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룡이라 불리는 사람들 중에 비전을 제시하는 분이 없다. 인기투표만 하고 있다. 박근혜씨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자기가 '내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를 이런 방향으로 끌고 가겠다'고 제시하는 사람이 없다."법륜 스님은 5월 10일 오후 2시30분 서울 정동 북 카페 '산 다미아노'에서 열린 <새로운 100년> 출판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지금의 정치가 과거 프레임에 갇혀 있다. 성장 리더십인 박정희 뒤에 숨어 있고 민주화 투쟁의 리더십인 김대중·노무현 뒤에 숨어서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
법륜 스님이 제시한 핵심 비전은 통일이다. 산업화와 민주화가 20년, 30년짜리 역사적 과제라면 통일은 "독립, 성장, 민주화를 완성해 주는 통합적인 우리 민족의 100년 과제"라고 말한다. 다들 먹고살기 어렵다는데, 그래서 대선주자들마다 경제, 경제를 외치고 있는 마당에 웬 통일 이야기인가. 하지만 그는 통일은 우리 생존을 위한 투자이며 모두가 꿀 수 있는 공공의 꿈이라고 말한다.
법륜 스님의 '통일 생각'은 오래되었다. 숨가쁘게 즉문즉설 강연장을 오가고 여러 베스트셀러를 냈어도 늘 가슴 속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출간된 <새로운 100년>으로 20년 동안 끌어안고 왔던 마음의 체증을 풀어냈다. '오연호가 묻고 법륜 스님이 답하다'라는 대담집 형식으로 '가슴 뛰는 통일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았다. 이 책을 통해 그는 새삼스럽거나 혹은 진절머리 나는 통일 이야기를 가슴 뛰게 만들었다. 일주일에 세 시간씩 꼬박 석달을 인터뷰 한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는 "스님을 만날 때마다 마치 20대 청년처럼 가슴이 뛰었다"고 말했다.
5년 정권을 잡기위해 '2013년 체제'를 논하는 마당에 100년의 미래라니. 법륜 스님은 현재 시점에서 미래를 내다볼 때 두 가지 사항을 고려했다. 현재 내 주변의 관계와 내가 있기까지의 역사를 바탕으로 시대를 읽으라는 것.
"우리 과거 100년은 수난의 역사였다. 하지만 수난의 가운데서도 독립을 위해, 분단을 막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전쟁 이후에는 빈곤을 극복하려고 발버둥을 쳤고 자유와 민주화를 외쳤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우리 삶을 개척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그렇다면 미래는 어떤가. 막연히 노력하면 될까. 우리 주변 정세를 보자. 중국과 미국 속에 한반도가 있다. 우리의 운명이 분단고착화라면 결국 남한은 미국, 북한은 중국에 인도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강대국의 전쟁 속에 우리의 미래는 과거 100년과 마찬가지로 한계 상황을 맞을 수밖에 없다."공동체의 운명이 이러하다면 개인의 행복도 보장될 수 없지 않은가.
"북한의 버르장머리 고친다는 정책으론 평화 보장도 어려워"
"결국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통일이 필요하다. 제일 먼저 혜택을 입어야 할 사람들은 2천만 북한 동포들이다. 그들의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차적으로 남한 사람들에게는 전쟁의 위협이 없어지고 재산과 인명을 잃지 말아야 한다. 남한 정부는 북한의 2천만 주민의 민심을 누가 장악하느냐를 놓고 북한 정부와 경쟁해야 한다. 도전해 볼만 하지 않은가. 이런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대북정책을 펴야지 버르장머리를 고친다는 감정적 수준의 정책으로는 통일은 고사하고 평화를 보장하기도 어렵다. 인도적 지원은 투자다. 민심을 잡을 수 있으니 줘야 하고 그렇게 남북 간에 물꼬를 트는 게 우선이다."15년 동안 북한동포돕기 사업을 해오면서 누구보다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법륜 스님은 "북한은 현재 사회·경제적으로 거의 붕괴되고 있다"며 "북한의 내부 모순이 극대화되는 시점을 4, 5년"으로 잡았다. 이번 대통령 선거가 중요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더욱이 지금이 미·중의 권력 교체기니 통일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법륜 스님이 제시하는 2012년 대선의 리더십은 '통합'이다. 산업화 시대를 이끈 성장의 리더십과 민주화 시대를 이끈 투쟁의 리더십을 포용하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리더십. 반반 섞자는 회색의 중도가 아니라 내 것을 내세우되 상대편의 것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 조율하는 불교의 화쟁사상에 바탕한 리더십이다.
법륜 스님은 이 책에서 이른바 '안철수 현상'을 통합 리더십에 대한 민심의 분출이자 시대적 요구라고 봤다.
"안철수씨가 앞으로 정치를 본격적으로 하기로 하면 그를 중심으로 시대의 요구가 움직이겠지만 그러지 않는다면 민심이 다른 대안을 만들어낼 것이다. 참신하고 좋은 이미지만 갖고는 안 되니 조금 더 현실적인 사람을 찾아야겠다는 쪽으로 민심이 돌아갈 수 있다." 이날 간담회에서 '안철수씨가 통합 리더십에 걸맞은 인물이냐'는 질문도 나왔지만, 법륜 스님은 "아직 출마선언을 안 했고 (정책을) 내놓은 게 없다"며 평가를 유보했다.
"통일문제는 국민 개개인의 피부에 와닿는 문제는 아니지만 국가 지도자는 큰 안목 먼 안목을 내다보는 분이어야 한다. 남한의 지도자들이 말하는 국민 속에 북한 주민들이 포함되어야 하고 남한만의 사회가 아니라 한반도의 발전을 어떻게 이끌고 갈지에 대한 시야가 필요하다."어느 순간 널 잊고 안주했다, 미안하다 통일!
간담회 말미 법륜 스님은 100년의 미래에서 나아가 1000년의 꿈을 얘기했다.
"고조선부터 우리는 동아시아의 중심국이었다. 그러나 고구려·발해 멸망 이후 신라 시대로 오면서 반도에 갇혔다. 주변 강대국의 변방으로 전락해서 약소국으로 치달았다. 지금 통일국가를 이룬다면 프랑스와 영국 정도의 위상이 된다. 발해 멸망 이후 1000년 만에 동북아 중심 국가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젊은이들이 그런 꿈을 꿀 수 있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진보집권플랜>에 이어 '오연호가 묻다'의 후속작인 <새로운 100년>을 내면서 오연호 대표기자는 "남한의 진보집권을 넘어, 진보와 보수를 넘어 남북한 모두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386세대로서 시대와 역사를 생각하며 살았다고 여겼는데 어느 순간 통일을 잊어버리고 안주하며 살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미안하다, 통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