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으로 홀로 떠났던 여행은 지난 2010년 여름휴가로 갔던 제주 올레길 도보 여행이었다. 약 7일간을 홀로 제주 올레길을 걸으며 그동안 알지 못했던 제주도의 속살을 체험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여성 혼자서 하는 여행은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은 제주도의 풍경과 사람들과의 만남이 저멀리 날려보냈다. 그렇다해도 어딜 가든 혼자서 밤늦게, 외지고, 한적한 곳에는 가지 않는 것이 진리라는 것을 마음에 새기고 떠나야 한다.
혼자 하는 여행의 참맛을 이제 해외로까지 넓혀보고자 마음 먹었다. 그리고 지난 2011년, 탐보디아로 가기로 결정했다. 동남아시아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다가 있는 휴양, 레포츠, 먹고 즐기는 관광 등의 이미지를 떠올리겠지만, 나는 제일 먼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를 비롯한 크메르 고대 거석 문화를 꼭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과거 학원강사 시절 아이들에게 세계문화유산에 관해 설명을 하면서 피상적인 설명에 그쳤던 기억도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어느 정도의 규모인가를 내눈으로 꼭 확인하리라!
처음으로 혼자 떠났던 해외 여행
여행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으로 준비를 시작했다. 9일이라는 여름휴가 기간을 온전히 캄보디아에 쏟아붓기로 했다. 가장 먼저 단행본 도서를 구입해서 읽었다. 힌두교 신화에 관한 책 한 권과 앙코르 유적 전반에 관한 인문서 한 권을 읽었다. 신화는 재미 있었지만, 유적의 규모와 그 의미는 제법 어렵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도 더러 있었다. 그래도 사전 준비 없이 떠나는 것 보다는 나을 것. 그냥 거대한 돌덩이만 보고 오진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캄보디아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유적지가 아니었다. 시엠립 국립박물관이었다. 사전에 책을 보아도 어렵고 제대로 이해를 못한 것도 있었고, 문화를 이해하는 가장 보편적인 장소가 바로 '박물관'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한국어 오디오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어서 이해가 되거나 말거나 오전 내내 박물관을 샅샅이 다니면서 크메르의 유적과 문화에 대해 이해하려고 했다.
여행, 이왕이면 여러 경험을
캄보디아 여행의 주 목적은 물론 유적 관람이었다. 시엠립에 오면 누구나 찾는 앙코르와트(Angkor Wat)나 크메르의 미소를 볼 수 있는 앙코르 톰(Angkor Tom)의 바욘(Bayon) 사원, 안젤리나 졸리의 따 프롬(Ta Prohm) 사원 이외에 초기 유적지인 롤루오스 유적군, 비교적 원거리인 반띠아이 쓰레이(Banteay Srei) 또한 주요한 유적지였다.
9일이나 되는 여행기간이었기에 대부분의 유적지는 다 가본 것 같지만 끄발 스삔이나 벙 미알리아 등의 유적지는 외곽에 있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유적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는 관계로 유적 관람을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현지인들을 좀 더 가까이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바로 서 바라이(West Baray)를 향해 숙소에서 만난 한국인 여행자들과 함께 자전거 여행을 갔던 것이다. 시엠립 시골 외곽을 자전거로 달리는 기분은 툭툭을 타고 달리는 것과는 또다른 새롭고,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소를 몰거나 일하는 현지 주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섭섭하이~!"라고 인사하니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어준다.
도중에 화장실이 급해 염치 불구하고 현지 가옥의 화장실을 이용한 적도 있었고, K-POP을 부르며 우릴 향해 반가운 미소를 지어주던 아이들, 그 주민들은 관광지에서 호객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역시 사람 사는 곳은 비슷하고 시골 인심은 순박하다는 점을 새삼 느꼈다. 역시 여행은 길에서 사람을 만나야 제맛이다.
혼자 다니는 묘미를 즐기고자 떠난 여행이었지만 때때로 심심함과 외로움을 느낄 때도 있다. 이번 여행에서는 도착한 시기가 비슷한, 숙소에서 만난 한국인들과 유적 관람을 함께했다. 또, 하루는 일일봉사를 우연히 하기도 했다. 예상치 못한 만남이 있기에 여행은 즐겁다.
캄보디아에는 전 세계 각국의 다양한 NGO 단체가 많이 있다. 한국에도 진출해 지원되는 곳이 몇 군데가 되는데 우리는 '다일공동체'를 방문했다. 일행 중 개신교 신자는 한 명 뿐이었다. 각자 종교느 달랐지만, 우리는 흔쾌히 의기투합해 그곳에 방문했다. 여행 중 가장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한 끼 식사를 제공함과 동시에 컴퓨터교실, 제빵교실, 천사클리닉 등의 다양한 자활 지원 사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반짝이는 눈망울의 천진한 아이들에게 밥을 퍼주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캄보디아 여행 중 유적지를 방문할 때마다 조악한 팔찌나 엽서 등을 파는 아이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때론 그냥 '원 달러'를 요구하는 꼬마 아이들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특히 정이 많은 한국 어르신들은 아이들을 동정해 쉽게 돈을 주기도 한다. 고작 1달러니까. 하지만 1달러를 줌으로써 그 아이들의 미래에 과연 어떠한 도움이 될까. 우리가 저개발국을 여행할 때 가지는 섣부른 동정심이 과연 그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그저 자기 만족에 그치지 않을까. 상당수의 아이들은 자신만의 상술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봉사활동을 마치고 소액의 후원금을 익명으로 냈다. 이후 나는 한국에 돌아와 캄보디아에 진출해 있는 다른 한국의 NGO 단체에 후원금을 내기 시작했다. 이와 별도로 15세 이하 어린이를 무료로 치료해주는 자야바르만 7세 병원을 위한 첼로 콘서트에 가서 공연도 보고 기부도 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이 준 감동은 기부로 이어졌다.
1달러의 다양한 의미한편, 캄보디아에 입국해 도착 비자를 받을 때, 비자발급관들과 입국심사관들의 노골적인 1달러 웃돈 요구가 있었다. 그동안 수많은 여행객들이 웃돈을 쉽게 줬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들의 요구에 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1달러가 공무원들의 수입의 얼마 정도를 차지할 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공무원들의 부정과 부패가 공공연하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결국, 이는 국가발전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입국심사대 앞에서 움츠러들 수 밖에 없는 외국인들은 그냥 1달러의 웃돈을 줄 것인가, 아니면 시간을 조금 인내하며 거기에 응하지 않을 것인가의 고민에 빠질 수 있다. 고작 1달러의 고민, 결국 나는 비자발급대에서 섰던 줄의 맨 뒤로 가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어색한 웃음으로 "NO"라고 말했다. 나는 정당하게 비자를 발급받았다. 긴장되는 순간이었지만 인내하기도 힘든 순간이기도 했다. 기분 상하며 1달러를 얹어 주는 것보다는 여행자로서 정당한 방법으로 여유있게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활력충전과 기분전환을 위해 떠난 여행지에서의 쇼핑과 먹을거리, 즐길거리를 만끽하는 것도 여행의 묘미다. 일전에 단체 패키지 여행에서 시세에 비해 터무니없이 과도한 거품이 섞인 가격의, 하지만 품질은 믿을 수 없는 쇼핑과 마사지 등을 경험했던지라 현지 시장에서 물건을 고르고 흥정을 하는 재미는 그것과 비견할 바 없이 쏠쏠했다.
비록 공정무역 제품을 접할 수는 없었지만 거대 기업이나 여행사에게만 이익이 가기보다는 현지인들의 생활경제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쇼핑을 하고 싶었다. 시엠립에는 올드마켓과 나이트마켓, 그리고 싸르라는 신시장이 있다. 여행자들은 주로 여행자 거리와 가까운 올드마켓과 나이트마켓을 가게 된다. 시장의 장점은 물건을 사지 않고 구경만 하는 그 자체로 재미있다.
일전에 중국 여행을 하면서 한국에서 인터넷 면세점을 이용한 적이 있었는데, 조그만 화장품 하나에 과도한 비닐 포장이 겹겹이 '안전하게' 되어 있는 걸 보면서 과연 이 포장지들이 과연 어떻게 재활용이 되는 것일까가 의문이 생겼다. 혹 매립되거나 소각한다면? 중국발 환경오염이 제법 심각하고 우리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정을 감안한다면 여행자로서 그냥 무감각하게 넘길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인터넷 면세점은 생략하였다. 물론 공항 면세점도 생략하였지만.
이국에 갔으니 먹을거리도 현지 음식을 먹어보아야 의미가 있을 것이다. 시엠립의 여행자 거리에는 노천식당을 비롯해 다국적 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그곳의 음식가격은 현지 물가에 비춰봤을 때 결코 저렴한 편은 아니었지만 무난한 맛이 있었다. 우리 툭툭 기사가 추천해 준 식당 한 곳은 현지인들이나 가난한 배낭여행자가 갈 법한 곳인데 너무 싸고 맛있어서 두세 번 갔다. 가끔 한국음식이 먹고 싶어서 한식당을 가기도 했지만 역시 음식은 문화 접촉의 한 방식이다. 나의 경우는 입에 안맞는 음식이 없었다.
우리가 여행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기도 하며 전혀 다른 문화를 접하고 사람을 만나고, 멋지고 새로운 자연풍경을 보고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한다. 그러므로써 건강하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목적일 게다. 여행이 직업이 아닌 이상은.
여행은 인문학이다캄보디아로 여행지를 결정하고 앙코르 유적에 관한 공부 외에 캄보디아에 관해서도 대략적인 사전 지식을 가지고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앙코르 유적과 관련한 역사, 과거 식민지배의 경험, 오랜 내전, 그리고 현재의 정치상황 등등을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서 공부를 했다. 캄보디아는 이렇게 관광자원이 풍부한 나라이지만 현재 왜 아시아 최빈국의 오명을 가지고 있는가. 곳곳에 흩어진 앙코르 유적지들을 보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관람객이 방문을 한다. 그 많은 유적관람비와 부가적으로 지출되는 관광객들의 여행비는 과연 어디로 가는가.
과거사로부터 이어져 온 국가상황은 유적관리를 할 자체 기반도 없이 관람비 수입은 베트남 사기업이 벌어들이고 있으며 향후 일본과 프랑스 등의 국가로 관리권이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점,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원조와 차관이 캄보디아 국민에게 실제 도움을 주지 못하고 빈부격차를 유지시키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대하여 새로이 알게 됐다. 또한 영화로도 방영되었던 '킬링필드'에 관해서 대학시절에 잡지에서 읽었던 글을 떠올리며 영화의 내용과는 다른 칼럼과 기사들을 읽어봤다.
이러한 불편한 진실을 알고 나니 그저 들뜬 마음으로 해외여행을 하고자 했던 나의 마음이 짐짓 고민되기도 했다. 지식으로 접한 여행지의 정보에서 시작된 여행준비는, 별 의미 없을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나름대로 의미있는 여행이었던 것 같다. 어찌 보면 여행은 인문학이 아닐까. 인문학이란 단지 지식의 습득이 목적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미래에 좀더 긍정적으로 변화, 발전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듯이, 여행도 오감만이 만족하고 여행지에 관한 지식만 쌓기보다는 좀더 긍정적인 방향성을 고민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어쨌거나 우리 모두는 지구별에서 다같이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 아닌가.
덧붙이는 글 | "여행사연 쓰고, 공정여행 가자" 공모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