 그는 "이번 사건에 대해 나에게도 실체적 책임이 있다"라며 "(대표단 총사퇴-비례대표 총사퇴) 안건이 가결돼서 비대위가 만들어지고 당이 혁신해 가면서 대회를 치를 때 당 대표에 출마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발언 하려다 눈물이 나 말을 못했다"라며 눈물을 훔친 강기갑 의원은 "(지금 상황이) 두 동강이로 가르는 한 있더라도 자기 것 놓지 않겠다는 것과 뭐가 다르냐, 믿고 결단하는 것만 남았다"며 결심을 촉구했다.
양 측의 의견은 팽팽히 맞서 하나로 좁혀지지 않았다. 결국, 5일 오전 3시까지 이어진 지리한 토론 끝에 다수의 운영위원들이 토론 종결 및 표결을 요청했다. 유 공동대표까지 나서 "이정희 의장이 안건을 처리할 의사가 없는 걸로 판단한다"라며 "그러나 이정희 대표와 더불어 당을 주도적으로 끌고 온 분들이 혁신안에 반대하는 현실이 유감스럽다, 책임 맡은 분이 놓음으로써 새로운 시작을 찾아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공동대표는 두 시간가량 "표결하게 되면 상처가 클 것 같다, 만장일치가 필요하다"며 토론 종결을 거부하고 버텼다. "소수가 다수에게 만장일치를 강요하며 항복을 요구한다"는 등의 비판이 쏟아져도 이 공동대표는 자리를 지켰다.
또 다시 정회가 이어졌다. 대표단끼리의 상의 과정에서 이 공동대표는 '조사위가 진상조사 보고서와 관련해 부정행위자로 몰린 이들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를 할 것, 6월 3일 새지도부를 구성하는 것을 확정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이 두 가지가 약속되지 않는 한 사회를 볼 수 없는 상황이라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는 심상정 공동대표가 이 공동대표를 따로 만나 중재 역할에 나섰다.
그러나 이 공동대표를 제외한 다른 대표단은 진상보고서 전반의 부실에 대한 사과에 합의하지 못했고, 지도부 구성의 건 역시 시스템 정비를 위한 최소한의 물리적 시간이 필요해 6월 말에 당 지도부를 뽑아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이 공동대표는 5일 오전 7시 경 의장석에서 물러나 운영위 자리를 떴다. 당권파 당원들은 박수로 배웅했고, 다른 대표단을 향해 "속 시원하겠다"는 비아냥도 이어졌다.
[2신 : 4일 오후 9시 51분] "부정선거라는 근거를 대, 당원이 호구야"
"미확인 된 걸 왜 얘기해. 부정선거라는 근거를 대. 당원이 호구로 보여?"4일 전국운영위원회에서 '비례대표 선거 부정'에 대해 통합진보당 자체 진상조사위원회 조사 결과 보고가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야유가 터져나왔다. 대부분 서서 운영위 회의를 지켜보던 당권파들이었다. "부정선거라는 근거도 없으면서 부정이라고 몰아붙였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운영위원들도 가세했다. 같은 IP에서 대규모로 투표한 온라인 투표자 중에서 당원이 아닌 사람과 아예 투표를 하지 않은 사람이 나온 것에 대해 이들은 "당사자에게 조사해보니 '밤에 자다가 전화를 받아 신경질 나서 당원 아니라고 말했다'더라"라며 문제제기했다. 다른 루트로 당원인지 여부를 재확인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어떤 당원은 투표했냐는 질문에 총선 투표인 줄 알고 투표소에서 했다고 답변했다"며 조사 과정의 부실을 지적했다. 온라인 투표 의혹을 밝힌 것에 대해서도 "조작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데도 보수 언론에 먹잇감을 던져줬다"고 따졌다.
조사위는 "조사 과정에서 오류는 있을 수 있다, 완벽한 신빙성을 갖고 있다고 단 한 번도 말한 적 없다"라며 "이를 제대로 밝히려면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투표함에서 표가 여러개 붙은 종이를 발견한 것, 당직자가 참관인 없이 임의로 소스코드를 열어본 것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았다.
심상정 공동대표는 "이 선거를 투명한 절차 거쳤다고 말할 수 있냐"며 "부정이 없었다고 증명할 수 있냐고 물을 게 아니라 '부정이 없었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냐를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 대표는 "그런 점에서 진상조사위 결과를 수용한다"라고 말했다.
참석자 중 일부는 "당을 깨자는 거"라며 조롱했다. 큰 소리로 비웃기도 했다. 조사에 참여한 조사위원과 조준호·심상정·유시민 공동대표가 발언할 때 공통되게 보인 반응들이었다.
운영위원장을 맡은 이정희 공동대표는 "조용히 해주세요"라며 객석의 격한 반응을 자제시켰지만 그게 다였다. 일부에서는 "장내를 정리하고 운영위원들끼리 토론하자"고 제안했으나 통과되지 않았다.
조사위 조사 과정에 대한 질의응답은 4시간 가량 지루하게 이어졌다. 한 시간의 정회 끝에 다시 재개된 운영위에서 천호선 대변인은 "조사위 조사는 결함이 있지만 부실을 방증하기 위한 제한적 상황에서 도입한 부수적 방법이었다"라며 "상당수가 인터넷 투표를 하지 않았음을 인정해야 한다, 몇 가지 조사 방식의 한계를 문제 삼아 이를 바꾸려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비슷한 맥락의 질의응답이 이어지자 유시민 공동대표는 "질의응답은 각자의 판단을 형성하는데 그치는 게 바람직하다"며 질의읍답 종료를 요청했다. 이정희 대표는 "질의 종결은 가능하지만 이게 당원에게 합당하냐"며 질의응답을 이어가려 했다. 그러나 다수 운영위원들이 "의장 불신임에 들어갈 것", "질의응답 종결하고 토론을 하자"고 재차 요청하자 결국 토론으로 전환됐다. 운영위가 시작된 지 7시간 만이다.
[1신 대체 : 4일 오후 4시 32분]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4일 자체 진상조사위 조사 결과에 대해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어 즉각 대표단이 사퇴하라는 당 안팎의 요구도 거부했다.
이 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전국운영위에서 "책임져야 할 현실을 피하지 않겠다, 6월 3일 실시될 당직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며 "나를 중심으로 짜여질 차기 당권구도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12일 향후 정치 일정이 확정될 중앙위가 끝나는 즉시 내게 주어진 무거운 짐을 내려 놓겠다"며 즉각 사퇴 거부의 뜻도 밝혔다.
그는 "(비례대표 선거) 부정의 구렁텅이에 당원과 간부들이 빠져들었다고 비난 받은 현실은 참기 어려운 고통"이라며 "현장 투표 부정 사례로 (보고서에) 명시돼 거론된 당원은 조사위로부터 전화 한 통 못 받았다고 한다, 문제없음을 해명할 수 있는데 부정의 당사자로 몰렸다"고 조사위의 조사 과정에 대해 맹비난했다.
그는 "진보정치에 십 수년 몸 바친 당원을, 현장 투표를 치르기 위해 노력한 아까운 당원을 책상머리에서 부정행위라고 내몰 수 있냐, 조사위는 진실을 밝힐 권한이 있지 모욕 줄 권한은 없다"며 "부끄러운 상황을 아무리 빨리 벗어나려 해도 당원 한 사람의 명예라도 헌신짝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편파적이고 부실한 조사는 내가 서울을 떠나 있는 동안 일어난 일"이라며 "조사위 보고서 제출했지만 불신에 기초한 의혹만 내세울 뿐이다, 부풀리기식 결론은 모든 면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조사위의 조사 결과에 대한 수용 불가 입장을 밝힌 것이다. 더불어 "조사위가 특정 후보에 투표한 IP를 추적해 대리 투표로 몰았다,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비밀 투표 원칙 침해를 방치했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가 진상조사위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발언을 내놓자 회의장 일각에서는 박수와 환호성이 터졌고, 유시민-심상정 공동대표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우리의 치부를 가리는 낡은 관성과 유산 과감하게 척결해야"당초 모두 발언을 하지 않으려 했던 유시민 공동 대표도 입을 열었다. 그는 "선거가 끝나고 나면 공개돼야 할 투표소 별 득표 현황 데이터가 공개되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일반 원칙과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당 내부에서 국회의원 후보를 선출하는 결과가 최소한의 투명성 담보되지 않는다면 무엇을 담보로 신뢰성을 주장할 수 있을까"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우리가 바르게 행동하고 있다는 확신이 흔들린 것이야말로 당의 위기가 야기된 근본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심상정 공동대표는 "조직의 폐쇄적 논리, 우리의 치부를 가리는 낡은 관성과 유산을 과감하게 척결해야 한다, 그것만이 살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진상조사위 구성 운영과 결과 발표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가 있는데 분명하게 말씀 드릴 점은 진상조사위는 대표단의 합의로 구성됐다는 것"이라며 "조사위는 대표단 합의로 구성된 이후 다른 결정, 진상 조사에 영향을 주는 결정을 추가한 것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심 공동대표는 "대표단이 엄청난 충격과 실망을 드린 상황에서 그 이후의 수습까지 감당하기 어렵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해 사퇴의 뜻을 밝혔다.
진상조사위 위워장을 맡은 조준호 공동대표는 "어떤 입장과 정파의 이해를 대변해 공정성을 잃어서 조사했다면 책임 면치 못함을 잘 알고 있다"며 "조사위원들로서는 최선을 다해 조사했다, 그 부분에 대해 어떤 분이 상처 입거나 어떤 분의 이득이 된다는 고려를 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조사위가 '당권파 죽이기'를 위해 조사 결과를 왜곡했다고 보는 당권파를 향한 항변이다.
조 공동대표 역시 "어떠한 미련도 없다"며 "앞서 대표단들과 함께 놓고 싶고 놓아야 한다고 말씀 드린 적 있다"며 사퇴 의지를 밝혔다. 유시민·심상정 공동대표의 발언에 대해 아무런 호응을 보내지 않던 참가자들은 조 공동대표를 향해서는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소리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