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은 지난해 12월 초 이념과 노선, 조직문화를 달리하는 세개의 정치집단이 합류하여 만든 정당이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탈당파, 국민참여당이 모였다. 민주노동당 출신은 다시 당권파 주류로 일컬어지는 경기동부연합과 광주전남연합, 비주류로 분류되는 인천연합과 울산연합 등으로 나뉜다. 민주노동당 출신들은 대부분 NL계(민족해방파)로 흔히 '종북주의로 불리는 '친북 성향'과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하지만, 그중에서도 경기동부연합과 광주전남연합 출신은 다른 지역연합에 비해 최다 당원이라는 이점 때문인지 패권주의적인 성향이 유달리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분당 이전의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다른 정파 특히 PD계(평등파)와 격심한 갈등을 빚어왔고, 이러한 성향으로 말미암아 결국 (구)민주노동당이 둘로 나뉘었다. 진보신당 탈당파 및 국민참여당과 통합한 이후에도 이들 경기동부연합과 광주전남연합 출신들은 사무총장 등의 당권과 적지 않은 지역위원회를 장악하고 당 운영과 공직후보 선출과정에서 패권주의적 행태를 보이며 이전과 비슷한 성격의 갈등을 빚어왔다.
갈등의 뿌리에는 무엇이 있나이런 점들을 보면, 통합진보당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강한 결속력을 가진 당원의 수에 힘입어 당권을 장악해왔던 당권파는 통합 이후에도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고, 이 과정에서 부정선거라는 '대형사고'가 발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이 점은 특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한때 (구)민주노동당 시절 이들과 함께했던 진보신당 탈당파 인사들은 몸으로 잘 알고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국민참여당 출신 인사들도 이런저런 통로를 통해 이미 알고는 있었을 것이다.
부정선거를 계기로 폭발한 정파집단 간 갈등으로 이제는 온 나라가 종북주의 논란에 휩싸이는 지경에 이르게 된 데는 당권파의 패권주의적, 집단주의적, 편법주의적 행태 때문은 아니다. 당권파의 노선과 조직문화가 유별나다는 것을 이미 알면서도 이들과 함께하기로 한 비당권파의 대응방식도 갈등을 확산하는 데 일조했음은 틀림없다. 손뼉도 두 손이 마주 쳐야 하듯, 개인이나 집단 간의 갈등도 둘 이상의 당사자가 맞서야 발생한다. 갈등이 심화되는 것은 두 당사자가 문제해결 의지나 능력이 없을 때에 생긴다.
갈등은 일방에 의한 타방의 제압, 쌍방간의 절충(미봉), 쌍방의 협의에 의한 생산적 해결, 무시 등 네가지 방식 중 하나로 종결된다. 통합진보당의 현재 갈등은 양자가 모두 첫 번째 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에 격화되고 장기화되는 것이다. 현재 혁신비상대책위를 장악하고 있는 비당권파는 당권파의 부정선거를 계기로 이들을 무력화하고자 하고, 당권파는 이번에 밀리면 끝장이라는 식으로 온갖 이유를 대면서 버티고 있다.
다시 떠오른 '종북주의' 논란부정선거 문제 해결방식을 둘러싼 두 집단 간의 격렬한 갈등은 종북주의 문제로 비화됨에 따라 어느 쪽도 예상하지 못한 (어쩌면 예상하면서도 애써 외면하려 했을)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종북주의는 신념으로 마음속에만 담아두고 실증법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표출되지 않는 한, 정치적으로는 문제가 될 수 있어도 법적으로는 처벌 대상이 아니다. 적어도 제대로 된 민주주의사회라면 그렇다. 그럼에도 정치적으로 문제 삼아 혁신비대위가 이를 청산하려고 할 경우 비슷한 성향을 가진 인천연합이나 울산연합과 같은 비주류 당권파 인사들이 혁신의 대열에서 이탈하거나 아예 적대적으로 나갈 수 있다.
여론의 힘으로 '종북주의 청산'을 밀어붙인다 하더라도 혁신 비대위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당권파가 종북주의적 성향을 가졌다는 것을 모르고서 이들과 조직통합을 한 것도 아니고, 그럼에도 이들을 축출한다면 통합 당시의 약속과 민주주의의 원칙을 스스로 어기는 꼴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이들을 종북주의자로 낙인 찍어놓고 청산에 실패할 경우 중도성향의 민주통합당은 통합진보당과의 야권연대를 파기할지 모르고, 야권연대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는 새누리당이 재집권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의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빠른 시일 내 부정선거에 대한 공정하고 철저한 조사와 이에 근거한 책임자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5월 2일 발표된 진상조사결과가 '편파적'이라는 이유로 당권파가 중앙위원회와 비대위의 결정을 수용하기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독선 버리고 소수파 활동 보장해야 중장기적으로는 서로 다른 이념, 노선, 조직문화를 가진 파벌들이 공존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보면, 진보정치의 발전에 가장 큰 걸림돌은 대안 부재나 인물 부족이 아니라 거의 종교적 신념 수준인 '나만이 옳다'는 식의 오만하고 독선적인 태도였다.
다수파의 패권주의적 태도, 소수파의 비타협적 투쟁, 이로 인한 조직의 분열, 모두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에 권력욕까지 보태지면 격한 갈등과 분열은 필연적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도 틀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상대방의 주장과 요구를 경청하고 수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를 확실히 하기 위해 소수파의 의견과 이익이 반드시 반영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면, 소수파의 존립과 지위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는 소수파에게 비토권을 부여하는 것 등이다.
마지막으로, 어차피 정파갈등을 피할 수 없다면, 정파의 존재와 활동을 공식적으로 등록하게 한 뒤 자유롭고 공개적인 활동을 보장해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번 사태도 비공식적으로 존재하는 정파의 비공개적인 활동방식에 기인한 측면도 있다는 점에서 이 제도의 도입은 반드시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정영태씨는 인하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