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들어와 23년 만에 가까스로 획득한 박사학위입니다. 강사노조 운동을 하기 위해 성균관대에서 강사생활을 시작했다고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류승완(44) 박사는 목소리를 높였다. 류 박사는 2011년 8월부터 성균관대 본부의 강의배정 철회에 항의하며 295일째 1인시위를 진행 중이다.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강사였던 류 박사는 2011년 2학기 개강을 앞두고 일방적으로 유학대학(동양철학과가 소속된 단과대학)으로부터 자신에게 배정된 2학기 '동양사상입문' 강의 취소를 통보받았다. 류 박사의 해명요구에 대학 본부 측은 "동양철학과가 애초부터 류 박사의 강의를 배정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류 박사는 유학대학으로부터 강의계획서 입력을 요구하는 메일도 받았던 터라 강하게 반발했다.
강의를 박탈당한 사람은 있는데, 강의를 박탈한 사람은 없다?
학생들도 류승완 박사의 강의배정 철회에 항의하고 나섰다. 유학대 학생회는 성명서에서 "해당학과가 강의배정을 했음에도 유학대학을 통해 학교 본관이 직접 관여하여 강의를 박탈했다"는 동양철학과의 당초 주장을 소개했다. 또한 학생회는 "해당학과, 유학대학, 그리고 학교 본부가 류승완 박사 강의배정 철회에 대한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류 박사는 지난해 11월 강의배정 취소와 관련하여 학과장으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류 박사에 따르면 해당 학과장은 류 박사에게 "학교 당국이 류 박사의 강사노조 활동 가능성을 우려했으며 이런 우려가 강의배정 철회의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전했다.
확인 결과 해당 학과장은 "그런 말을 한 사실이 없다"고 부정했지만, 류 박사는 지도교수까지 배석한 자리에서 전해들은 이야기라며 강의배정 철회의 배경에 대한 강한 의혹을 드러냈다. 당시 배석한 지도교수 역시 5월 31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삼성재단 측이 (류 박사의) 학술활동 이외에 포괄적인 정치활동과 사회활동의 우려를 전한 것은 사실이다"라고 밝혔다.
류승완 박사는 학교 측의 이러한 조치에 대해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물론 학교 당국으로부터 일방적인 강의배정 취소를 당하고 난 후 대학 내 비정규 강사들의 처우개선 활동이 매우 중요하다 점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노조활동보다 더 중요한 과제가 있었다.
"남북으로 분단된 철학 사상의 고리를 찾아 연결하는 것이 저의 학문연구의 목표입니다. 제게는 여전히 중요한 과제죠!"박사학위를 딴 이후에도 학문연구 외의 다른 것에 눈길을 주지 않았던 그였다. 지난해 박헌영과 김태준 등 해방 전후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의 사상적 궤적을 연구한 류 교수의 논문집 <이념형 사회주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학술 우수도서에 선정됐다. 뿐만 아니라 류 박사는 학술진흥재단의 '박사후 연수 과정'에 선발되어 중국 베이징대에서 연구 활동을 지원받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류승완 교수는 강의는커녕 연구 활동을 위한 학술진흥재단의 논문에 접속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다. 성균관대 도서관에서 로그인을 거쳐야 학술진흥재단에 접근할 수 있는데, 학교 당국의 근무기록 삭제조치로 대학 도서관 접속이 차단되었기 때문이다. 류 박사는 "접속을 시도할 때마다 컴퓨터 화면에는 '접속기간 만료'라는 알림이 뜬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재단 비판하는 거리강연에 교직원들 나와 '멱살잡이'
류승완 박사를 만나기 위해 성균관대를 찾은 5월 30일 오후. 1시 30분부터 류 박사의 강의배정 취소에 항의하는 4차 거리강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기세였다. 때마침 거리강연 장소인 성균관대
본관(600주년 기념관) 앞 광장은 물청소 중이었다.
"거기 뭐해? 빨리 치워. 학생이면 학생답게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강의 시작 전 대학 본부 교직원들은 "허가받지 않은 불법 강의로 공무집행이 방해받는다"며 "이대로 좌시할 수 없다"고 거리강연을 저지하고 나섰다.
"이것도 공부입니다. 학생들의 자치 활동을 막지 마세요."학교 직원의 지시로 10여 명의 경비 노동자들이 류승완 박사의 강의배정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긴 학생들의 현수막을 빼앗으려 하면서 학생들과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학생들과 학교 관계자 수십 명이 뒤엉켜 성균관대 본관 앞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성균관대 학생 여러분. 부당한 강의배정 철회에 항의하며 저희들은 4번째 거리수업을 진행하려 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숨져간 꽃다운 20대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 학교 상근 이사님이 삼성전자 부사장이어서 그런지 오늘 학교 측의 방해가 심합니다. 21세기 대한민국 성균관대에서 학문의 자유, 양심의 자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이렇듯 버젓이 억압되고 있습니다."류승완 박사는 핸드마이크를 들고 학교 당국을 규탄했다. 1시간의 실랑이 끝에 가까스로 강연이 진행될 수 있었다.
4회를 맞이한 이날 거리강연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 활동가 이종란 노무사가 맡았다. 이씨는 "삼성반도체 사망노동자들과 관련하여 많은 강연을 다녀봤지만 이렇게 심하게 강연을 저지하는 경우는 처음 본다"며 학교 당국의 대응을 비판했다.
거리강연에 참가한 임준영(경제학과 4)씨는 "몇 년 전에도 반올림의 강연계획이 삼성재단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학교 당국에 의해 강연 당일 취소된 경험이 있다"며 "재단에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을 가로막으려는 대학의 태도는 부당하다"고 소감을 말했다.
윤인아(사회학 4)씨 역시 "삼성이라는 민감한 주제에 대한 비판을 가로막는 대학의 태도가 재단과 대학을 비판한 류 박사의 강의 배정을 철회한 것과 맞닿아 있다"며 "거리 강연은 계속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의평가 점수 낮아서" VS "비판적 연구 밉보인 것"현장에서 만난 성균관대 기획조정처 홍보 관계자는 "공식적으로는 (류승완 박사에 대한) 학생들의 강의평가가 안 좋게 나왔기 때문에 강의배정이 철회된 것이다"라며 "(류 박사 측에서) 우수논문 선정의 문제를 들어 학교의 결정을 비판하고 있지만 이는 굉장히 고루한 논쟁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류 박사는 이에 대해 "연구실적과 학생들의 강의평가 점수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동양철학과에서 자신의 강의를 배정했던 것"이라며 "강의평가는 구실에 불과하다"고 재반박했다.
오히려 류 박사는 "서정돈 이사장이 총장으로 재직 당시인 2010년 '유교와 한국사회'라는 학술대회에서 서 이사장이 기조연설을 했다. 그런데 그 학술대회가 친일행각을 저지른 황도유학(皇道儒學)파와 관련성이 짙다고 비판한 자신의 논문이 학교 당국과 재단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역사학자 이인화에 따르면, '황도유학파'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성균관을 개편한 경학원 등을 통해 유학자들을 황국신민 교화와 조선통치에 활용하는 과정에서 이에 협조한 유학연구 경향으로, 경학원 대제학 박제순, 사성 안인식 등 성균관 관련 인사들 일부가 연관되어 있다.
"강의배정 될 때까지 거리강연 계속될 것"한바탕 전쟁 같은 거리강연을 마친 후 류승완 박사는 본관 앞 화단에 털썩 주저앉았다. "300일 가까이 계속된 1인시위로 몸이 많이 상했다"는 류 박사는 "강의가 올바로 배정될 때까지 거리강연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연 때마다 반복되는 학교 당국과의 마찰로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류 박사는 "대학에서 강사의 강의 내용과 연구를 좌지우지 하려는 시도가 계속되는 이상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강의참여 학생이 수십 명에 그치는 등 학생들의 관심 부족에 대한 지적에는 "소수지만 저와 학생들 모두 거리강연을 통해 살아 있는 학문을 배우는 교학상장의 계기가 되고 있다"며 "지나가는 학생들도 보고 느끼는 바가 많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본관을 지나던 한문학과 여학생이 "멀리서 교수님 투쟁을 지켜보고 있다"며 "힘내시라"고 초콜릿을 건넸다. 금세 표정이 밝아진 류 박사는 "고맙다"고 수줍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