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의 한국정치는 '종북' 논란에 장악됐다. 정부와 새누리당, 보수 언론은 연일 '종북주의'와 '색깔론'을 들고 나와 야권 때리기에 주력하고 있다. 야권은 "매카시즘적 이념 논쟁"이라며 맞서고 있다. 친 이명박·친 박근혜로, 친 노무현·비 노무현으로 분열됐던 여와 야는 '종북' 논란을 계기로 각각 단일대오를 형성하고 있다.
여권의 종북주의 논란의 선봉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있다. 이 대통령은 6일 현충일 추념식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려는 어떤 자들도 국민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석기·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과 탈북자 막말 파문에 휩싸인 임수경 민주통합당 의원, 북한인권법에 대해 내정 간섭이라 말한 이해찬 민주당 의원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지난 달 28일 라디오 연설에서도 "북한의 주장도 문제이지만 이들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하는 우리 내부의 종북 세력은 더 큰 문제"라고 비판한 바 있다. '종북세력' 비판의 연장선상에서 '자유민주주의 부정 세력'에 대한 비판을 제기한 것이다.
'종북 논란' 에 뭉친 민주통합당 "색깔론 공세 중단" 촉구이 같은 여권의 공세에, 전당대회를 앞두고 사분오열됐던 민주통합당이 한 데 뭉쳤다. 민주당은 한 목소리로 "정부 여당은 색깔론 공세를 중단하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박지원 민주통합당 비대위원장은 6일 오전 정당대표 라디오 연설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종북세력을 운운하고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은 국가관을 거론하며 색깔론과 이념대결로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라며 "시대착오적인 색깔론과 사상검증을 즉각 멈추라"고 경고했다.
그는 "민주당의 햇볕정책은 튼튼한 안보로부터 출발하는데도 이를 빼고 '종북' 운운하며 색깔론을 제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라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증오와 분열의 색깔론이 아니라 희망과 단결의 리더십"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의 유력한 당 대표 후보인 김한길 의원도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새누리당의 신공안정국 조성은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를 위해 의도된 것"이라며 역공세를 폈다. 김 의원은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을 향해 "신공안정국을 끝낼 책임이 누구에게 있냐, 이것이 19대 대통령을 꿈꾸는 이가 생각하는 시대정신"이냐고 꼬집었다.
북한인권법을 두고 '내정간섭'이라 말한 이해찬 의원을 향해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의원자격심사' 카드까지 꺼낸 데 대해 김 의원은 "새누리당이 북한인권법을 계기로 이해찬 의원에게 퍼붓는 색깔 공세는 현 정부의 무수한 실정을 감추는 한편 신공안정국을 조성하려는 불순한 시도"라며 "민주당은 새누리당의 낡은 정치공세에 일치단결해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해찬 "박근혜 의원은 5.16 쿠데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역공세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우상호 의원도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여권의 '색깔론' 공격에 대한 범야권의 공동투쟁을 제안했다. 그는 "대통령 선거 국면에 색깔론을 활용하려는 범보수진영의 음모"라며 "정당, 사회단체, 범야권 진영의 공동 투쟁기구를 구성하자"고 말했다.
우 의원은 "색깔론 확산을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주도하고 있다"라며 "박 전 위원장이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해 국가관 얘기를 꺼내며 민주당에 책임이 있다고 한 것은 대선 쟁점으로 끌고가겠다는 것이다, 이를 자르고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논란의 당사자인 이해찬 의원 역시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새누리당 대표라는 사람이 총리까지 지낸 나를 자격 심사한다는 것이 어처구니가 없다, 망언이다"라며 "새누리당이 자행하는 사상검증, 자격심사의 이념공세는 악질적 매카시즘"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박근혜 의원도 정조준했다. 그는 "박근혜 의원은 북한을 국가로서 실체를 인정하는가 아니면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나, 반국가단체라면 북한과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박근혜 의원의 '대북관'을 따져 물었다.
이어 그는 박근혜 의원과 황우여 대표 모두를 향해 "헌정질서를 중시한다며 자격심사까지 거론했는데, 헌정질서를 유린한 5·16 박정희 군사 쿠데타와 전두환의 12·12 군사쿠데타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느냐"며 "답변이 없으면, 박근혜 의원은 박정희, 전두환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대통령 후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몰아세웠다. 역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 의원의 '국가관'을 정면 공격한 것이다.
이 의원은 "나를 두고 헌법훼손을 얘기하며 자격심사를 거론하는 것은, 박정희·전두환 군부정권의 후예들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군사정권에서 찾고 민주 정부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반헌법적 발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라며 "매카시적 광풍으로 대선을 치르겠다면 이는 용서할 수 없는 범죄행위"라고 맹비판했다.
'이해찬-박지원' 담합이 불거진 이후 양극단으로 갈려 갈등을 빚었던 이해찬·김한길 의원이 오랜만에 한 목소리를 낸 것이다. 두 의원은 북한인권법을 두고서는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김 의원은 "인권이란 이름으로 평화가 위협 받아서는 안 된다, 인권을 정략적으로 이용해서 훼손하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보였다. 반면 이 의원은 "북한인권법은 남북관계의 악화만 가져오는 실효성 없는 법안"이라며 "보수 우익단체의 반북활동을 지원하는 것"이라며 명백한 반대 입장에 섰다.
한편, 이같은 민주당의 총공세에도 새누리당은 기존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김영우 대변인은 "북한 인권을 중시하는 새누리당에 대해 공안정국, 색깔론 운운하는 분들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정치인들입니까"라며 이해찬, 김한길 의원을 싸잡아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