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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와 목사, 두 바보 이야기
▲ 책표지 기자와 목사, 두 바보 이야기
ⓒ 꽃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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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1885) <성경이 있는 정물>을 김기석 목사는 '들어가는 말'에서 언급했다. 그림 속에는 '낡은 탁자보 위에 세 가지 물건이 놓여있다. 펼쳐진 두툼한 성경책과 귀퉁이가 해어진 작은 소설책 한 권, 그리고 불 꺼진 초가 꽂힌 촛대'이다. 펼쳐진 성경은 이사야 53장 3~5절, '고난 받는 종의 노래'로 알려진 대목. 그림 속에 등장하는 소설은 에밀 졸라의 <삶의 기쁨>이다.

김기석 목사는 '고흐는 대체 왜 이 두 책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일까. 이미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세계와 자기 세계를 화해시키려는 시도가 아니었을까. 삶에 대한 모든 해답을 성경에서 얻을 수 있다며 다른 책들을 백안시했던 아버지의 경직된 신학으로부터 탈주했던 고흐는 이 그림을 통해 성경과 소설, 교회와 세계는 서로를 비춰주는 거울이 될 수 있다고 아버지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 4월 북 토크에서 만났을 때 김기석 목사는 자신을 '다리 놓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던 말이 문득 떠오른다. 교회 내부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교회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더 자신의 책을 많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고 했었다. 기독교 내엔 도전을, 외부에 있는 사람들에겐 기독교란 이런 것이라고 설득력 있게 이해시키고 싶다고, 그 지점에서 항상 글을 쓴다고 했었다.

말을 다루는 이들이 변해야 세상도 변한다

<기자와 목사, 두 바보 이야기>(손석춘.김기석/꽃자리)는 목사이며 문학평론가이며 <삶이 메시지다> <가시는 길을 따라나서다>, <새로 봄>, <일상 순례자> 등의 저자이기도 한 김기석 목사와 한겨레신문 논설위원과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등을 역임한 언론인 손석춘 기자가 편지로 주고받은 2년 동안의 대화를 책으로 묶어 낸 것이다. 진작 이 책을 읽었지만 이제야 겨우 쓴다. 책은 언론인이고 사회비평가인 손석춘이 묻고 김기석 목사가 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언론, 즉 말을 다루는 사람이 먼저 변해야 사회가 변한다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교회가, 기독교인이 변해야 한다는 것도.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오래전부터 예수가 누구인지 탐색해왔다는 손석춘 기자는 그가 궁금했던 것을 부당한 대접을 받은 사람들의 편에 서는 것이 정의라면 오늘의 현실은 그와 반대로, 한국 언론은 중산층을 주된 소비자로 상정하고 있는 한편, 언론인 자신들도 중산층에 편입되어 주로 중산층의 의견을 대변하고 그들의 이익을 옹호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 결과로 자연스럽게 소수계층의 의견과 이익은 구조적으로 배제되고 교회 역시 담당하는 사회적 기능도 비슷하지만 오늘날의 교회는 언론과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문제 삼는다. 말과 행동의 괴리, 언론과 교회가 약자를 대변하고 있는지에 대해 그는 묻는다.

무릇 언론과 종교는 사회의 빛과 소금이어야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언론도 교회도 빛도 소금도 아니고 오히려 스스로 어둠과 부패의 온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손석춘 기자는 또 주기도문의 '죄용서'문제를 '빚의 탕감'이라는 원래의 뜻인 것을 지적하며 집요하고도 끈질기게 이 물음을 파고든다. 그것 때문에 책이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진다. 다양하고 풍성한 이야기로 만들어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한편으론 끈질기고 집요한 물음으로 말미암아 성경을 대충 읽고 깊이 숙고하지 않는 우리들의 습성을 반성하게 만들기도 했다.

조용하고 따뜻하면서 성실한 답변으로 일관하는 김기석 목사의 메시지는 조용한 파문으로 가슴 깊이 내려앉는다. 그는 오늘의 교회가 잃어버린 것은 심리학이나 문학이 아니라 '거룩한 분노'라고 말한다. '제 집을 잃는 말들이 세상을 떠돌고 있다고, 글을 쓰는 이들의 책임은 떠도는 말들의 제 집을 찾아주는 일'이라는 그의 말에 공감한다.

김기석 목사의 말대로 '거룩한 분노'는 긍휼의 마음에서 솟아나오는 파토스라면, 이 시대의 교회는 이웃들의 아픔에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다는 것 아닌가. 분노해야 할 일에 분노를 표추하지 않고, 아픔의 자리에 가지도 않고 느끼지도 못하는 그야말로 물속에서 천천히 뜨거워져서 죽어가는 줄도 모르는 개구리와 같은.

손석춘 기자와 김기석 목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다르다 할지라도 이 책을 읽으면서 가슴깊이 와 박힌 메시지는 '말'과 '글'에 대한 내용이었다.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 아이히만>은 나찌가 유대인을 박멸하기 위해 언어규칙을 바꿨다는 사실을 적시하고 있습니다. 학살을 처방하는 암호는 '최종 해결책' 혹은 '특별 취급'이었고 이송과 관련해서는 '재정착'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그 일을 수행하기를 꺼리던 이들도 언어규칙을 바꾸어주자 별다른 저항 없이 자기의 직무를 수행했습니다. '최종해결책'이라는 말은 무고한 사람을 죽인다는 가책으로부터 그들을 지켜주는 방패였습니다. 살리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말이 때로는 죽이는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p120)

무고한 사람을 죽인다는 가책으로부터 그들을 지켜주는 방패였던 '최종해결책'이란 말. 말이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이어서 김기석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은 종교적 언어의 오용입니다. 가장 거룩한 것은 자칫 폭력과 결합되기 쉽습니다. 내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확신할 때 나의 외부에 있는 이들은 오류에 빠진 이들이 되고, 동화되기를 거부하는 순간 그들은 제거해야 할 적이 됩니다. 십자가 전쟁과 마녀 사냥, 그리고 유럽사회를 어지럽혔던 종교 전쟁은 그렇게 벌어진 것입니다."

말을 다루는 이들이 먼저 변해야 세상도 변하는 것이라는 말에 내 역시 부끄럽다. 말과 글이 어지러이 난무하는 현대사회에서 김기석 목사의 말처럼 말과 글이 제 집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유리하고 있다. 말의 제 집을 찾아주는 것이 급선무. 목회자요 문학평론가요 저술가로서 글과 말을 많이 다루는 일을 하고 있는 그의 고민이 와 닿는다. 그는 설교자의 가장 큰 번민은 입을 다물고 싶을 때조차도 무엇인가를 말해야 한다는 사실이란다. 자기 삶을 통해 뒷받침되지 못하는 말의 부박함이 떠오를 때마다 어디론가 달아나고 싶다고 말한다.

"낮은 곳을 향해 흘러 마침내 바다에 이르는 강물처럼"

나는 교회를 배경으로 성장했고 살아왔다. 교회는 내 삶의 밑 배경이다. 교회를 떠나 있는 추억과 삶이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익숙하다. 지난 세월 돌아보면 언제나 그 바탕, 혹은 배경에는 교회가 있다. 교회 안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교회에 대한 비난과 비판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마음이 불편하고 한편으로는 낯이 뜨겁다.

한편으론 교회 안에 들어온 적 없는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교회 바깥에서만 바라보는 시선으로 판단하니까 그렇지 생각되어 억울한 생각도 가끔 든다. 교회가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선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그들은 알지 못한다는 점에서.

무뎌지고 어두워진 우리들 마음과 영혼의 심지를 다시 돋우어야 할 때다. 그동안 외면해왔던 눈과 마음, 발걸음을 돌려서 낮은 곳으로 흘러야겠건만 부끄럽다. 오늘날 교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드높지만 자성의 소리 들려오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깨어 있는 분들이 있기에 교회는 '오래된 미래'가 될 수 있다는 소망을 나도 가져본다. 또한 그루터기와 같은 자들이 이 땅 곳곳에 하나님이 심어 놓으셨다는 것에 산 소망이 있다. 우린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마음이 있는 곳에 내 마음도 함께 흘러가도록 깨어있어야겠다.

북 토크에서 저자 사인회 때 내게 써준 글은 "낮은 곳을 향해 흘러 마침내 바다에 이르는 강물처럼"이라고 적어주셔서 그 말이 내 맘에 담겼다. 그렇게 살기 위해 두 손을 모으며 작은 걸음을 내디뎌야겠다. 이 책을 읽는 분들 역시 말이 변하고 그 말이 삶으로 번역되도록 책을 '숫돌'로 삼아서 무디어진 영혼을 새롭게 벼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책: <기자와 목사, 두 바보 이야기>
저자: 손석춘, 김기석
출판: 꽃자리
값: 15,000원



기자와 목사, 두 바보 이야기 - 손석춘.김기석의 대화

김기석.손석춘 지음, 꽃자리(2012)


태그:#김기석 손석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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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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