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사태와 민주통합당 임수경 의원의 막말 파문 그리고 이에 대한 수구보수 진영의 막무가내식 색깔론 제기로 '종북' 논란이 일파만파로 번져가고 있는 가운데, 그 불똥이 북한인권문제로 옮겨붙었다.
발단은 노무현 정부 때 총리를 지낸 민주당 이해찬 의원이 6월 4일 평화방송 라디오에서 "북한 인권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고, "인권단체들이 문제 제기를 하는 건 관계가 없지만" 국가 차원에서 개입하는 것은 "외교적인 결례"이자 "내정에 간섭하는 것"이라는 발언이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다음날 "헌법 가치 중 가장 중요한 게 국민의 인권이자 국가의 자유민주주의 질서"라며 "헌법 훼손이 있을 경우 국회의원으로서의 자격을 심사하는 데까지 이를 수밖에 없다"며 이해찬 의원의 '자격'을 문제 삼았다. 김영우 대변인도 "총리를 역임하고 당 대표가 되겠다는 분의 북 주민에 대한 인권의식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고 논평했다. 그러자 이해찬 의원은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의 신매카시즘 선동에 맞서겠다"고 받아쳤다.
여야의 설전이 커지면서 새누리당은 19대 국회의 우선적 과제로 북한인권법 제정을 들고 나왔고, 민주당은 새누리당의 정치적 의도와 이 법안의 실효성을 문제 삼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4·11 총선 이전에 정치권에서 그토록 다짐했던 '민생' 국회는 실종되고 극심한 색깔론과 이념 대결이 판을 치고 있다. 또한, 따뜻한 관심과 진지한 모색의 대상이 되어야 할 북한 인권문제도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정쟁에 속박당한 북한 인권문제북한인권법 논란에서도 확인되듯이, 북한 인권문제는 두 가지 심각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 하나는 북한의 인권 상황이 대단히 열악하다는 '객관적인 현실'이다. 다른 하나는 수구보수 진영의 북한 인권문제의 정치화와 민주진보 진영의 상대적 무관심이 맞물려 있는 '정치적 현실'이다.
국내외 보수파들은 대북강경책을 정당화하고 더 나아가 북한 체제의 붕괴를 유도하기 위해 북한 인권문제를 활용해왔다. 특히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을 비난하고 민주진보 인사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종북' 딱지를 붙이는 데 북한 인권문제는 '전가의 보도'처럼 악용되고 있다.
민주진보 진영도 반성해야 할 점들은 많다. 남북관계의 현실과 실효성을 들어 북한 인권문제에 소홀한 사이에 수구보수 진영이 이 사안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것은 가장 안타까운 현실이다. 보수진영이 탈북자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하면서도 정작 이 문제에 관한 관심과 실천은 부족하기만 하다.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합리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안을 찾는데 가장 우선되어야 할 과제는 이 문제를 정쟁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보수진영의 '탈정치적 진정성'과 민주진보진영의 '지속적인 관심'이 만나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합리적 보수와 진보가 교집합을 넓혀갈 수 있을 때, 양극단의 주장의 설 자리는 좁아지고 실질적인 문제 해결의 공간은 넓어질 수 있다.
북한인권법, 실효성 있나?그러나 북한인권법을 둘러싼 논란의 양상을 보면, 이러한 합리성을 기대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우선 새누리당이 '종북' 파문에 편승해 또 다시 입법화하려는 북한인권법 자체가 모순투성이이다.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이해와 인권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균형 잡힌 시각이 결여되어 있고, 북한 인권 개선의 근본 토대라고 할 수 있는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도 조건 없는 지원의 필요성 대신 투명성과 모니터링 등의 제약요건을 명시함으로써 인도적 지원을 오히려 제한한다.
특히 법안에 담겨 있는 대부분 내용이 북한주민의 실질적인 인권 개선 효과보다는 인권재단 설립을 통한 대북단체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정부 보조금이 남북갈등은 물론이고 남남갈등을 야기하고 있는 삐라 살포 단체나 보수단체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인권법이 북한 인권 개선은 고사하고 남남갈등의 첨예화를 정부예산으로 조장하고 북한 정권 타도 목적으로 정부예산이 사용될 우려가 크다는 지적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한편, 18대 국회에서 민주당이 북한인권법에 대응해 내놓았고 19대 국회에서 재추진을 검토하고 있는 '북한민생인권법안'은 대북 인도적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남한이 북한 인권문제에 관해 취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도 즉각적인 조치가 대북 인도적 지원이라는 점에서 북한인권법보다는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북한인권법 상정에 대응해 급조한 측면이 있고, 북한 인권문제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대안이 별로 담겨 있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법안 경쟁보다 차분한 논의 구조부터 만들어야새누리당이 정치적 목적으로 북한인권법 제정을 시도하고 민주당이 이를 '신매카시즘'의 일환으로 보는 한, 여야의 접점을 마련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국회가 북한 인권문제와 관련해 해야 할 일은 법안을 통한 선명성 경쟁보다는 머리를 맞대고 차분히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데에 있다.
이와 관련해 국회가 여야 국회의원들과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한반도 인권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안을 추진해볼 필요가 있다. 위원회를 구성한다면 극단적인 인사들은 배제하고 합리성과 전문성을 갖춘 인사들을 선임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명칭 역시 '북한'보다는 '한반도'라는 명칭을 붙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는 남북관계는 물론이고 남한 내부의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실질적인 논의를 가능케 할 수 있는 실용적인 선택이다. 또한, 시야를 한반도 차원으로 넓혀 북한 인권문제뿐만 아니라 분단과 적대적 대결 때문에 잔존하고 있는 한국의 인권문제도 의제로 다룰 수 있다.
대표적인 한반도 인권문제라고 할 수 있는 이산가족 문제, 자유민주주의의 온전한 구현의 최대 장애물인 국가보안법의 개폐 및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에게 대체 복무 허용 그리고 많은 탈북자에게 희망의 땅이 아닌 절망의 땅이 되고 있는 남한 내 탈북자 현실 등도 이 위원회에서 다룰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하) 편에서는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대안적 접근을 집중적으로 다룰 예정입니다. 정욱식 기자는 평화네트워크(www.peacekorea.org) 대표를 맡고 있으며 최근에 쓴 책으로 <핵의 세계사>(아카이브, 2012)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