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투명성기구는 세계 각국의 부패인식지수를 매년 발표하여 세계부패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고 독일 베를린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적 비정부기구다. 세계100여 개국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정부의 책임을 확장하고 국가 부패의 극복을 목표로 설립되었다. 지난 5월 14일부터 16일까지 국제투명성기구 아태지역회의가 우리나라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회의는 아태지역 반부패 전문가들이 70여 명이 26개국에서 참여한 국제회의다.
이 기구가 매년 발표하는 국가별 부패인식지수에서 가장 투명한 나라들은 주로 북유럽국가들이다. 이들 국가는 효율적인 행정감시제도, 국민들 전부가 서로의 세금 낸 액수를 정확히 알 수 있는 투명한 국가경영제도를 구축하여 부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구조를 갖고 있다. 한국의 부패인식지수는 노무현정부에서는 오름세를 보이다가 현 이명박정권 하에서는 계속하여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그에 따라 아시아 지역에서 우리나라 국가브랜드도 추락세를 달리고 있다.
철학자 라인홀드 니버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적적 사회>라는 책을 썼다. 그 책의 요지는 인간은 각 개인으로서는 도덕적 존재이지만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인간은 비도덕적이라는, 인간 본성에 대해 다소 비관적인 시각을 보이는 역작이다. '그럼 우리 인간은 영원히 부패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없을까?'라는 의문을 뒤로 한 채 세계 반부패 운동가이자 국제투명성기구 아태지역 총책임자인 시락 필밧 박사를 만났다. 다음은 지난 16일 올림픽파크텔에서 필밧 박사와 우리나라 부패의 현주소에 관해 나눈 일문일답이다.
- 한국의 경제규모에 비해 부패수준을 어떻게 평가하나? 아울러 한국의 청렴성을 국제수준으로 향상시키려면 어떤 정부의 조치가 따라야 한다고 보나? "한국의 국제사회에서의 위치를 생각하면 한국사회의 전반적 부패는 국제기준으로 볼 때 심한 편이다. 한국에서 반부패와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선 반부패와 관련한 법적에 조치에 대해 더욱 향상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민간부문 공익신고자에 대한 보호가 부족하다. 한국경제가 크다는 것은 그만큼 민간부문의 예산규모가 크다는 것이고 그 말은 돈이 많은 곳에 부패가 발생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결국 경제규모가 큰 국가는 그에 맞게 반부패 관련한 국가예산과 자원이 확보되어야만 부패를 척결 할 수 있다. 유엔반부패협약이 2008년 한국국회에서 비준되었지만 그 이행은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한국정부는 조속한 시일 내 기업부패방지법도 제정하고 OECD 뇌물 방지협약과 UN반부패협약을 적극 이행해야 한다.
특별히 독립적 반부패 기구였던 국가청렴위원회가 현 정부하에서 폐지된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아울러 청렴위원회 위원 배분이 9명 중 입법부 3명, 사법부 3명, 행정부 3명으로 골고루 배분된 것에 반해, 권익위 위원은 15명 중 행정부에서만 과반수 이상인 9명을 임명하는 현 상황은 심각하게 반부패 기구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제도다. 이것은 또한 유엔반부패협약 제6조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이런 상황에서 반부패와 청렴성을 제고하기 위한 반부패 기관의 독립성과 법적기반의 강화는 필수적이다."
- 우리나라가 반부패 관련한 정부의 지원과 자원이 부족하다는 지적인데 좀 구체적으로 무엇이 얼마나 부족한지 지적해달라."예를 들면 국민권익위 경우 부패방지국에 164명만 근무하고 있다. 한국 인구가 4700만 명인데 너무 부족하다. 홍콩의 경우 인구는 500만 명으로 한국인구의 10%를 약간 넘지만 반부패 기관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숫자는 오히려 한국보다 많은 300명이다. 물론 직원수가 많다고 더욱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정부의 반부패 근절에 인적자원은 그 경제규모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싱가포르의 반부패기관인 탐오조사국은 공직자의 부정행위뿐만 아니라 민간부문의 부정행위까지도 조사 범위로 하고 있다. 부패방지법이 규정한 범죄에 관련된 정보가 접수되거나, 상당한 혐의가 있을 경우에는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는 권한도 있다. 이 밖에도 은행계좌, 주식 지분, 동산구입, 지출상태를 조사할 권한, 관련기록, 물품의 제출을 요구할 권한이 있다. 더욱이 수사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혐의자의 재산과 서류를 압수, 수색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반면 한국 권익위 권한은 이에 훨씬 못 미친다. 이런 면을 볼 때 홍콩과 싱가포르의 청렴도가 한국보다 훨씬 높은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지난해 OECD 34개국 중 한국은 27위(5.4점)를 차지하여 경제력에 비해 여전히 낮은 등급에 머물렀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싱가포르(9.2점)와 홍콩(8.4점)이 꾸준히 상위를 차지했다, 일본도 2010년 7.8점에서 8.0점으로 8점대에 올라섰으며 한국과 비슷한 점수대에 있던 대만도 2010년 0.2점, 2011년 0.3점이 상승하여 6.1점으로 6점대에 올라섰다. 반면 아시아 국가에서 한국만 하락세를 유지하고 있다. 나는 반부패에 대해 인색한 지원을 펴는 정부정책과 부패수준은 분명하게 깊은 관계가 있다고 믿는다."
- 부패에 대한 기준이나 정의도 문화적 척도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반론이 있다. 예를 들면 고마운 사람에게 선물을 주는 것은 미풍양속이나 아름다운 문화일 수 있는데 문화적 가치를 무시하고 무조건 청렴도라는 잣대를 들이댄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금년 초 한국프로축구에 승부조작이 보도되어 몇몇 선수들이 구속되고 자살하는 선수까지 있었다. 그뿐 아니라 프로배구. 프로야구에도 한국 검찰이 선수들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인기 프로스포츠가 이토록 부정부패 승부조작에 오염되어 있는 것은 문화적 척도로 정당화 될 수 없다. 부패는 그저 부패일 뿐이다.
유원일 의원(창조한국당)이 2011년 국정감사를 위해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입수한 '2005-2010년 공무원행동강령위반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자. 이 자료에 보면 MB정부(3년)동안, 참여정부(3년)에 비해 공직비리가 143%나 증가했다. 공무원행동강령 위반도 참여정부 3년에 2294건이 발생했지만, MB정부 3년간은 3289건으로 30%나 증가했다. 반면 공무원 징계비율은 참여정부 53.6%, MB정부 42%로 오히려 11.5%나 떨어졌다. 이러한 부패는 어떤 경우에도 문화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한국은 청렴성을 높이기 위해 더욱 노력과 향상이 필요하다."
- 국제투명성기구에서 매년 전 세계 국가별 부패순위를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Corruption Perception Index: CPI)는 무엇인가? "CPI는 매년 각 국가별로 공무원과 정치인들 사이에서 부패가 어는 정도 존재하는가에 대한 기업인, 애널리스트들의 인식 정도를 발표하는 점수다. CPI에 사용된 지수는 다양한 국제적 기관들에 의해 수행된 다양한 설문조사들 가운데에서 부패와 관련된 자료만을 집계하여 지수로 산출하고 있다. 사용된 지수는 주로 공공부문 부패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대부분 사적 이익을 위한 공적 권력의 남용과 오용에 관련된 질문들이다.
예를 들면 2005년 경우 국제투명성기구의 CPI는 10개 독립된 기관들이 실시한 16개의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하여 산출하였다. CPI는 주로 해당국가에 거주하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포함하고 있으나 기업인들과 애널리스트 등 전문가 설문조사가 주를 이룬다. 기업인과 같은 전문가들이 일반인보다 큰 부패나 권력형 부패에 대하여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 부패가 덜한 나라들을 보면 북유럽이나 싱가포르, 뉴질랜드 등 대개가 작은 나라들이 많다. 이것은 바꿔 이야기하면 우리나라처럼 상대적으로 인구가 많고 큰 나라는 부패가 불가피하다고 볼 수 있지 않나?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보다 인구가 많고 땅이 큰 미국이나 영국, 독일, 일본도 한국보다 청렴한 나라다. 결국 나라나 인구의 크기가 문제가 아니다. 정부기관이 효과적으로, 솜방망이 처벌이 아닌, 법집행을 하고 있느냐가 부패를 근절하고 청렴성을 높이는 것과 직결된다. 북구의 경우도 인구는 작은 소국이고 경제 규모도 작지만 반부패를 위해서는 많은 인적, 물적 자원을 투여하고 있다. 씨를 뿌리지 않고 수확을 기대할 수는 없다."
- 이번에 국제투명성기구 아태지역회의차 한국을 방문했는데 이번 회의 주요내용과 성과가 있었다면 무엇인가?"부패와 관련한 아태지역 문제를 해결하고 반부패 방법을 아태지역 공동체 차원에서 모색하기 위해 호주, 뉴질랜드, 중국, 대만, 일본, 인도 등을 포함 아태지역 26개국에서 70여 명이 참가하였다. 유럽연합과 비교해 아태지역은 반부패 모델이 부족하다. 지속가능한 반부패 제도는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아태지역, 나아가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추구되어야 할 과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반부패기관이나 시민사회의 노력 뿐 만 아니라 공무원, 정치인, 기업인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 이를 과제로 인식하고 실천해 나가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국제투명성기구는 지난 2005년 노무현정부에서 체결한 반부패 노력인 투명사회협약이 역할 모델이 된다고 평가해왔다. 그래서 우리 국제투명성기구의 이번 아태 지역 참가자들은 노무현 정부의 반부패 노력에 대한 이명박 정권의 지원이 지난 2008년 중단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에 국제투명성기구 아태지역 참가자들은 성명서를 통해 이명박 정부와 국회, 그리고 기업인들에게 시민사회가 요청하고 있는 바와 같이 투명사회협약의 재활성화를 위해 노력해 줄 것을 요청했다. 우리 참가자들은 이명박 정부가 반부패 전문가들의 모임인 국제투명성기구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이행 하고자 노력할 때 한국의 부패수준도 개선될 것이라 생각한다. 나아가 우리는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반부패운동의 역할모델로서 우뚝 서주기를 기대한다."
- 국제투명성기구에서 일하기 전에 오랫동안 국제사면위원회에서 일했는데 반부패와 인권이 상관관계가 있나?"사회를 이루는 기관이나 강자가 부패하면 그 사회의 구성원인 약자의 인권이 침해받고 유린되는 결과가 초래된다. 그래서 인권문제와 부패문제는 깊이 관련되어있다. 그래서 한 사회의 투명성을 강화하여 강자의 독식과 부패를 막는 길은 곧 약자의 인권이 존중받고 보호되는 사회를 만드는 길이다. 결국 인권향상과 한 사회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부패와 싸우는 것은 보다 나은 인간의 삶의 질을 위하여 노력하는 길과 통한다. 부패하지 않는 사회란 곧 공정한 사회다. 그리고 공정한 사회에선 우리 삶의 차원이 높아지고 인권이 존중받고 보호된다. 그것이 우리가 추구하고 지향해야 할 이상적인 사회라고 생각한다."
시락 필팟 박사 |
시락 필팟 박사는 태국계 영국인으로 태국과 영국에서 오랫동안 인권운동에 몸담았다. 태국 인권위원회 인권보호 소위원회 회원, 아세안 인권기구 설립에도 참여했다. 태국에서는 인권운동으로 옥고를 치루기도 했다. 국제사면위원회에서 프로그램 디렉터로 일했으며 미국 피츠버그대학교 국제관계학 박사다. 현재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반부패단체인 국제투명성기구에서 아태지역 디렉터로 근무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