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가을, 지리산에 올랐는데 등산화가 아니라 운동화를 신고 갔다. 같은 간 한 분이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셨는지 며칠 후 등산화를 선물하셨다. 그 후 등산을 자주 갔을까? 아니다. 1년에 5~6번이다. 그리고 등산을 다녀오면 신발을 닦아 보관했다. 약 7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등산화는 새것 같다. 나같은 사람때문에 등산화 만드는 회사가 망하지는 않겠지만 분명한 것 하나는 '짠도리'라는 내 별명이 유효하다는 점이다.
지난 17일 아는 사람들과 경남 진주시 집현면에 있는 집현산(577m)에 올랐다. 진주에 산 지 12년이 되었지만 집현산이 진주에서 가장 높은 산인 줄 처음 알았다. 첫발을 내딛는 순간 조금 가파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평평했다. '이쯤이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정상을 앞둔 100m(길이는 약 800m)는 가팔랐다.
같은 일행 중에 1000m는 넘어야 '산'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분이 계시다. 이 분에게 집현산은 언덕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헐떡고개보다 더 힘들었다. 다행인 것은 이름 모를 꽃들-그 분이 꽃 이름을 다 가르쳐주셨지만 돌아서니 까먹어버렸다-이 나를 반갑게 맞아 주지 않았다면 되돌아 왔을지도 모른다.
씀바귀는 싸리꽃을 질투하지 않아물론 다 까먹은 것은 아니다. 씀바귀도 있었고 싸리꽃도 봤는데 볼품은 없었다. 하지만 예쁘지 않아도 타박할 수 없다. 예쁘고, 귀엽고, 화려한 것만 꽃이라고 하면 자연은 삭막할 뿐이다. 사람이 모두 똑 같은 생김새로 예쁘다면, 그것은 예쁜 것이 아니라 조금 섬뜩한 일이다. 당연히 꽃들도 마찬가지다. 생김새가 다르기에 자연은 생명이 넘치는 곳이다. 그리고 씀바귀는 싸리꽃을 질투하지 않는다.
질투하지 않는 이들, 사람과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배울 것 참 많다. 아주 작은 꽃이다. 어떻게 이런 녀석 그 모든 것을 다 이겨내고 필 수 있었을까? 연약한 것 같지만 한없이 강하다. 사람 손길이 닿지 않으면 자연이 허락한 그 시간까지 자기를 뽐낼 것이다. 자연의 위대함은 바로 이들이 때문이리라.
구수한 둥굴레, 꽃은 은은하게 예쁘네조금 탄 숭늉처럼 구수한 둥굴레차. 꽃도 은은하게 예쁘다. 둥굴레꽃을 처음 봤는데 이런 꽃을 좋아한다. 화려하지 않은 것, 뽐내지 않는 꽃이다. 눈이 뻔쩍할 정도로 화려함은 없지만 보면 볼수록 마음을 끈다.
이 녀석 오래 기억하리라. 그리고 이런 꽃은 질리지 않는다. 화려하고, 눈이 뻔쩍하게 예쁜 꽃은 쉽게 질리고, 지는 모습 역시 추하다. 하지만 이런 녀석은 질리지 않고, 지는 모습도 은은하게 자신을 내려놓는다. 어쩌 좋아하지 않을 수 있는가.
진주가 좋은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웬만한 높이 산 정상에 가면 지리산을 볼 수 있다. 서울시가 아무리 좋다지만 지리산을 볼 수 없다. 한라산을 빼고 남녘 하늘 아래에서 가장 높은 곳이 지리산이다. 집현산에서도 지리산이 보인다. 하늘이 맑지 않아 않아 희미하게 보이지만 역시 산은 지리산이다.
지리산을 올라야 산에 올랐다고 하는 그 분, 지리산을 보자 마냥 즐거워한다. 지리산에 오른 지 벌써 7년이 지났다. 얼마 있지 않아, 산 중의 산이 그곳에서 등산화가 자기 사명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 산에 올랐다고, 하루 종일 다리가 묵직하다. 게으름 피운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