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아직도 북녘 땅에 묻힌 수많은 호국용사의 넋은 고향 땅을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라며 "남북이 통일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이분들의 유해를 찾는 일"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6일 오전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현충일 중앙추념식에서 "이 분들을 편안히 모시기 위해 정부는 앞으로도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전사자들의 유해를 찾는 일은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당연한 의무이자 책임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6.25 전사자 유해 봉환행사에도 직접 참석해 호국용사들을 국가적 차원에서 예우하는 모습을 보였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북한 지역에서 발굴된 국군 전사자 유해가 봉환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북한지역 국군 전사자 유해 봉환은 60년만에 처음이때 봉환된 12구는 북미간의 공동 유해발굴사업에 의해 발굴되어 '미군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 합동사령부'(Joint POW/MIA Accounting Command, JPAC)에서 보관 중이던 유해 가운데 일부가 한국군 전사자로 판명돼 유족과의 DNA 비교조사를 거쳐 신원이 확인됨에 따라 60년만에 조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 12 용사는 미국이 미군 유해인줄 알고 가져갔는데 한국군으로 판명돼 '운 좋게' 봉환된 것이다.
따라서 이 대통령의 발언은 북한지역에서 발굴된 국군 전사자 유해가 처음으로 봉환된 것을 계기로 북한지역 국군 전사자 유해 송환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주목을 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와 상종하지 않겠다는 김정은 정권이 북한을 실체적으로 통치하는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유해를 찾겠다는 것인지 해법은 제시되지 않았다. 그래서 현충일용 '립 서비스'라는 의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는 유해봉환 공약을 내건 다른 보수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도 5월 29일 국군전사자 유해를 대한민국 품에 모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또 대선 출마를 선언한 김문수 경기도지사도 지난 1일 보훈 관련 공약으로 임기내 생존 국군포로 및 납북자 생환, 전사자 유해 송환을 위한 '대북 빅딜'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실 60년 전 한반도는 3년 전쟁을 치르는 동안 방방곡곡이 전사자들의 거대한 무덤이었다. 내전과 국제전의 성격을 두루 띤 6.25 전쟁이라는 현대사에서 보기 드문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은 탓이다.
한국군 전사자 열에 여덟은 6.25 때 죽었다
지난 2007년에 창설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따르면, 6.25 전쟁으로 인한 국군의 사망・전사자는 국군 총사망・전사자 178,569명의 약 77%에 달하는 137,899명에 이른다. 한국군 전사자 열에 여덟은 6.25 때 죽은 셈이다.
한국군만이 아니다. 보병 1개 소대가 참전한 룩셈부르크부터 지상군만 10개 사단을 포함해 178만 명이 참전한 미국에 이르기까지 16개 외국군이 유엔군의 깃발 아래 참전해 그 가운데 3만8천여명이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전사했다. 적군(赤軍)이자 적군(敵軍)인 조선인민군과 중공군도 36만여명이 한반도 전역에 뼈를 묻은 것으로 추정된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따르면, 2011년 현재 남한지역에서만 국군 전사자 6,003구와 UN군 전사자 11구의 유해를 발굴했으며, 적군 전사자의 유해도 북한군 593구와 중공군 유해 358구 등 총 951구를 발굴했다. 치열했던 전투가 많았던 지역일수록 유해 발굴도 비례했다.
지역별 유해발굴 현황을 보면 ▲강원 3,305(48%) ◆경북 1,711(25%) ▲경기 1,200(17%) ▲경남 418(6%) ▲충북 132 ▲전남 91 ▲충남 43 ▲전북 19 순이다. 이는 위 그래프에서 보는 것처럼, 6.25 전쟁 당시의 지역별 전투 회수(▲강원 78 ▲경기 48 ▲경북 31 ▲경남 11 ▲충북 8 ▲충남 5 ▲전북 3 ▲전남 2)와도 대체로 비례한다.
전투 회수가 많고 치열할수록 전사자는 늘 수밖에 없다. 경기와 경북 그리고 강원에 집중된 지역별 유해발굴 지도는 개전 초기의 북한군 남침과 반격전이 펼쳐진 서부전선과 낙동강 전선, 그리고 중공군 침공과 반격으로 전선이 교착한 가운데 일진일퇴의 고지전을 벌였던 동부전선의 처절했던 전투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미국의 슬로건 "You are not forgotten"
미국은 전사자 유해발굴의 모범국으로 꼽힌다. 미국은 "You are not forgotten"(우리는 여러분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미군이 참전한 세계 전역에서 유해발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미 국방부 자료에 의하면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미군은 33,629명이며, 전쟁포로 7,140명 중 사망한 미군은 2,701명에 이른다.
휴전 직후부터 북미간에 진행된 유해송환은 북한이 1954년 8월 유엔군 전사자 4,023구의 유해를 돌려준 뒤 중단되었다. 이후 1988년 12월 중국 베이징에서 북·미 참사관 접촉으로 유해 송환 협상이 재개되어 마침내 양국은 93년 8월에 '미군 유해에 관한 합의서'를 도출했다.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북한은 1990년 5구, 1991년 11구, 1992년 33구, 1993년 148구, 1994년 14구의 미군 유해를 송환했다.
1996년부터는 북미 양국의 공동발굴이 시작되었는데, 매년 별도의 협상을 통해 차기년도의 사업규모와 보상액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양국은 1996년부터 33회의 작업을 통해 225구의 미군 유해를 발굴했는데, 지난달에 국내로 송환된 유해도 이 기간에 발굴된 것이다. 지금까지 북한에 지급된 미군유해 발굴작업 비용만도 모두 2,800만여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미관계가 악화되면서 미국은 북한내 미군 유해발굴팀의 안전을 이유로 작업을 중단한 가운데 아직까지 재개하지 못하고 있다. 양국은 지난해 10월 방콕에서 열린 북·미회담에서 유해발굴 작업을 재개하기로 합의했지만, 북한이 지난 4월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면서 합의는 실행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사자 유해발굴 '첫 삽'은 김대중, 유해발굴감식단 창설은 노무현
이처럼 오래 전부터 공동발굴 작업을 하는 가운데 신뢰가 쌓인 북미 간에도 유해봉환이 중단된 상태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상종하지 않겠다는 김정은 정권을 상대로 어떤 복안을 갖고 '북녘 땅에 묻힌 수많은 호국용사의 넋을 편안히 모시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국군 전사자의 유해발굴 사업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4월 6.25전쟁 50주년기념사업 일환으로 처음 한시적(3년간)으로 추진되었다. 이후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 7월 호국보훈 관계장관회의에서 이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로 하고, 2005년 6월에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을 영구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2007년에 미 JPAC에 이어 전세계에서 두 번째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을 창설한 것이다.
이후 이명박 정부는 유해발굴사업을 더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범정부차원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미국 JPAC와의 한미 유해발굴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2011.8)을 통해 유해발굴을 위한 국제 협력을 강화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남한지역에서 2011년 현재 국군 전사자 유해 6,003구와 적군 전사자 유해 951구(북한군 593구와 중공군 358구)를 발굴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지역에 있는 전사자 유해는 북한 당국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유해의 수습을 위해서는 남북의 당국간 협력이 필수적이다. 더욱이 유해발굴 작업을 수행하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전투부대가 아닌 감식전문부대이지만 신분은 엄연히 현역 군인들이다. 따라서 북한 군부가 한국군에게 북한 전역에 산재해 있는 국군 전사자 유해를 발굴하도록 허용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다행히 남·북한은 제2차 남북 정상회담 이후 2007년 11월 평양에서 개최한 제2차 국방장관회담에서 6.25전사자 유해를 남북지역에서 공동으로 조사하고 발굴하자는 내용에 합의한 바 있다. 당시 양측은 전사자의 유해를 수습하는 것은 이념차원을 떠나 인도주의적인 문제라는데 공감하고, 유해 공동발굴에 합의했다. 그러나 남북관계 악화로 인해 합의내용을 전혀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남한지역에서 수습된 북한군 유해도 북쪽으로 송환되지 못하고 있다.
북한군 전사자 유해 593구를 먼저 송환하는 것도 한 방안
따라서 북한군 전사자 유해 593구를 북한으로 먼저 송환하겠다는 제안으로 이미 합의한 남북한 공동 유해발굴 실행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공동 유해발굴은 인도적인 사안이기 때문에 오히려 복잡하게 엉킨 남북관계를 풀어내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제안을 집권여당의 유력한 대선후보로서 국가안보관이 확고한 박근혜 의원이 한다면 더 실행 효과가 클 것이다.
또 북한지역에서의 전사자 유해발굴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전사자 유해가 많을 것으로 추정되는 비무장지대(DMZ)에서부터 공동 유해발굴을 시작하는 것이 현실적 방안이 될 수 있다. 국방부는 현재 북한지역과 DMZ 등에 3~4만여 구의 국군 전사자 유해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최근 '국군 전사자 유해 최초 송환과 향후 과제'에서 이 방안을 제시했다. 남북한은 이미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 DMZ에서 끊긴 경의선 철도-도로를 잇는 공동사업을 해본 경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