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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0원 주고 사먹은 비빔밥. 된 밥이라 씹어먹기가 쉽지 않았다.
 3,500원 주고 사먹은 비빔밥. 된 밥이라 씹어먹기가 쉽지 않았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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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계 생산직에서 일할 땐 점심 걱정은 하지 않고 다녔다. 식당이 있어 점심 때가 되면 찾아가 떠주는 밥을 먹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말이다. 새벽 시장을 통해 팔려가 일당을 받고 일하는 건설 현장에서도 점심 밥 걱정은 없었다. 오전 10시경 참으로 빵과 음료를 주었고, 12시가 되면 점심 밥을 같이 식당에 가서 먹었다. 오후 4시경이면 다시 참이 나왔다.

초등학교 일용직 일을 했을 때도 점심 걱정이 없었다. 학교 식당에서 친환경 식품으로 정성스레 조리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말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1년을 5일 앞두고 할만하니 "그만 나오라" 해서 어쩔 수 없이 그만둔 후 지인의 소개로 아파트 경비를 임시직으로 다니고 있다. 3조 2교대 근무를 서는데, 한 조에 3명씩 근무조로 짜여져 있었다. 1명은 조장이고 2명은 각자 초소에서 근무를 선다.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나는 딱히 손기술이 없어 기술을 요하는 생산직 일자린 구할 수 없다. 단순 노무직이 맞는데 집 가까운 곳에 있는 대기업인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엔 사내 하청업체도 취직이 안 된다. 두 대기업 취직이 안 되는 이유가 있다.

현대중공업엔 두세 차례 이 업체 저 업체에 취업하면서 겪고 느낀 점을 <오마이뉴스>에 올린 적이 있는 데다 한 업체는 부당성이 있어 보여 노동부에 진정서를 넣은 일도 있었다. 그 후부터 다른 업체에 서류를 넣어도 출입증이 발급되지 않아 취업을 포기한 상태다. 중공업 정규직에 다니는 아는 분을 통해 알아보니 소위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라 있어 평생 중공업엔 취업하기 힘들 거라 하였다.

현대자동차 사내 업체에도 취업을 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지난 2000년 7월 초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 우연히 들어가 일하게 되었다. 다니다 보니 원·하청간 임금격차도 많고 인간차별도 심하다는 것을 몸소 겪게 되었다. 그러던 중 2004년 말 노동부에서 현대차 울산공장 101개 업체 모두 불법파견 업체로 판정 내리게 된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모여 노조를 만들었고 그때부터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이 본격화 되었다. 나도 정규직이 되고 싶어서 노조활동에 가담했다.

열심히 5년 동안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을 했지만 정규직 사원증을 받기도 전에 2010년 3월 중순경 정리해고를 당해 버리고 말았다. 2009년 말 업체장이 바뀌면서 "노조 탈퇴 않으면 글로계약 안 맺겠다"고 소장이 말하기에 계속 일을 다니려고 노조를 탈퇴했었다. 원청 현대차에서 공장 합리화 공사를 이유로 그 공장에 다니던 비정규직 노동자를 모두 정리해고 해버리고 만 것이다. '그때 그냥 노조 탈퇴 하지말고 버텨 볼 걸' 하는 후회도 많이 했었다.

그 후 나는 현대자동차 하청업체에 취업할 수 없게 되었다. 하다 못해 외주 업체에 채용직전까지 갔으나 원청인 현대차의 방해로 취업 취소가 된 적도 있었다.

야간조 출근할 땐 밤 12시경 라면을 먹는다. 전기밥솥도 있고, 전자렌지도 있고, 냉장고도 있다. 반찬만 있으면 밥을 해먹을수도 있다.
 야간조 출근할 땐 밤 12시경 라면을 먹는다. 전기밥솥도 있고, 전자렌지도 있고, 냉장고도 있다. 반찬만 있으면 밥을 해먹을수도 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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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40대 후반에 자녀 둘을 둔 가장이다. 뭐라도 해서 벌이를 해야만 한다.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 책임은 무겁고 절박한 것이었다. 다행히도 바로 취업이 이어졌다. 처음 해보는 아파트 경비 일자리였다. 주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근무를 선다. 근무 특성상 휴식시간이나 점심시간이 따로 없다.

점심 시간이 되면, 3명이 1명씩 돌아가면서 잽싸게 밥먹고 다른 경비와 교대를 해주어야 한다. 한 달 20일 정도 근무를 서는데 점심 값으로 9만 원이 나온다. 20일로 나누면 한 끼당 4500원이다. 좀 외진 곳에 있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라 마땅한 식당이 없다. 김밥과 분식을 파는 식당 한 곳뿐이다. 처음엔 그 분식집에 가서 점심 밥을 사먹었다. 하루는 라면과 김밥을 사먹고, 하루는 떡국을, 하루는 비빔밥을 사먹기도 했었다.

"차라리 점심을 싸오세요. 한 끼 아끼면 9만원 생기잖아요."

우리조 조장이 그리 말했다. 그 조장은 집에서 점심을 싸가지고 와서 해결하고 있었다. 나도 내심 계속 그렇게 먹자니 나중엔 질리기도 했고, 가뜩이나 생활비가 부족한데 끼니마다 사먹자니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9만 원을 아끼면 고등학교에 들어간 딸의 참고서를 살 용돈이라도 줄 수 있고, 초등학생인 아들에겐 좋아하는 간식을 사줄 수 있겠다 싶었다.

"나, 내일부터 점심 싸갈래요. 다른 사람도 점심을 싸와 먹더라고."

점심은 일주일에 이틀만 싸가면 되었다. 야간 근무 설 땐 아파트 관리실에서 야참으로 먹으라고 컵라면이 제공되었다. 야간 근무 설 땐 덜 신경쓰이고 덜 움직이니 밤새 덜 허기진다. 야간 출근할 때 밥을 좀 든든히 먹고 가면 견딜만 하다. 중간에 컵라면 하나 먹고 건너 뛸 수 있는 것이다. 주간조 근무 설 때마다 점심시간만 되면 '오늘은 뭘 사먹지'하고 맨날 고민했는데, 도시락을 싸가지고 가서 먹으니 훨씬 속이 편타. 그냥 아내가 싸준거 먹기만 하면 되니 신경 쓸 일이 없어 좋다.

처음 집에 있던 보온 도시락 싸들고 다녔는데 그 비싼 보온 도시락을 그만 퇴근하면서 졸다가 급히 내리는 바람에 잃어 버리고 말았다. 버스 회사에 알아 보았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

그래 이번엔 2000원짜리 뿔 도시락을 하나 샀다. 가방에 넣어 다니면 일어버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나의 점심 고민은 정리되었다. 아내에게 조금 미안하다. 나는 싸주는 대로 먹으면 되는데 이번엔 아내가 '오늘은 뭘 싸주나?' 하고 고민하고 있는 거 같으니…. 아낀 9만 원을 아내 용돈하라고 주어도 좋을 거 같다.

덧붙이는 글 | '직장인 점심 투쟁기 응모글'



태그:#울산, #대기업, #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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