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친일화가가 그린 윤봉길 의사 표준영정을 하루빨리 교체해야 한다는 여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는 최근 충남 예산군 덕산면 향토지에 등재된 친일경찰 삭제 여론과 함께 윤 의사의 고장인 예산군 덕산면에서만이라도 친일잔재를 청산해야 한다는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현재 충남 예산군 덕산면 충의사 사당에 모셔진 윤 의사의 표준영정은 월전 장우성(張遇聖·1912~2005) 화백이 그린 작품으로, 문화체육관광부가 1978년 표준 영정(지정번호 16번)으로 지정했다.
장 화백이 그린 표준영정에서 윤 의사는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었다. 한복을 입은 모습인 항일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 선생 표준 영정(정광일 작)과 유관순 열사의 표준 영정(윤여환 작)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윤 의사 표준영정을 그린 장 화백은 일제강점기 친일행적 때문에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린 인물이다.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장 화백은 1943년 6월 조선총독부에서 열린 제22회 조선 미술전람회 시상식에서 조선인 수상자로는 최초로 답사(?) 했다. 1943년 6월 16일자 <매일신보>는 "결전하(決戰下) 예술가의 두 어깨에 지워진 임무가 중대함을 강조하는 열렬한 인사를 하자 일동을 대표하여 동양화의 장우성 화백은 감격에 떨리는 목소리로 총후 국민예술 건설에 심혼을 경주하여 매진할 것을 굳게 맹세하는 답사를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장 화백은 또 1944년 3월 '공격하라, 멈추지 말라'는 구호를 명기할 정도로 침략전쟁을 부추기는 군국주의 미술전람회였던 '결전미술전(決戰美術展)' 일본화부에 <항마(降魔)>를 응모해 입선했다.
<항마>는 '악마(연합군)를 굴복시키는 날카로운 검'이란 뜻의 일제 국민가요 <항마의 이검>과 주제가 일치한다. 천안시는 지난 2007년 유관순 열사의 표준영정을 그린 장 화백의 친일행적이 불거지자 발 빠르게 유 열사의 표준영정을 교체했다. 하지만 예산에서는 그동안 윤 의사 기념사업 및 선양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사)매헌윤봉길월진회 안에서만 '윤 의사 표준영정을 교체하자'는 목소리가 간헐적으로 흘러나왔을 뿐 친일화가가 그린 윤 의사의 표준영정에 대한 구체적인 문제 제기나 공론화는 거의 없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윤 의사의 표준영정을 친일화가가 그렸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주민이 대다수다. 4·29 상해 의거를 경축하고 '윤봉길 정신'을 계승한다며 매년 '윤봉길 문화축제'를 열고 있는 지역사회가 여기저기 눈치를 보느라 표준영정 교체를 거론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한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짚어볼 때다.
지금이라도 월진회와 매헌사랑회, 행정 등을 중심으로 지역사회 전체가 나서 적극 윤 의사 표준영정 교체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편, 윤 의사의 결연한 의지가 고스란히 배어있는 사진 자료가 남아있기 때문에 굳이 친일화가가 그린 표준영정을 고집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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