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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간인 사찰 증거를 인멸하라고 지시한 '윗선'으로 의혹을 받고 있는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지난 3월 2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민간인 불법 사찰에 대해 "국민여러분께 걱정과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민간인 사찰 증거를 인멸하라고 지시한 '윗선'으로 의혹을 받고 있는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지난 3월 2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민간인 불법 사찰에 대해 "국민여러분께 걱정과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 유성호

케이블 채널에서 방송하는 스타크래프트 경기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영호라는 이름을 익히 들어 봤을 것이다. 그는 현란한 컨트롤과 뛰어난 운영으로 보는 이의 넋을 잃게 한다. 그는 팀이 위기에 빠졌을 때 연전연승으로 팀을 구해내곤 해 '최종병기'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최종병기 이영호가 있다. 바로 전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 이영호다. 이영호 전 비서관은 장진수 전 총리실 주무관의 폭로로 청와대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기자회견을 열어 청와대를 구했다.

'청와대 최종병기' 이영호... 윗선 못 밝힌 검찰 조사 결과

그는 자신이 총리실 컴퓨터 자료를 삭제하도록 지시했음을 인정하면서, 자신이 몸통이라고 주장했다. "자료를 삭제했을 뿐 증거인멸이 아니다", "민간인 사찰을 불법사찰로 왜곡하는 것은 현 정부를 음해하기 위한 민주통합당의 정치공작"이라는 주장도 펼쳤다. 장 전 주무관에게 건넨 2000만원은 '절대' 입막음 용도가 아니라 선의였다고 했다.

한 일간지의 보도에 따르면 이영호 전 비서관은 검찰 수사를 받을 때도 큰 목소리를 내며 오히려 수사하는 검사와 수사관에게 호통을 쳤다 한다. 반면 윗선을 추궁하는 검찰의 질문엔 꿀 먹은 벙어리였다.

거대한 불법을 저지르고도 자신이 모든 일을 주도했다고 큰 목소리를 치고, 윗선에 대해서는 입을 꾹 다무는 것을 보면 가히 청와대의 최종병기라 할 만 하다. 이에 부응하듯 '사즉생의 각오로 수사에 임하겠다'던 검찰은 이영호의 바람대로 그 윗선을 밝히지 못한 채, 이영호를 몸통으로 수사를 마무리했다.

민간인 불법 사찰은 전방위적으로 일어났다. 대표적인 피해자인 김종익 KB한마음 대표를 비롯하여 정권에 비판적인 사람들에게 공권력을 이용하여 사찰이 이루어졌다. 정식 보고라인도 거치지 않았으니 이것을 공권력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김 대표는 불법적인 사찰로 인해 정신적, 물질적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게다가 정부로부터 한마디 사과조차 받지 못하고 장기간의 수사에 시달린 끝에 기소까지 당했다. 그러나 공소사실의 대부분이 특정조차 되지 않아 법원으로부터 공소기각 판결을 받았다. 참 정말 마법 같은 일이다.

그 뿐만 아니라 현 정부에 비판적인 새누리당 소장파 의원들에게도 사찰이 이루어졌다. 그 중 한 명이 기자의 고향에 지역구를 둔 남경필 의원이다. 필자는 지난해 남경필 의원과 수원에 있는 절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 그 때 남경필 의원과 악수를 나누었다. 게다가 사찰 밥도 바로 옆 테이블에서 같이 먹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때 그 '사찰'에서 함께 '사찰' 당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론에 공개된 일부 사찰 보고서에는 굉장히 가까이서 관찰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세부적인 부분까지 묘사돼 있다. 필자도 남 의원에 대한 사찰 보고서에 '머리카락이 길고 숙취에 시달리고 있는 듯한 이상한 대학생'으로 등장했을지 모른다.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문건 속 'VIP', 가수 빅뱅 팬클럽은 아닐텐데

 13일 오후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박윤해 부장검사)의 송찬엽 서울중앙지검 1차장이 서초동 청사 13층 브리핑실에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13일 오후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박윤해 부장검사)의 송찬엽 서울중앙지검 1차장이 서초동 청사 13층 브리핑실에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권우성

얼마전 진경락 전 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이 작성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업무추진 지휘체계' 문건이 언론에 공개됐다. 이 문건은 지원관실을 '이 대통령의 친위대'로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이 문건에는 'VIP께 일심(一心)으로 충성하는 비선 친위조직으로 특명사항을 총괄지휘'라고 적혀 있다. 또한 '사찰 사건으로 기소된 공무원들에게 그에 따른 보상을 해야 한다'는 보고서가 청와대 최고위층에 전달된 정황도 드러났다.

이 문건에 등장하는 VIP가 설마 같은 이름의 아이돌 가수 빅뱅 팬클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공개된 중학교 '일진회'스러운 청와대의 충성서약 문건을 읽어보면 정말 화가 나서 멘탈(M)이 붕괴(B)될 지경이다.

검찰은 진경락 전 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이 불법사찰에 대한 입막음의 대가로 청와대 측에 비례대표 공천을 요구했다는 정황이 담긴 녹취록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든 장본인이 국민의 대표가 되려고 했다니 충격적이다. 마치 그의 이름처럼 머리에 강한 경락 마사지를 받은 듯한 기분이다. 하지만 머리가 시원하기는커녕 불쾌하기만 하다. 이렇듯 불법 사찰에 대해 드러난 새로운 사실들은 모두 청와대를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는 처음부터 끝까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11일엔 방송인 김미화가 지난해 MBC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동향을 조사해 보고한 지원관실 문서가 있음이 알려졌다. 김미화는 김제동, 윤도현과 함께 현 정부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찰의 대상에 오르고 자신이 진행하던 지상파 방송에서 하차해야 했다.

총선은 끝났다. 검찰의 불법사찰 재수사도 끝났다. 하지만 아직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 남았다. 이 추악한 일을 지시한 머리를 찾는 일에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위에 열거한 연예인들을 다시 TV에서 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민간인 사찰에 분노해야 한다. 민간인 사찰이라는 괴물에게는 '최종병기 이영호'를 조종한 머리가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징그러운 머리를 보는 것을 망설이면 안 된다.

일본만화 <드래곤볼>에서는 후반부에 최강의 적 마인부우를 제거하기 위해 손오공이 자신의 기술인 원기옥을 모으기 시작한다. 이 원기옥은 지구를 지키고 하고 싶어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힘을 보태줄수록 강해진다. 결국 손오공은 지구인들의 힘을 합친 원기옥으로 마인부우를 제거하는 데 성공한다.

우리도 이 민간인 사찰이라는 괴물을 제거하기 위해서 원기옥을 모아야 하지 않겠는가. 민간인 사찰이라는 괴물이 다시는 우리의 눈앞에 나타나지 않도록, 이 괴물이 한줌의 조각도 남지 않도록 '매서운 눈빛'이라는 원기옥을 모아야 한다.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모일수록 강한 존재다. 다시 한 번이라도 이런 괴물을 만든다면 그 대가는 무서울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거대한 원기옥을 통해 보여줘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최수범씨는 현재 인권연대 청년칼럼니스트로 활동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민간인 불법사찰#이영호#최종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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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연대는 1999년 7월 2일 창립이후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에 따라 국내외 인권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인권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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