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희망버스 참가자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탄압으로 현재 100여 분의 탑승객들이 법원으로부터 벌금형 등의 약식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탑승객들이 이런 탄압에 맞서 정식 재판을 청구하고 있습니다. 이에 기소된 분들이 자신의 의지와 희망버스 운동의 사회적 역할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기고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법률비용 마련을 위한 각종 기금 마련 등 모금 운동도 계획 중입니다.

 

한편 5월 11일에는 서울 대한문 앞에서 쌍용자동차 22분의 희생자를 위로하고 연대하는 바자회와 콘서트가 준비 중이고, 19일 3시에는 범국민대회가 서울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이 자리에도 희망버스를 기억하는 많은 분들이 함께해주시길 바랍니다. <기자 말>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가 노사 합의로 타결된 2011년 11월 10일 오후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농성을 벌였던 4명이 내려오기 전 농성 기일을 표시한 벽보 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가 노사 합의로 타결된 2011년 11월 10일 오후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농성을 벌였던 4명이 내려오기 전 농성 기일을 표시한 벽보 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 윤성효

어느 달 밝은 밤, 어떤 평범한 회사원 아무개씨는 귀가하다 길거리에서 비명 소리를 듣는다. 비명소리가 너무 아프다. 그것은 어떤 집에서 나는 소리다. 누군가 힘없는 이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는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야' 하고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고 구하러 들어갈 수도 있었다. 그는 망설이다 비명소리를 모른 척하지 않기로 한다. 그는 집 안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집의 문은 굳게 닫혀 있다. 그는 담을 넘어 창문을 깨고 들어가 비명을 지른 사람을 구한다. 폭력을 행사한 사람은 폭력을 멈추었고, 그 사람은 구해준 그이에게 고맙다고 말한다. 살려주어서 고맙다고. 그 사람은 죽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아무개씨는 소환장을 받는다. '주거침입죄'다. 남의 집에 담을 넘어 들어간 혐의다.

 

이것은 가상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이 만약 재판에 간다면, 재판장님들은 어떠한 판결을 내려야 할까? 그 사람은 무죄일까, 유죄일까. 혹자는 그 사람이 경찰을 불렀어야 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찰이 달려와 사람을 구하지 않고, '사유재산'을 지키는 게 법이라며 그 집 문 앞을 철통같이 막았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해 여름, 몇만 명의 사람들이 단 한 사람을 응원하러 달려간 사상 초유의 사건이 발생한다. 희망버스다. 한진중공업은 8년 전 두 사람의 죽음으로 이루어진 노동자와의 약속을 깨고 2010년 정리해고를 단행한다.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없었던 이 부당한 정리해고에 항의하러 한 명의 여성 노동자가 크레인 위에 올랐다. 삶을 앗는 해고라는 폭력에 맞서 그녀는 목숨을 걸고 올랐다.

 

8년 전 희생했던 동료에 대한 죄책감을 기억하며 올랐다는 그녀. 어떤 혁명적 의지가 아니라, 단지 조합원들의 이전의 소박한 일상을 지켜주고 싶어서 올랐다는 그녀. 강철 위에서 생명을 피워 보겠다며 크레인 위에서 상추를 키워 보겠다던 그녀. 35미터 높이의 좁은 공간에서 유머와 의연함을 잃지 않고 버티고 있던 이 용감하고 멋진 여성을, 사람들은 응원하기 시작했다.

 

이 여성 노동자가 크레인 위에서 홀로 이 거대한 회사를 맞서 싸워 이길 방법은 없었다. 회사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가만히 내버려두면 지쳐 죽어가겠지, 죽지 못해 내려가겠지, 했던 까닭이다. 아무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여성 노동자가 외롭게 싸우도록 내버려두지 말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처음 겨우 몇 명의 제안으로 시작한 희망의 버스. 1000여 명의 사람들이 한진중공업 앞으로 찾아왔고 700여 명의 사람들이 용역과 철문으로 막힌 조선소의 담을 넘었다. 오로지 그녀를 외롭게 두지 않기 위해서.

 

"성경에서 예수님은 피 흘린 이웃을 모른 척하는 바리새인과 서기장이 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웃을 도왔던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갑니다"라고 수줍게 말한 어느 평범한 사람. "의미 있는 일 한번 해보고 싶어서 참여하기로 했다"는 어떤 주부. "그동안 사회문제에 참여하지 못했던 부채감 때문에 미안해서 아들을 데리고 왔다"는 어떤 아빠. 그런 사람들이 희망버스를 타고 왔다.

 

법이 지켜주지 않은 '사람'... 사람이 사람을 지켰다

 

 2011년 6월 12일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크레인에서 고공농성 중인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을 향해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2011년 6월 12일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크레인에서 고공농성 중인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을 향해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 윤성효

사람들은 담을 넘어서 무얼 했나. 물건을 훔쳤나, 폭력을 썼나. 사람들은 꽹과리와 마이크와 기타를 들고 노래를 했다. 난장을 벌였다. "사랑해요"라는 커다란 플래카드를 들어 크레인 위의 그녀에게 힘껏 보여주었다.

 

아직도 그때 담을 넘은 일을 후회하지 않는 건, 우리가 크레인 밑에서 새벽에 신나게 난장을 벌이고 뱅글뱅글 돌며 노래를 불렀을 때, 크레인 위의 그녀가 함께 즐겁게 박수를 치다 멈추고 몰래 고개를 뒤를 돌려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그녀를 벅차게 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날 담을 넘었던 사람들은 얼마 후 두 장의 편지를 받는다. 하나는 건조물 침입죄 혐의가 붙은 경찰의 소환장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편지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가족대책위 한 분의 전언이었다.

 

아무리 외쳐도 언론도 사람도 우리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대로 말라 죽어가는 줄 알았습니다. 우울증에 걸리고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희망버스가 왔습니다. 여러분이 왔습니다. 아, 살 수 있겠구나. 희망이 생겼습니다.… 여러분이 사람을 살렸습니다… 고맙습니다."

 

희망버스를 탔던 사람들 중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지금 100만 원에서 200만 원 상당의 벌금이 떨어진 상태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 이것을 재판으로 가지고 갈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달 밝은 밤의 사례는 바로 이와 같은 상황이다.

 

혹자는 정리해고를 법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는 법적으로도 고려가 된 상태였다. 그러나 지방노동위원회도 언론도 아무도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지 않았다. 한진중공업은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 나름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에 법원, 지방법원, 고등법원, 대법원까지 가서 정리해고 부당 판결을 얻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엔 3년 가까이 걸린다. 현대차는 법적으로 부당해고 판결이 났음에도 복직시키지 않았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농성하고 또 농성한다. 노동자들이 구속되는 동안 부당해고 판결을 받은 사장과 회장들은 아무도 처벌받지 않는다. 그렇게 오랜 기간 걸려 판결되고, 아주 적은 확률로 복직될 수도 있다. 그 사이에 사람이 먼저 죽는다.

 

법이 사람을 지켜주지 않아서 사람이 사람을 지켜야 했던 사건, 희망의 버스. 담을 넘은 것이 단지 눈에 보이는 범법행위라고 해서, 그리고 정리해고가 당장 눈에 보이는 폭력이 아니라고 해서, 어떤 것이 더 사람을 해치는 것인가를 모를 만큼 사람들은 더 이상 우매하지 않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마치 법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처럼 말하는데, 법이 법의 목적을 스스로 지킬 때에만 법이 옳다 말할 수 있지 않은가 한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법이 사람을 지키기도 하고 재물을 지키는데, 이 두 가지 경우가 맞물렸을 때 단지 사람보다 재물을 지키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법은 사람이 만든 것이고 그래서 법체계는 늘 불완전하다. 가장 완벽한 법은 자연 안에만 존재하는데, 사람들은 자연도 파괴하지 않은가.

 

정의는 최고의 감정,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따스함'

 

 지난해 6월 12일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13시간 동안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크레인 아래에 머문 뒤 떠나면서 한진중 조합원 가족들과 뜨거운 작별을 나누고 있다.
지난해 6월 12일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13시간 동안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크레인 아래에 머문 뒤 떠나면서 한진중 조합원 가족들과 뜨거운 작별을 나누고 있다. ⓒ 윤성효

내가 경찰에 소환되어 조사받고 있을 때, 경찰관이 물었다.

 

"김진숙은 범법행위를 하고 있다. 범법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을 지지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래서 "범법행위를 지지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하고 있고 나는 사람을 지키고 살리는 그 일을 지지한다"고 대답했다.

 

또한 범법행위라고 말하기 전에 법이 법이 목적하는 바를 지키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만약 재벌이 인권을 보장하고 근로의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 정신을 지켰다면, 김진숙은 크레인을 점거하지 않았을 것이고 아무도 담을 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재벌이 노사 약속을 지키고 노사가 동등하게 서로 권리를 가졌다면 외부에서 개입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헌법이 모든 법의 기준이 되고 상위 법이 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헌법에는 약자들의 권리가 잘 보장되어 있다. 기업의 권력 남용도 규제하고 있다. 모든 이들이 먼저 헌법 정신을 준수한다면, 시위도 점거도 파업도 쟁의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판사님들이 만약에 이런 딜레마에 봉착한다면, 부디 법이 존재하는 이유를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 법은 사회 안에서 사람들이 공존하면서 서로 상처주지 않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누구도 타인의 삶을 위협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다. 그런데 어떤 법이 누가 누군가의 삶에 마음대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을 보장해주는 용도로 쓰인다면 그 법은 법이 존재하는 이유를 부정하는 게 아닐까.

 

혹자는 시위나 파업이 난무해서 사회의 질서가 무너질까봐 두려워한다. 그러나 사회의 부당함을 교정하는 장치가 사라지는 것을 더 두려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욕심 없이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말이다. 옳은 일을 선택할 자유를 포기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키는 대로 하다가 불의에 협조하는 것을 더 두려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친구가 물었다.

 

"이거(희망버스) 열심히 해서 언니가 얻는 게 뭐에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감동."

 

생각해보니 내가 얻는 건 뭔가 한다. 오히려 소환장에 벌금만 떨어졌다. 그러나 맞다. 수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기 위해 뛰어드는 순간에 함께했다는 것, 그래도 그래서 그 사람이 살았다는 감동이다. 모든 게 이기적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그래도 옳은 일을 했다는 감동이다.

 

정의는 이성적이고 냉정하고 차가운 것이 아니다. 정의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최고의 감정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따스함 같은 것이다. 조건 없이 좋아하는 사랑 같은 것이다. 조건 없이 받는 사랑 같은 것이다.

 

그것에서 감동을 느끼는 것이다. 타인이 느끼는 아픔을 내가 똑같이 느끼는 것이다. 아파하는 사람에게 빚을 졌음을 느끼고 고마워하고 미안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고한 사람들의 상처에 함께 분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서 나 자신을 위한 사심과 욕망만을 걷어낸 것이며, 그게 정의라고, 나는 생각한다.

 

"외롭지는 말거라, 누구도 외롭게 두지 말거라"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309일간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137일간 농성을 벌인 사수대 3명이 지난해 11월 10일 노사잠정합의안이 노조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가결되면서 크레인을 내려왔다. 병원으로 향하는 구급차를 타러가는 김진숙 지도위원이 환영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309일간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137일간 농성을 벌인 사수대 3명이 지난해 11월 10일 노사잠정합의안이 노조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가결되면서 크레인을 내려왔다. 병원으로 향하는 구급차를 타러가는 김진숙 지도위원이 환영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 권우성

이 '희망의 주거침입죄'와 '희망의 불법시위'에 대한 판사님들의 현명한 판단을 기다린다. 어떠한 판결이 나더라도 우리는 즐겁게 받아들일 것이다. 우리는 벌금이 정당하다는 판결이 나더라도 재치 있는 방법으로 즐겁게 웃으며 낼 것이다.

 

설령 유죄 판결이 나더라도, 앞으로 그런 일이 또 있다면 또 다시 외로운 이웃에게 달려갈 것이다. 절박한 비명 소리가 들리면 그 아픔을 모른 척하지 않을 것이다. '남의 집 담을 넘어가서는 절대 안 된다'라고 가르치기보다 '그래도 상처 받는 이웃이 있다면 모른 척해서는 안 된다'라고 가르치고 싶기 때문이다. 사유재산도 중요하지만, 사유재산보다는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다고 가르치고 싶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은 세상이 '제로섬'이라는 사실을 잊는다. 만약 내가 필요 이상으로 넘치게 갖고 있거나, 넘치게 누리고 있다면 누군가의 희생으로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탄압받는 이웃에게 달려가는 것은, 마치 빚을 갚는 것처럼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정권이 바뀌어도 법이 바뀌어도 이러한 싸움은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저항할 때마다 짓밟힐지도 모르며, 부당함을 외치고 알릴 때마다 감옥에 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마 늘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법적으로든, 사회에서든, 이기는 것이 옳다고 여기고, 어떤 형태의 패배든 패배한 것은 틀렸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더 강해지는 것이 옳은 게 아니라 더 사랑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이기고 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대추리 사람들이 모두 터전을 잃고 미군 기지가 들어섰어도, 강정마을로 달려가는 사람이 존재하는 건 이 때문이다. 용산의 집들이 전부 철거되었어도 명동 마리에서, 두리반에서 또 아현동에서 사람들이 싸움을 멈추지 않는 건 이 때문이다. 쌍용자동차 파업하던 사람들이 전부 체포되고, 살인적으로 진압당한 채 외면적으로 '패배'했어도 사람들이 한진중공업 크레인으로 달려갔던 건 이 때문이다.

 

사랑에 반하는 것들로부터 사랑을 지켜내기 위한 싸움은 아마도 늘 계속될 것이니까. 이 싸움은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끝난 적이 없고, 양쪽의 힘이 늘 균형을 잡고 있는 듯하다. 이 싸움 속에서 더 사랑에 가까운 편에 계속 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크레인의 그녀, 김진숙이 청춘들에게 보낸 편지의 한 아름다운 구절로 이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아파도 되고 울어도 되고 비틀거려도 괜찮다. 그러나 외롭지는 말거라. 누구도 외롭게 두지도 말거라.


#희망버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