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탄(Mactan)은 필리핀에 있는 섬 이름이다. 세부(Cebu Island) 섬에 붙어서 하나의 생활 문화권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이 섬 전체는 행정 구역상으로는 라푸라푸시(Lapu-Lapu City)에 속해 있다. 해변이 발달돼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어 우리나라에서 청춘 남녀의 신혼여행 장소로도 잘 알려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보통 인접해 있는 큰 섬 세부에 붙어 있기 때문에 세부로 알고 있지만, 정확하게 말한다면 막탄 섬 또는 라푸라푸 시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지난 5월 27일부터 4박5일의 짧은 일정으로 간 여행이기 때문에 중부 필리핀에 대해 알고 싶은 나에게 촌음이 아까웠다. 3일째 되는 날 우리 일행은 세부 관광에서 빼놓으면 서운할 보홀(Bohol) 투어가 잡혀 있었다. 고민이 되었다. 제일 마음에 걸리는 것은 적지 않은 경비와 체력이었다. 12시간이 넘게 걸리는 장거리 여행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보홀 투어에 빠지기로 했다. 몇 몇 사람들이 각자 사정들이 있어 보홀 투어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런데 고민인 것은 온 종일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를 인솔하는 한국 가이드들에게도 동일한 고민거리가 되는 것 같았다.
원래 '여행(旅行)'이란 '나그네가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것'을 일컫는 것이다. 나그네는 집단성보다는 개별성이 강조되는 단어이다. 또 영어의 'Tour'도 그냥 주유(周遊)하는 것을 말한다. 내가 막탄 섬을 돌아보기로 한 것은 그곳 사람들의 숨결을 직접 맡고 싶은 이유에 더해 여행(Tour)이라는 의미에 충실하고자 하는 마음이 발동해서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알아봤다. 일행이었던 송경환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문사무엘 목사님 부부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즉석에서 함께 하기로 했다. 나가서 현지인들을 만났다. 그들은 나에게 여러 가지 면에서 편의를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져니(Junrey)라는 젊은 친구는 싹싹할 뿐만 아니라 한 가지를 말하면 부수되는 몇 가지까지 알아서 척척 해결해 줄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스킨스쿠버, 낚시, 스노클링, 맛사지 등 업소를 연결해 주고 수수료를 받는 일종의 관광 알선책이 그의 직업이었다. 져니는 엉성하지만 자체 명함까지 가지고 있었다. 또 그가 '용필'이라는 한국 이름까지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주로 한국 관광객을 상대로 영업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막탄 섬 일주를 위해 가고 싶은 몇 곳을 우선 선정했다. 지도를 보고 방문지로 삼은 곳은 막탄 사원, 마리나몰 또는 가이사노 몰, 라푸라푸 시장(Lapu-Lapu Public Market), 알레그리 기타 공장(Alegre Guiters Factory) 등이었다.
져니는 네 명의 현지인을 대동하고 나를 도우기 위해서 왔다. 먼저 우리 6명이 한 대의 트라이시클(Tricycle)로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 두 대를 빌리기로 했다. 이들은 트라이시클 한 대에 최대 11명까지 탈 수 있다며 한 대만 빌리자고 했으나 운전수까지 13명의 대 군사이기 때문에 두 대를 빌리기로 한 것이다.
트라이시클 값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흥정을 해서 값을 정해야 한다. 한 사람당 4달러씩 한 대에 12달러로 흥정을 했지만 나는 5달러씩 계산해서 한 대에 15달러, 두 대 합 30 달러를 주겠다고 하니 그들은 '땡큐'를 연발하며 좋아했다. 그런데 한 가지 건의사항이 있다고 했다. 마리나 몰과 가이사노 몰은 너무 멀리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려 빼면 좋겠다고 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라푸라푸 시장에 가면 그곳보다 더 많은 것을 구경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 우리가 갈 곳은 세 곳이 되는 셈이다.
필리핀의 태양은 뜨거웠다. 호텔에서 나올 때 선 크림을 발랐는데도 노출된 피부는 금세 홍조를 띠기 시작했다. 자외선의 강도가 우리나라보가 강하기 때문에 피부 보호에 각별한 조심을 당부했다. 우리가 먼저 간 곳은 막탄 사원이었다.
라푸라푸는 필리핀 최초의 영웅이라고 했다. 1521년 마젤란이 필리핀을 침공했을 때, 라푸라푸 추장이 육탄전 끝에 마젤란을 죽인 곳이 바로 이 막탄 사원이었다. 필리핀 국민은 누구나 제국주의의 첨병 마젤란을 물리친 라푸라푸를 영웅으로 존숭하고 있었다. 그곳엔 마젤란을 기념하는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었고, 또 그 맞은편에 한 손엔 칼 다른 한 손엔 방패를 든 늠름한 라푸라푸 추장의 동상이 서 있었다. 우린 그것을 배경으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기에 바빴다.
후미 정원에는 라푸라푸 추장의 흉상이 친근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그 흉상과 어깨동무를 하며 500여 년 전의 필리핀 영웅의 온기를 느껴보려고 했다.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이든 영웅은 있게 마련이지만 얼마나 자기 국민을 위해 일을 했는가 또는 핍박 받는 민중을 위해 정의를 불태웠는가는 크고 작은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라푸라푸는 그런 측면에서 필리핀의 진정한 영웅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우리나라 5천 년 역사에도 영웅이 적지 않지만 필리핀의 라푸라푸와 비견되는 영웅으로 누굴 꼽을 수 있을까.
다음 방문지도 역시 라푸라푸 이름이 들어가는 시장이다. 라푸라푸는 그만큼 필리핀 사람들에게 친근한 인물로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라푸라푸 시장. 5백 여 미터에 걸쳐 뻗어 있는 상가에 위쪽으로 도로를 따라 T자 형으로 형성되어 있는 상설 시장이었다. 과일 곡류 생선 육류에 공산품 등 없는 것이 별로 없을 것 같은 시장이었다. 은행과 전당포 등 돈의 유통과 관련되는 업체까지 있어 시장의 기능으로서는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그 규모는 영세하기 짝이 없어 더운 날씨에 손님을 기다리는 상인들이 보기에 안쓰러웠다. 일행 중 트라이시클 운전자는 시원한 것을 먹고 싶다기에 콜라를 사서 마셨고, 그 옆 망고 쥬스는 천연의 맛을 풍기고 있어 더 구미를 돋우었다.
기타는 나 어릴 적 동경의 악기였다. 서울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던 나는 기타를 갖고 싶어 부산에 사는 누나에게 졸라 돈을 빌렸던 적도 있다. 라푸라푸 시장에서 기타 공장으로 향했다. 원래 내가 가보고 싶은 곳은 알레그리 기타 공장이었는데, 현지 가이드는 규모가 아주 영세한 작은 기타 공장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아마 조금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필리핀은 가톨릭이 국교인 관계로 낙태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어 대체로 자녀들을 많이 두고 있었다. 몸이 불편한 나를 따라 다니며 도와 준 차비는 26살이 나이에 벌써 아들 하나와 두 딸을 두고 있었다. 앞으로도 더 낳아야 할 것 같은데, 가난해서 걱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일가친척들이 많았다.
우리가 방문한 기타 공장에는 한 아낙이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파리를 쫓고 있는 것으로 봐서 손님들이 많이 방문하는 곳은 아닌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중간 중간 거미줄이 쳐져 있었고, 전시해 둔 장난감 기타 위에는 먼지가 쌓여 있기까지 했다. 2백만 원 이상의 기타가 있는가 하면 1만 원 상당의 장난감 기타까지 다양한 기타가 있다는 얘기를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나는 장난감 기타를 하나 사려고 집어 들었다가 먼지에 포위된 기타가 5만원이라는 말을 듣고 제 자리에 놓고 말았다. 필리핀엔 정가라는 게 없다고 한다. 특히 손으로 만드는 제품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값이 정해진다는 것이다. 외국인들에겐 비싸고 자국민들에겐 싸게 판매되는 것이 관례가 되어 있다고 한다.
이것은 물건 값뿐만 아니라 대중교통 요금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필리핀엔 시내 시외버스와 기차가 없다고 했다. 정확하게 7107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 필리핀엔 해상 교통이 발달한 반면 육상 교통은 그렇게 발달하지 못한 것이 섬나라인 탓이 크다고 한다.
육상 교통수단으로는 지프니, 멀티캡, 트라이시클 등을 이용하는데, 이것들의 요금도 자국민과 외국인은 차이가 있다고 했다. 자국민은 저렴하고 외국인은 몇 값절에 이르는 고액을 지불하고 그것들을 타야 하는 것이다. 국적은 작위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필리핀은 이런 것으로 자국민에게 혜택을 주고 있는 것 같아 밉지 않았다.
필리핀 국민은 자의식이 대단히 강하다고 한다. 스페인 식민지 327년(1571-1898), 미국 식민지로 48년(1898-1946), 일본 식민지 3년(1942-1945) 총 375년을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면서도 국민들의 생각이 긍정적이며 낙천적인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매우 친절했다. 그들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웃음 지으며 인사했으며 '땡큐, 써(Sir)'가 입에 붙어 있을 정도로 감사한 마음을 잘 표현했다.
그들 국민의 85%가 가톨릭 신자여서 구교와 신교를 같은 차원에서 받아들였다. 그들은 '예배(worship)'라는 단어를 '미사(Mass)와 같이 생각할 정도였다. 우리 일행은 막탄 일주를 하면서 필리핀 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목격했고 그들의 민족성을 읽었으며 주님 안에서 따스한 마음을 간직히고 있는 그들에게 큰 동류의식을 느낄 수 있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막탄 일주를 끝내고 우리는 트라이시클 요금 15달러씩 두 대 값 30달러, 동행한 다섯 명의 현지인들에게 팁으로 5달러씩 7명 35 달러, 총 65달러를 건넸다. 감사하다며 내일 다시 만날 것을 외치는 그들에게서 기쁨이 넘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우리들의 기쁨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