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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진관을 가시나요?

증명사진 찍을 때나 가신다구요? 모든 사진을 인터넷으로 뽑으신다구요?

"엄마 요즘 우리 가게 주 수입원은 뭐야?"
"증명..."
"그 다음은?"
"가족사진, 애기사진..."
"다음은?"
"... 영정사진이나 디카나 폰 사진."

"그럼 엄마는 제일 힘든 점이 뭐야?"
"손님 없는 거."
"엄마, 우리 뭐해먹고 살지? 킥..."

엄마에게 계속 질문을 하다가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우리 가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얘기를 들으니 먹먹해졌습니다.

저희 집은 20년이 넘게 한 자리에서 사진관을 해왔습니다.
지금껏 동네에서 터주대감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지요.
많이들 아시겠지만, 요즘 사진관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내려가고 있습니다. 가게가 잘 되길 바라는 것은 감지덕지고, 이젠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 정도로 쇠락하고 있습니다.

 가게의 중심. 촬영공간이다.
 가게의 중심. 촬영공간이다.
ⓒ 황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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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게의 벽면에 걸려 있는 사진들과 작업한 사진들
 가게의 벽면에 걸려 있는 사진들과 작업한 사진들
ⓒ 황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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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휴대전화로 사진을 많이 찍지요?
그렇지만 많이 뽑진 않아요. 휴대전화로 찍어 인화한 제 사진을 본 친구는 휴대전화 사진을 인화한 애는 처음 본다면 폰으로 사진을 인화할 수 있는 지 몰랐다고 하더군요.
그밖에 사진들도 파일로 보관하거나 인터넷을 통해 대량으로 뽑곤합니다.

또 이력서나 증명사진을 필요로 하는 것에도 파일로 올려 보내 저장한 후, 보내는 것이 참 많지요?
그러니 증명사진을 한번 찍고 사진을 다 써도 파일만 있으면 그걸 계속 쓸 수 있기에, 옛날보다 사진을 찍는 빈도도 훨씬 줄었습니다.

그래서 참 고민인 것이 있습니다. 파일 값을 받자니 속사정을 모르는 손님들은 왜 이런 것도 값을 받느냐는 식으로 말씀하시고 안 받자니 몇 푼이라도 아쉬운 제 입장에서는 큰 손해이고... 이것 참 난처해집니다.

지난 1월 27일, 새벽 일찍 저는 엄마를 따라 큰 대형버스에 올랐습니다.
버스에는 함께 떠나는 사람들을 태우고 외교통상부가 근처에 있는 서울 보신각에 도착했습니다.

혹시 알고 계신가요?
외교통상부 정책에 반대한 사진업계의 반발로 보신각에서 집회가 일어난 것을요.
관심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잘 모르실 것입니다.
외교통상부의 정책은 간단히 말해 여권 사진을 국가가 개입해 무료로 찍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증명사진 촬영 역시 큰 수입원으로 생각되는 요즘 사진업계에서는 당연히 엄청난 반발이 나올 수밖에요.

지난 일이지만 직접 참여한 제가 본 눈으로 말씀드리면, 우선 처음부터 굉장히 짜증이 났습니다. '생존권 투쟁' '사진업계 몰락'같은 처절하고 위험한 경고성의 문구의 띠와 피켓을 들은 아저씨들은 그렇다 쳐도, 처음부터 내분의 조짐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저희와 같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허름한 식당에 몰아넣고 밥을 먹게 하고 나머지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로 보이는 경우는 호텔 식당에 앉아 밥을 먹었습니다.

여기서부터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밥은 그렇다 쳐도 다함께 모인 자리에서 언사를 하는데 계속 딴 얘기만 하는 겁니다. 중요한 핵심은 찌르지 않고 주위만 도는 느낌이었습니다. 같은 목소리로 함께 투합해 의견을 내러 서울에 모인 것인데 탁상공론의 장으로 변질된 것 같아 한심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시간은 자꾸만 지체가 되고 거기에 지친 사진관 사람들은 집회를 하기도 전에 의욕이 상실되었죠. 결정적인 것은 얘기를 하다가 간부들과 일반 사진관 사람들과의 의견대립이 일어났고 간부 측에서는 그 의제를 그대로 밀어부쳤습니다. 그러자 대립은 격화되어 몸싸움까지 일어났는데 정말 추하더군요. 마치 국회싸움을 눈앞에서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사람들과 보신각으로 가 다함께 소릴 높였습니다.

어찌 됐건, 의견을 피력하는 아니, 집회 자체가 처음인 저는 새롭게 느껴지고 당황스러운 면도 많이 있었지만 행동을 통해 보여주는 모든 참여자분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그 마음들이 얼마나 절박한지 느껴졌습니다.

그렇지만 역시나 냉정한 시민들의 반응, 기자들은 본질파악하려는 시도보다는 화제집중에 더 촉각을 곤두세운듯 보였습니다. 게다가 집회에 참여한 저조차도 '정말 내가 지금 여기에 참여한 것이 잘한 일일까? 옳은 일일까?'라는 생각을 몇 번씩 했습니다.

여전히 기분은 좋지 않은 채로 내려오는 길에 실시간으로 기사가 난 것을 보고는 더 씁쓸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부정적인 의견이 대다수였고, 카메라를 부수는 퍼포먼스를 보고는 단순한 쇼로 취급하고 조롱하는 글들이 대다수였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외교통상부의 확답은 없습니다.

"너도 사진사 됐니? 어짜노..."

며칠전에는 엄마가 사진찍는 일에 도움을 주러 오랜만에 야외촬영을 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어느 분이 저한테 오셔서 "네가 딸이니? 너도 사진사 됐니? 어짜노..."라고 하는데 순간 울컥했습니다.
그 분께선 악의없이 뱉은 말이겠지만 하면서도 서글퍼졌습니다.
마지막의 '어짜노'라고 할 때 저를 불쌍하게 여기는 눈빛이 싫었습니다.

"그게 아니고 오늘 엄마 사진일을 도와주러 온 거에요"라고 대답하긴 했지만 옆에 함께 있던 엄마가 들었을까봐 내내 신경이 쓰였습니다.

돌아 오는 길에 엄마가 말했습니다.

"예전에는 야외촬영을 해도 거뜬했는데 요즘은 나갔다 오면 진이 다빠져..."

새파랗게 젊은 저도 그날 너무 힘들었기에 대단한 체력이 요구되는 구나, 참 쉬운 게 없구나, 정말 부모님이 참 힘들게 돈을 버시는 구나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사진업의 하락세는 거스를 수가 없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예전의 일입니다.
저희 부모님은 제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가게가 어떻게 돌아가고
어떻게 운영을 하고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물어봐도 함구하고 계셨는데 저는 거기에 대해 의문을 많이 가졌지만 그냥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아빠가 비싼 브랜드몰 구두 상품권을 산 문제로 엄마와 크게 다툰 일이 있었습니다.
슬프게도 부모님의 싸움은 잦은 일이라 어렸을 때부터 내성이 생긴 저는 그냥 신경쓰지 않았지만 평소에 치장은 물론 본인의 옷에도 관심이 없는 아빠가 구두 상품권을 샀을리는 없다고 판단한 저는 자초지종을 듣고 얼굴이 굳어졌습니다.
우리 사진관은 학교의 앨범제작에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연례행사로 앨범을 하는데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앨범제작에 참여하고 싶은 사진관들끼리 입찰경쟁을 해서 이기면 그 학교의 앨범을 제작하게 됩니다.

대기업에 하청을 주는 하청업체 역할인 셈입니다.
절대 손해를 보는 장사를 하지 않으려는 대기업의 이기적인 가격경쟁의 제안에 울며 겨자먹기로 응해야 하고, 싫으면 니가 나가라 라고 무차별적인 해고를 하는 행태와 똑같은 상황에 저희도 놓인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우위에 선 학교에 잘보여야 하고 아빠는 교장에게 조금이라도 잘 봐주십사 선물하기 위해 그 상품권을 구입한 것입니다. 그로 인해 돈도 없는데 쓸데 없는 데 돈을 쓴다는 엄마와 현실적으로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다 우리가 약자인데 어떡하냐 라는 아빠의 대립으로 싸움이 커졌습니다.

이것 아니라도 신경쓸 일이 많은데 두 분이 감정을 낭비하는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그들의 비위에 맞추기 위해 이렇게 준비하는 아빠나 그걸 또 좋다고 받는 교장이나 선생들 학생회장, 기타 관련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역겹게 느껴졌습니다.
그렇다고 앨범이 많은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닌데...
아빠가 참 밉고 찌질하게 느껴지면서도 "이런게 약자의 비애야..."라는 엄마의 말에 그냥 입을 앙다물고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머릿속에서 맴도는 약자의 비애라는 말.

물론 기쁜 일도 많습니다. 저희 가게에서 처음 가족사진을 찍어본다는 다문화가정의 가족, 첫 아이의 돌 사진을 찍으러 온 젊은 부부, 제대 후 넣을 첫 이력서에 들어가는 증명사진이라 무척 신경써서 해달라는 남자손님, 졸업사진에 들어가는 프로필 사진이 마음에 걸려 다시 찍으러 왔다는 고등학생들. 영정사진에 찍을 사진을 미리 찍고 싶어 들렀다는 인자한 미소의 할머니 등 다양한 손님들이 찾아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또 기쁩니다.

어찌 됐든 시대를 거스를 순 없겠지요. 자본과 빠르게 변해가는 여러 변화들 앞에서.
저도 기움을 인지합니다. 비단 사진뿐이겠습니까.
동네에 몇십 년동안 남아 있던 음반가게가 간편하게 음악을 내려받을 수 있는 요즘 시대에 불황을 이겨내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는 소식. 동네 빵집이 유명 프랜차이즈 빵집에게 자리를 내줬다는 등의 소식은 이제 흔한 기사가 됐습니다.

제게 바람이 있다면 평생의 절반을 가까이 몸담고 계신 사진업에서 천천히 발을 뺄 수 있게 되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너무 쉽고, 빠르고 편해진 세상이지만 사진관을 가끔씩 이용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 마지막으로 너무 안좋은 시선으로만 사진관을 바라보지 않아 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사진 편집하고 계신 엄마. 몰래 찍었다. 엄만 이 사실을 모르고 계신다.
 사진 편집하고 계신 엄마. 몰래 찍었다. 엄만 이 사실을 모르고 계신다.
ⓒ 황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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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쓰면서 생각한 건데... 저희 집은 사진관 가족인데도 사진이 많이 없네요.
사진도 많이 없고 가족사진은 하나도 없습니다. 여태껏 뭐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부모님 괜찮으실 때 가족사진 한 번 찍어야겠습니다.
커다랗게 인화해 좋은 액자에 끼워 걸어 놓으면 참 뿌듯해질 듯합니다.


#계륵과 같은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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