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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 끝난 지 60여 년이 가까워오고 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많은 것이 사라지고 잊혀졌다. 그렇지만 전쟁이 할퀴고 간 상처는 여전하다. 좀처럼 아물지 않고 있다. 그 상처가 몹시 크고 깊은 탓이다. 전쟁은 끝났지만, 한 민족이 남과 북으로 갈라서서 서로를 원수로 대하는 현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 상처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깊어지는 양상이다.

불행히도 이제는 그 상처를 대를 이어 상속해야 하는 지경에까지 와 있다. 한 번 전쟁을 치른 대가로 온 민족이 60여 년을 크고 작은 고통 속에 살고 있다. 그런데도 앞으로 얼마나 더 그 고통을 견디며 살아야 할지 알 수 없다. '전쟁'은 사실상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6월을 맞아 우리가 기념일까지 정해 놓고 전쟁을 기억하는 건 한국전쟁과 같은 전쟁이 되풀이해서 일어나는 걸 경계하기 위해서다.

 '한국전쟁과 동부전선' 전시관 입구.
'한국전쟁과 동부전선' 전시관 입구. ⓒ 성낙선


고지전, 병사들의 붉은 피로 얼룩진 강원도 동부전선

강원도 춘천시에서 한국전쟁의 아픔을 되새기는 특별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전시회 명칭은 '한국전쟁과 동부전선'이다. 전시회 초점은 한국전쟁 당시 산악지대인 강원도 동부전선에서 벌어졌던 치열한 전투들과 그 전투 중에 희생된 병사들을 조명하는 데 맞춰져 있다. 동부전선에서 벌어진 전투들은 '고지전'으로 유명하다. 고지전은 인간이 창안한 가장 격렬한 전투 방식 중에 하나다. 그 전투 중에 병사들이 겪었을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이 전시회는 국립춘천박물관이 개관 10주년을 맞이해 기획했다. 전시회 규모는 작지만, 한국전쟁을 기억하고 그 전쟁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깨닫게 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국립춘천박물관이 이 전시회를 개최한 목적은 "62년 전 오늘, 이 땅을 지키고자 의연히 산화한 저 많은 호국영령들의 희생을 추모하며 한국전쟁의 의미를 되새겨보길" 바라는 데 있다.

전시회는 한국전쟁 당시 국군이 동부전선에서 어떤 전투를 통해 얼마나 큰 공적을 세웠는지를 설명하는 데 대부분의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 매우 중요한 사실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전쟁을 다 말했다고 할 수 없다. 우리가 이 전시회에서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것은 당시 그런 공적을 쌓는 것과는 별개로,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전쟁의 포화 속에 피를 흘리며 죽어간 병사들의 죽음이 갖는 의미다.

전시회는 제1부 '춘천·홍천 전투'와 제2부 '양구 전투' 로 나누어져 있다. 그리고 사이사이 '북한군의 무기' '중공군의 무기' '우리 군의 무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무기는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전투는 기억해둘 만하다. 한국전쟁 당시 동부전선에서는 수많은 전투들이 벌어졌다. '춘천·홍천 전투' '현리 전투' '도솔산 전투' '피의능선 전투' '펀치볼 전투' '단장의 능선 전투' '크리스마스고지 전투' '백마고지 전투' 등이 그것이다.

 북한군과 대치해 있는 미군. 한국전쟁에 사용한 무기들. 사진에 보이는 건물 벽면에 스탈린과 김일성 사진이 걸려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북한군과 대치해 있는 미군. 한국전쟁에 사용한 무기들. 사진에 보이는 건물 벽면에 스탈린과 김일성 사진이 걸려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 성낙선


치열한 공방전, 열흘 동안 11번 주인이 바뀐 백마고지

 제1부 '춘천·홍천 전투'를 설명하는 전시물 일부
제1부 '춘천·홍천 전투'를 설명하는 전시물 일부 ⓒ 성낙선
이 중 '춘천·홍천 전투'는 개전 초기 북한군에 파죽지세로 밀리던 우리 군이 유일하게 승리한 전투다.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 전투를 치른 대가로 이승만 정부가 무사히 부산으로 피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양구 지역에서는 휴전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단장의 능선, 피의 능선, 도솔산 등에서 서로 밀고 밀리는 전투가 반복됐다. 이곳에서 벌어진 전투는 그 이름만으로도 얼마나 치열한 전투를 치러야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피의 능선 전투'는 강원도 양구 북방에서 벌어진 전투로 많은 사상자를 내면서, 이름 그대로 능선을 병사들의 피로 붉게 물들게 한 전투다. '피의 능선 전투'는 영화 <태극기를 휘날리며>의 소재로도 쓰였다. 영화 후반부의 고지전이 바로 피의 능선에서 벌어진 전투를 영화화한 것이다. '단장의 능선 전투'는 양구 북방 문등리 일대 연봉에서 일어난 전투로, '피의 능선 전투'보다 더 많은 사상자를 냈다. 국군 등 국제연합군은 3700여 명, 북한군과 중공군은 2만5000여 명이 사망했다. 이 전투는 한 달 동안 계속됐다.

'백마고지 전투'는 철원 서북방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로, 열흘 동안 아군과 적군이 12차례에 걸쳐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서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한 결과, 고지 주인이 11번이나 바뀌었다. 이 전투에서 중공군은 1만여 명, 국군은 35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전투에는 무수한 포탄이 쏟아졌다. 국군은 21만9000여 발, 중공군은 5만 5000여 발, 열흘 동안 총 27만 4000여 발의 포탄을 쏟아 부었다. 개미 한 마리 살아남기 힘든 전투였다.

이처럼 수많은 희생자를 치르면서, 한국전쟁사에 절대 지울 수 없는 전투 기록을 남긴 지역이 바로 동부전선이다. 영화 <고지전>의 배경이 된 전투도 동부전선에서 벌어졌다.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병사들이 총알이 빗발치는 산등성이를 정신없이 뛰어올라가던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지옥을 방불케 하는 장면이었다.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 사진과 '병사가 보낸 편지'.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 사진과 '병사가 보낸 편지'. ⓒ 성낙선


학도병의 편지 "어머님!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이 전시회에는 그런 전투 장면 못지않게 인상적인 부분이 또 있다. 한국전쟁 당시 최전선에 서 있어야 했던 병사들의 심정이 그것이다. 병사들은 대부분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당시 그 병사들이 어떤 심정이었는지는 알기 어렵다. 그런데 '병사가 보낸 편지'에는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항상 죽음에 직면해 있을 수밖에 없는 병사들이 겪어야 하는 고뇌와 고통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이 편지는 한국전쟁 초기 전투에 참가한 한 학도병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보낸 것이다.

이 학도병은 전투 중에 수류탄을 던져 십여 명의 적을 살상한다. 그리고는 왜 이런 전쟁을 해야 하는지 회의에 빠진다. 학도병은 또 적들과 마찬가지로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또래 학우들을 옆에서 지켜본다. 그는 그런 현실이 너무 무섭고 두렵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순간도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이 편지를 쓴 학도병은 바로 다음 날 벌어진 전투에서 숨을 거둔다.

병사가 보낸 편지

어머님!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십여 명은 될 것입니다...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 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머님께 알려드려야
내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저 옆에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1950년 8월 10일
아들 이우근

전쟁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집단은 '민간인'

 애니메이션 <단장의 능선> 중 한 장면.
애니메이션 <단장의 능선> 중 한 장면. ⓒ 성낙선
이 전시회에서는 또 병사의 죽음을 다룬 한 편의 애니메이션이 상영된다. '단장의 능선'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애니메이션은 '단장의 능선 전투'를 소재로 하고 있다. 한 병사가 고지전에서 밤새 백병전을 벌이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쓰러진다. 그러다 포연이 자욱한 전쟁터,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남아 있지 않은 시커먼 산등성이에서 겨우 눈을 뜬다. 병사는 아군인지 적군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는다. 그냥 병사다.


그 병사 앞에 어머니의 환영이 나타난다. 그와 함께 밝은 햇살이 가득한 고향 마을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던 평화로운 기억이 떠오른다. 전쟁은 그 모든 걸 한순간에 앗아가 버린다. 그리고 전쟁은 마지막으로 죽기 전 최후의 순간까지 그 행복한 장면들을 기억하고 있던 병사의 목숨마저 앗아가 버린다. 전쟁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한다. 이 애니메이션은 '전쟁은 원래 그런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전쟁이 어떤 것인지는 '춘천·홍천 전투'나 '양구 전투' 같은 것을 아는 것보다도 한 어린 병사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나 <단장의 능선>과 같은 애니메이션을 읽고 보는 데서 더 명징하게 드러난다. 전쟁은 국민 대다수가 죽음과 직면해 있어야 하는 상황을 말한다. 대다수 국민에게 공포를 안겨준다. 병사로서 전투를 치러야 하는 국민이나, 민간인으로 전쟁을 피해 다녀야 하는 국민 모두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 전시회는 '에필로그'에 이렇게 적고 있다. "한국전쟁 결과 한국군 62만 명, 국제연합군 16만 명, 북한군 93만 명, 중공군 100만 명, 민간인 250만 명이 피해를 보는 등 당시 남북한 인구 3천만 명의 절반을 넘는 1800여 만 명이 전쟁 피해를 입었다." 전쟁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집단은 언제나 '국민'이다.

전쟁으로 그 많은 희생을 치르고도 그때 생긴 상처가 60여 년이 되도록 아물지 않고 있다. 에필로그는 마지막으로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27일에 쌍방간 정전협정을 맺음으로써 휴전 상태가 되었다. 전쟁은 남북의 분단을 더욱 고착화했고, 우리 민족에게는 평화로운 통일과 화합이 여전히 과제로 남았다"고 적고 있다. 아직도 풀어야 할 숙제가 너무 많다.

전시회는 7월 1일까지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월요일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 이 전시회의 전시물들은 2군단 사령부와 한국자유총연맹 강원도지부 등에서 제공했다. 6일은 현충일이다.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싸우다 목숨을 잃은 모든 영혼들의 명복을 빈다.


#동부전선#단장의 능선#피의 능선#백마고지#고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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