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삼성이 너무나 큰 죄를 짓고 있다. 벌써 55명이나 죽었는데. 얼마나 더 죽어야 진실을 말할 텐가?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이나 뇌종양 등 온갖 희귀병들로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악성 뇌종양(교모세포종)으로 투병 중 사망한 고 이윤정씨의 빈소에는 남편 정희수씨와 유족들 몇 명만이 쓸쓸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윤정씨의 친정 아버지인 이안우(70)씨는 그저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눈물도 말라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죄인이지... 더이상 무슨 말을 할까"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어머니도 한숨만 내쉬며 "힘들어서 아무 말도 못하겠다"고 했다.

"아내는 마지막에 삼성을 용서하자고 했지만..."

 고 이윤정씨의 남편 정희수씨가 입관식을 마치고 눈시울을 붉히며 나오고 있다.
고 이윤정씨의 남편 정희수씨가 입관식을 마치고 눈시울을 붉히며 나오고 있다. ⓒ 조정훈
남편 정희수씨는 "삼성이 너무 밉다"며 "부인이 마지막으로 용서하자고 말했지만 나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고 전했다. 한 여자의 남편으로, 두 아이의 아비로서 도저히 용서가 안 된다고 했다.

정씨는 "산재소송을 진행중이었는데 재판이라도 제대로 받아보고 죽었으면 한이라도 풀었을 것"이라며 "작년 9월 재판에서 서류 확인만 하고 지금까지 날짜도 안 잡혔으니 부인이 억울해 할 것"이라고 재판부를 원망했다.

정씨는 "소송을 끝까지 갈 것"이라며 "삼성이 진실을 제대로 밝히고 산재를 인정해줄 때 용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족들과 함께 빈소를 지키고 있던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은 "삼성이 보이는 태도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진실을 은폐하려는 모습뿐"이라며 "사회적 지탄을 받을 것"이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어제 고 이윤정씨가 사망한 후 트윗을 날렸는데 한 시간 만에 56만 명이나 리트윗을 했다"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삼성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삼성에서 일하다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은데도 삼성은 무재해라며 매년 140억 원 이상을 산재보험에서 돌려받는다"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 말고 돌아가신 분들에게 예의를 다하라"고 충고했다.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의 활동가인 이종란 노무사는 "삼성은 젊은 노동자들이 55명이나 사망했는데도 단 한 차례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며 "기가 막힌 재벌"이라고 비난했다.

고 이윤정씨는 아들과 딸, 두 아이를 남겨두고 떠났다. 아이들은 부산의 큰고모 집에서 천진난만하게 엄마를 찾는다고 한다. 정희수씨는 딸 아이가 전화로 "엄마 하늘나라에 잘 살러 간 거야?"라고 물었을때 가슴이 참 많이 아팠다고 했다.

고 이윤정씨의 장례는 10일 노동사회장으로 치러지며 장지는 경기도 화성 천주교 비봉추모관이다. 다음은 고 이윤정씨의 남편 정희수씨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악성 뇌종양(교모세포종) 판정을 받고 요양중 사망한 고 이윤정씨의 빈소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악성 뇌종양(교모세포종) 판정을 받고 요양중 사망한 고 이윤정씨의 빈소 ⓒ 조정훈

"삼성은 계속 '우리와는 관계 없다'고 했다"

- 고 이윤정씨와는 어떻게 만나 결혼했나?
"사촌누나의 소개로 만났다. 누나의 룸메이트였는데 좋은 사람이라며 소개해줘서 2002년 12월 25일 성탄절날 처음 만났다. 이후 2004년 2월 15일 결혼했다."

- 그때는 몸이 괜찮았나?
"부인이 회사를 그만둔 것은 2003년 5월쯤이다. 몸에 멍이 자주 들고 많이 힘들어 해서 그만뒀다. 약한 체질이라 그런 줄 알았다."

- 언제 병원에 입원했나?
"2010년 5월 5일 어린이날이었다. 아이들과 놀다가 쓰러져서 순천향병원으로 데려갔는데 피검사와 소변검사를 해도 이상이 없었다. 그래서 뇌검사를 했다. 그랬더니 교모세포증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별일 아니겠거니 했는데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1~2년밖에 살지 못한다고 하더라. 너무 힘들었다."

- 수술하고 퇴원했을때 어땠나?
"(아내는) 굉장히 살고 싶어 했다. 머리가 빠지니 가발을 하고 몸이 뚱뚱해지니까 옷도 자주 사서 입었다. 백화점에서 쇼핑하고 밖에서 맛있는 식사 하고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떨었다. 삶의 열정을 불태우려 했던 것 같다."

- 삼성과 연락은 해보았나?
"병원에서 수술이 끝나고 5월 말 퇴원한 후 전화했다. 그랬더니 자신들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해서 전화를 끊었다. 1주일 후 삼성 직원이 전화가 와서 만나자고 해 집 앞에서 만났지만 자신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하더라. 작업장도 어느 곳보다 깨끗하고 쾌적하다며 와서 확인해 보라고까지 했다."

- 그게 다인가?
"그후로 1주일 뒤 또다른 관계자가 찾아와서 행정소송을 해도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고 아무런 이득도 없으니 시민단체와 만나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병원에 갈때 앰뷸런스를 지원하겠다고 했으나 거절했다. 그 이후 아무런 연락도 없다."

"아내에게 거짓말로라도 '산재에서 이겼어'라고 하고 싶었다"

- 부인 병간호 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텐데.
"정육점을 했다. 애들은 부산의 큰누이가 집에서 보살펴주고 있어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병원을 100번도 더 다니고 아내의 마지막을 위해 여행도 하고 그랬다. 병원비보다는 간병하는 데 쓴 돈이 더 들었다. 그래도 참을 만하다."

- 부인이 아파서 많이 고통스러웠을 것 같다.
"아내는 의외로 울지 않았다. 그렇지만 속으로는 피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 고통은 누구도 모른다. 오히려 내가 부인이 잠든 후 거실에 나와 사진첩을 보면서 많이 울었다. 거의 매일 운 것 같다."

- 삼성과 관련해 뭐라고 했나?
"작년 11월 말쯤 귓가에 대고 '삼성이 너무 싫다, 언제까지든 싸우자'고 하니까 아내가 '모든 걸 용서해주자'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두 아이의 아빠로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 산재 소송 중인데.
"지난해 9월에 재판장에 나갔는데 3분 만에 서류 확인만 하고 끝내더라. 아내는 너무 힘들어서 기저귀를 차고 참석했는데 억울해서 울컥했다. 집사람한테 거짓말로라도 '당신 산재소송에서 이겼어. 치료비 걱정 안해도 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이후 재판 일정도 안 나왔다. 삼성이라는 재벌 앞에서는 법마저도 효용이 없는 모양이다."

- 부인을 보내는 심정이 어떤가?
"억장이 무너지고 화병이 난다. 나는 2년 고생했지만 4년, 5년 고생한 분들은 얼마나 힘들었겠나? 아내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소송을 끝까지 하고 꼭 이길 것이다."


#삼성반도체#산재노동자 사망#이윤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구주재. 오늘도 의미있고 즐거운 하루를 희망합니다. <오마이뉴스>의 10만인클럽 회원이 되어 주세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