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의 형상과 색상을 통해 보이지 않는 진리에 다가가려는 사진전이 눈길을 끈다.
지난 9일부터 오는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관훈동 '갤러리 나우'에서 열리는 라규채 사진작가의 'Bamboo-空(공)에 美親(미친)다'전은 대나무의 형과 색을 통해 그 근원과 본질에 대해 사색을 하게 한 작품 20여 점이 선보였다.
작가가 대나무(Bamboo)를 소재로 한 작품의 핵심은 명료하다. 겉은 알차나 속은 텅 비어있고, 하늘로 솟아오르나 휘어짐이 땅에 닿고, 푸르름으로 덧칠했으나 하늘과 바람과 햇살 앞에 만상의 색으로 둔갑한 대나무의 본질에 대한 사색이다.
사물에 대한 작가의 주요인식은 무엇보다 '空(공)'에서 시작한다. 상당 부분 불교용어 혹은 동양 무위사상의 언술들을 끌어들이고 있어, 이해의 어려움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대나무 사진을 통해 보이지 않는 진리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나무의 '色(색)'도 '空(공)'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과 색은 한 몸으로 '色卽是空(색즉시공) 空卽是色(공즉시색)'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색은 고정된 정형이 아니다. 빛에 의해 부단히 변하는 비정형의 색이다. 작가의 색의 인식은 사물의 색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 흐르는 빛의 파열과 파동으로부터 순간적 생성되고 출몰되는 부정형, 무정형의 색상이라는 것이다.
12일 오후 전시장에서 만난 라규채 작가는 "이번 전시 작업에서 형상과 중량이 존재하지 않는 바람을 매개로 댓잎이 사라짐과 드러남의 반복 속에서 우주의 본질을 공으로 얻고자 했다"면서 "바람으로 인해 형상이 점점 우주 속 연무처럼 흩어지며 사라지는 과정이 공으로 도달하는 대나무의 실체는 완전히 없어지는 무(無)가 아니라, 자연과 우주의 원리인 공의 세계, 즉 진공묘유(眞空妙有)를 의미한다"고 전했다.
작품을 평한 진동선 사진평론가는 "작품 주제 '空에 美親다'는 공에서 나오는 색을 아름답게 보고 친하고 싶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라면서 "대나무에, 오묘한 대나무 형상에, 변화무쌍한 대나무 색상에 빠진 미친(美親) 작가"라고 말했다.
작품을 관람한 임기연 액자 작가는 "대나무 사진에서 세상의 오묘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었다"면서 "대나무의 근원적 형과 색의 본질을 알게 된 작품전"이라고 말했다.
조아라 갤러리 나우 큐레이터는 "바람에 의해 흔들리고 있는 대나무의 형과 색이 근원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면서 "대나무의 사라짐과 나타남 속에서 우주의 실체를 느끼는 듯하다"고 말했다.
'대나무의 고향' 전남 담양 출신인 라규채 작가는 고향 산천을 다니면서 대나무만의 작업을 고집해왔다. 광주대학교 대학원 사진학과를 졸업했다. 지난 2001년 첫 번째 전시 '대나무골 야생화'(담양, 한국가사문학관 갤러리)를 시작으로 2003년 '무등산 들꽃'(광주, 일곡 갤러리), 2005년 '천년의 푸른 향'(광주, 나인 갤러리), 2007년 '바다의 숨결'(서울, 갤러리 나우), 2009년 '대숲은 공하다'(서울, 갤러리 이즈), 2011년 'Bamboo'(담양, 대나무박람회 전시관)에 이은 이번 '空에 美親다'전은 여섯 번째 개인전이다.
사진집 <대나무골 야생화> <사진으로 본 남도 들꽃> <대나무골 누정> 등이 있고, 포토 에세이 <하늘을 나는 새는 뼈 속까지 비운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