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마친 후 녹음내용을 글로 푸는데, 유독 자주 들리는 두 마디가 있었다. 그건 인터뷰이의 말이 아닌 기자 본인이 무심코 내뱉은 추임새, "부럽다"와 "좋겠다"라는 두 감탄사이다.
반년 전인 2011년 11월 15일 "학우 여러분은 학교를 사랑합니까? 예비 학우 여러분들은 연세와, 아니 대학과 사랑에 빠져 있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왜 굳이 지금 여기 있습니까? 혹시 다른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라는 물음을 학생 사회에 던지고 홀연히 학교를 떠난 장혜영씨를 만난 자리에서였다.
"부럽다"와 "좋겠다"가 단순한 추임새만은 아니었다. 인터뷰가 끝난 후 기자 스스로 "1시간만 인터뷰를 더 했으면 나도 자퇴를 고려할 뻔했다"고 털어놓았을 정도로 장혜영씨는 본인의 자퇴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 모습이었고, '고졸로서' 세상을 사는 것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도 없어 보였다. 오죽하면 "장래희망이 뭐냐"는 질문에 "지금 사는 것처럼 계속 사는 것"이라고 답했겠는가.
4학년 2학기에 연세대를 자퇴한 그녀를 두고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눈 딱 감고 일 년만 버티면 되는데 왜 그걸 못하냐"고. 하지만 인터뷰를 하는 내내 정반대의 의문이 들었다. "대체 어떻게 3년간 참으면서 학교를 잘 다닐 수 있었냐"는 물음이었다. 그 정도로 그녀는 즐거워 보였다.
인터뷰는 그녀가 학교에 '공개이별 선언문'을 붙인 지 꼭 반년째 되는 지난 5월 15일에 이뤄졌다. 학교를 '공식적으로' 자퇴한 후 반년이란 짧은 기간 동안 그녀는 책(<모두 사랑하고 있습니까>)을 한 권 펴내고, 영화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하고, 두 달간의 외국여행을 다녀오는 등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냈다고 말했다. 다음은 장혜영씨와의 일문일답이다.
"자퇴 후회 없어... '다섯 살짜리 왕' 같은 대학생 많다"
- 오늘이 '공개이별 선언문'을 붙인 지 반년째 되는 날이다. 알고 있었나? 여러 번 답했겠지만 다시 묻자. 그때 결정(자퇴)에 후회하지 않는가?"몰랐다. 일기장에 써 놔야겠다.(웃음) 후회는 당연히 없다. 사람들이 '뭔가 잘못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사람이나 사회에 휘둘린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게 있는데 그걸 못 하기 때문에 잘못 지낸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런데 난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알고 또 그걸 하고 있다. 후회가 있을 수 없다."
- 자퇴하게 된 계기가 있나? 책 <모두 사랑하고 있습니까>에는 일본에서 만난 어떤 지인 때문이라 썼고, 한편으로는 장학금 등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던 것 같다."두 가지 모두 맞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공개이별 선언문'을 붙인 건 반년 전이지만 잠정적으론 그것보다 1년 전부터, 그러니까 저한테 자퇴는 1년 반 전의 이야기다. 때문에 지금으로선 그때 기분을 알 수 없다. 다만 실험적으로 하루 안 나가봤다. 그랬더니 그 날 너무 좋더라. 그 이후로 학교를 나가지 않았다. 1년 반 전의 결정이니까 지금 뭐라 말하는 것은 가식인 것 같고 정말로 '(학교에 가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하는 실험이었다."
- 자퇴 당시엔 의도와 상관없이 '이어지는 명문대 학생의 자퇴'라는 프레임으로 언론에 노출된 것 같다. 반년이 지난 지금은 '연세대'라는 꼬리표에서 조금 자유로워졌나?"그러게 말이다. 언론들 뽑아내는 이름들 하고는…(웃음) 아무래도 나는 일개 재야의 개인이었다가 어정쩡하게 입방아에 오른 사람이다. 때문에 날 찾는 사람들 입장에선 나를 그 사건(자퇴)과 별개로 생각할 수 없다. 때문에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학교에 다닌 것도 나간 것도 내 선택이기 때문에 나쁘게 생각하진 않지만, 그게 너무 강력한 인상으로 남아서 그 후 내 행동들이 모두 거기에 비추어 해석되는 건 좀 부정적이다."
- 자퇴 이전 고등학교 후배들에게 "지금 대학이 중요한 게 아니야, 너희가 하고 싶은 일을 해"라고 조언하던 중 "그치만 선배도 연대에 갔잖아요"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고 썼다. 그 때 기분이 어땠나? "자퇴하고 받았던 반응들의 예습인 것 같았다. 그렇게 어린아이들이면 뇌가 말랑말랑해야 하는데 얼마나 말라 있으면 내 이야기가 안 들릴까 생각을 하면 슬프고 안타깝다."
- 책을 읽다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 친구와의 대화 중 친구가 "그래도 결국 용기가 없으니까 (대학에) 그냥 계속 다니는 거지"란 말을 하자 책 <어린 왕자> 속 주정뱅이가 생각났다고 적은 부분이다. 얼마나 많은 대학생이 '용기가 없어서' 대학에 다니고 있는 것 같나?"모르겠다. 대학 자퇴 관련해서 제가 지금은 감옥에 간 서울대 친구(서울대에서 자퇴하고 지금은 병역 거부 문제로 감옥에 있는 공현씨를 의미)와 다른 건 걔는 학벌 거부 운동을 한다는 거고 저는 '가고 싶으면 가야지'하는 온건한 자유주의자로 분류된다는 거다.
개인의 선택에 대해서는 뭐라 말할 수 없다. 안타까운 건,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개인들이 많다는 거다. 그러니까 다섯 살짜리 왕 같은 느낌? 그니까 자유의 주도권은 자기한테 있는데 그걸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많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우리에겐 모두 자유가 있는데 난 이렇게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당신들은 그걸 그렇게 사용하기로 결정해서 여기 있는 거냐 아니면 자유가 있다는 자체를 모르는 거냐, 잊어버린 거냐' 이런 걸 묻고 싶은 마음이다."
- 연대 자퇴생보다 자퇴를 허락한 그 아버지가 더 궁금하다는 사람도 있더라. 아버지와 지금도 종종 그 때 대화를 하나?"그렇다. 아버지랑은 점점 친구가 되어 가고 있다.(웃음) 그때 얘기가 나오면 농담삼아 '기왕에 이렇게 된 거 웃으면서 삽시다. 당신이라는 아버지가 나 같은 딸내미를 가지게 된 건 독특한 경험이다. 좋지 않느냐' 그런다. 아버지도 이제는 나보다 한 술 더 떠서 '너 앞으로 어떻게 되나 보자. 나도 궁금하다' 그러신다. 재밌다.(웃음)"
"지금처럼 사는 게 장래희망, 고졸이 내 스펙이다"
- 한 인터뷰에서 책이 많이 안 팔렸다는 이야기를 했다. 지금은 좀 어떤가?"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쭤보지 않았는데 사장님한테 '재판 냅시다' 그런 얘기가 없으니까…"
- 평소 사랑, 소통 이런 말을 중요시하는데, 기억에 남는 독자와의 소통이 있다면?"한 아기 아빠가 블로그로 연락을 주셨다. 아기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생각을 하다가 제 책을 봤는데, 얘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표정으로 살아가는지 궁금하다고 만나자고 하더라. 돌아가시면서 '내 아들이 너하고는 24, 25살 정도 한 세대 차이가 나는데 네가 있는 세대가 우리 아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줄지, 또 네가 거기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해서 두 번째 책을 냈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지금 영화 쪽에서 일을 하는데 그것도 책 때문에 맺어진 인연이다. 영화 <동승>을 찍으신 감독님과 함께 작업하는데, 감독님이 책을 보시고 '넌 초년고생을 많이 했으니까 이제 고생하지 말고 나와 같이 일을 하자'고 하더라. 시나리오 작업에 합류해서 끝난 상태고 이제 크랭크인에 들어가게 될 거다.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고 제목은 <현의 노래>다."
- 구체적인 장래희망이 있나?"물론이다. 지금 나처럼 사는 게 가장 크고 구체적인 장래희망이다. '어쩌면 이렇게 자신 있게 이야기하느냐'고 하는데, 어떤 삶을 살고 어떤 결과가 일어나도 전적으로 내 선택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래서 친구들도 한마디씩 한다. '혜영아, 종교를 만들라'고.(웃음)"
- '책값은 자유' 프로젝트와 'copy is right' 프로젝트를 하신다고 들었다. 어떤 취지인가."비슷하다. 나는 써서 먹고 사는 쪽이지만 가능하면 비용을 내지 않고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진행하는 일이다. 세종대왕이 한글에다 저작권료를 받는 건 아니지 않나. 다만 내 뜻에 공감한다면 저에게 돈을 주십시오(웃음) 이런 취지다. 후자도 '책값은 자유니까 당신이 보고 생각하는 가치만큼 내라'는 말의 연장선이다. 문화라는 건 카피 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고 감동이라는 것도 결국 감정의 카피다. 그런데 왜 카피에 돈을 받느냐는 문제의식이 출발점이다. 어떤 카피에는 돈을 받고 어떤 카피는 너무나 당연스럽게 이루어지는데 이건 이 카피로 먹고 사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 자퇴 직후 쏟아졌던 인터뷰에서 "고졸로도 보란 듯이 살아갈 수 있다"는 오기와 실험정신이 자퇴 동기 중 하나였다고 밝혔다. 반년 살아보니 어떤가."고졸을 핸디캡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졸이라는 게 저의 스펙이라고 생각한다."
- 무슨 뜻인가."스펙이 뭔가. 자격이다. 그리고 증명이다. 이 사람이 뭘 해온 사람인지에 대한 증명이다. 우선 내 스펙은 대학을 자퇴했고 일본 지진 때 봉사를 했고 여행을 자주 다니고… 이런 거다. 스펙이란 건 그거 자체가 뭘 의미하는 게 아니다. 그걸 가지고 이 사람이 일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판단하는 기준일 뿐이다. 예를 들면 난 토익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몇 점이나 나오는지 모른다. 하지만 미국에 가서 1년 살라고 하면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다. 이런 얘기다."
- '고졸이 스펙이다'라니, 비난 댓글이 예상된다.(웃음) '네가 연세대를 자퇴했으니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거 아니냐'하는.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게 그거다. 그런 식으로 한 줄씩 뱉어도 괜찮은데, '그게 당신이 살고 싶은 삶이냐' 그렇게 말하고 싶다. 한번은 이준석(전 새누리당 비대위원)하고 밥을 먹은 적이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날이 민주당에서 슈스케(민주당 청년비례대표 지원 '락파티') 이런 걸 하는 날이었다. 그때 재수 없게 사진을 찍히고 기사가 났는데 누가 내 얼굴을 알아봤는지 이런 댓글이 달렸다. '연대 자퇴녀, 역시 국회의원 출마하러 그러는 줄 알았다'하는."
- 처음 들었다. 그래서, 국회의원 생각은 없는 건가? (웃음)"웃기지도 않다. 한국의 인터넷 정말 대단한 것 같다."
- 마지막 질문이다. 만약 혜영씨와 비슷한 사고 회로를 가진 후배가 자퇴 문제로 고민한다면 혜영씨가 걸었던 길을 권할 수 있겠는가."내가 '이게 맞겠네요'하는 상담원이 되기보다는 '이런 길과 저런 길이 있겠네요'까지만 해주고 판단에 책임을 지는 건 결국 자신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술을 사주면서 이야기할 것 같다.(웃음)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엇이 너를 가장 후회하지 않게 할 것이냐에 대한 대답을 생각해보라고 조언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윤형준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 2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