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리 데이빗 소로우. 그를 생각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말이 있죠.
"생각은 고상하게, 삶은 단순하고 평범하게."학창시절 영문학과 스승으로부터 배운 경구입니다. 안정된 직장을 스스로 박차고, 무언가 소박하고 단순한 삶에 매진했던 그였죠. 월든이란 강가의 숲에다 작은 텃밭도 일구고 오두막도 손수 짓고 살았지요. 자발적인 가난, 비폭력의 무저항, 모두 그로부터 휘날렸던 깃발들이죠.
최병성. 그에게 소로우라는 별칭을 붙이면 무리일까요? 인천시 부평동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그. 전형적인 도시인이었죠. 그러나 아버지의 이름으로 된 땅이나 집 한 채도 없던 그는 산등성이를 집 마당으로 삼고 살았다고 하죠. 그야말로 시골 사람으로 살았던 것이죠.
그때부터 '부'란 '소유'가 아니라 '누림'이란 사실을 터득했다고 해요.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뒤로는 강원도 영월의 서강가에 둥지를 틀며 10여 년을 살았다고 하고요. 4대강도 줄곧 '死대강'이라고 외쳐댔지요. 생각할수록 월든의 소로우와 전혀 다르지 않는 그였던 것 같아요.
'채움'보다는 '비워냄'으로써 얻는 만족한 삶의 비결"월든 호숫가에 살던 소로는 나의 재산은 '소유'가 아니라 '향유'라고 했습니다. 그는 '화창한 날이라든가 여름날을 아낌없이 썼을 때 정말 부자였으며, 고독과 가난 자체만으로도 풍성한 삶을 살았다'며 '삶이 너무도 소중하기 때문에 삶이 아닌 것을 살지 않으려고 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 116쪽최병성 목사가 쓴 <소박한 기쁨>에 나오는 글귀에요. 신약성경의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팔복을 깊이 묵상하면서, 그 속에서 얻은 일상의 깨달음을 읊조리는 수필집이라 해야 할 것 같네요. 물론 숲과 나무와 강을 비롯한 자연동식물이 그의 벗이었으니, 그들과 함께 한 삶의 자취도 물씬 풍겨나고 있어요. '채움'보다는 '비워냄'으로써 얻는 만족한 삶의 비결을 우리들 각자가 깨닫도록 인도해주고 있지요.
"잘 영근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는 튼실한 나무가 되려면 반드시 '가지치기'를 해야 합니다. 가치를 치지 않으면 쭉정이만 주렁주렁한 쓸모없는 나무가 됩니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란 말이 있듯이, 우리는 많을수록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것들로 아무리 채워 본들 내 영혼의 허허로움은 깊어갈 뿐입니다." - 39쪽그렇죠. 나무도 가지치기를 통해 더 튼실한 열매를 맺듯이, 우리들의 행복도 비움에서 비롯된다는 뜻이겠지요. 물론 그건 쉽지 않지요. 더욱이 어려서부터 채움에 길들여왔다면 비움은 더더욱 어렵겠지요.
일전에 본 영화 <돈의 맛>도 그랬어요. 물질을 쌓고 또 쌓아도 그 집안의 허기는 채워지지 않았고 정욕의 탐심으로 전이(轉移)되고 말았지요. 어렸을 때부터 부의 대물림을 차단하고 사회에 환원하는 삶을 보여줬다면, 그 영화의 결론은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었겠죠.
"오늘 교회 안에는 소비에 길들여진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그들이 교회에 나오는 것은 영원을 갈망하고 하나님의 법을 따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능력의 하나님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고 축복받아 더 잘 살기 바라는 소망에서 자신들의 탐욕을 채워 줄 하나님을 찾아 교회에 온 것뿐입니다. 탐욕에 잠든 영혼을 깨워 더 높은 곳으로 변화시켜야 할 교회 역시 책임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 88쪽실로 비움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을 보기가 힘든 시대라고 하지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소박한 삶보다는 다들 '축복'과 '성공'과 '번영'에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죠. 하나님의 나라보다는 이 땅의 나라에 더 집착하는 까닭이겠죠. 그것이 비교를 만들어내고, 열등감을 자아내고, 우울과 절망의 벽에 가로막히는 꼴이겠지요. 그런데도 그로부터 자유롭게 살려는 생각을 못한다는 게 더 큰 문제가 아닐까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구속하는 소비사회에서 자유로워지기를"우리는 희망 가운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과 함께 세상이라는 골고다 언덕을 오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대해 죽고 영원을 향해 다시 부활했습니다. 십자가는 절망을 이기는 희망의 상징입니다. 십자가는 지금의 고난이 전부가 아니라 고난과 절망 너머에 새로운 부활의 희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말합니다. 십자가는 헛된 희망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해 줍니다." - 150쪽희망의 눈을 어디에 두고 살아야 할지를 일깨워주고 있네요. 진정한 희망은 세상 사람들이 욕망하는 부나 명예나 권력에 있다는 게 아니지요. 진정한 희망은 소유와 소비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나눔과 협동에 있다는 것이죠. 예수의 십자가도 그런 의미로 해석해내고 있지요. 예수가 보여준 '자발적 가난'도 실은 하나님과 이웃과 자연과 더불어 살 수 있는 나눔과 협동의 삶이었다고 이야기하죠.
어렸을 적 가난이 오늘의 그를 만든 축복이라고 고백하는 최병성 목사. 그는 이 땅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구속하는 소비사회에서 자유로워지기를 바라고 있죠. 탐욕의 옷을 벗고 가난과 소박함이라는 거룩한 옷을 입기를 권하는 것이죠.
그것은 자족하는 삶이야말로 참된 행복의 비결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이기도 하죠. 소유로 인한 인간의 병든 마음이 치유받기를 바라는 뜻으로 이 책을 펴냈다고 하니, 그의 가슴 속 고백에 모두 귀를 기울였으면 해요.
덧붙이는 글 | <소박한 기쁨> 최병성 씀, 나이테미디어 펴냄, 2012년 4월, 135쪽, 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