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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구성원 절반이 소득과 재산에 있어 '불평등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 취업 등 기회적 평등에 대해서서도 여성, 저학력자, 저소득자 등 사회 약자들이 체감하는 불평등정도가 여전히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1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사회의 공정성 1990~2011'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사회·교육·경제·행정 부문에 걸쳐 발표된 10개의 연구자료에 의하면 한국인들이 체감하는 전반적인 사회 공정성 정도는 여전히 정책적인 개선 노력이 필요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다만 공정성 경향은 1990년 이후 점차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1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사회의 공정성, 1990~2011' 세미나에 참석한 연구자들이 발표를 하고 있다.
1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사회의 공정성, 1990~2011' 세미나에 참석한 연구자들이 발표를 하고 있다. ⓒ 김동환

20년간 모은 한국사회 공정성 관련 자료, 논문 10편으로 소개돼

이날 소개된 사회 공정성 관련 연구들은 모두 한국종합조사(KGSS)와 국제사회조사프로그램(ISSP) 자료에 바탕을 뒀다. 이 두 조사 자료는 최근 10~20여년에 걸쳐 여러 국가에서 축적된 여론조사 자료로, 시간 순서대로 국제적 비교분석이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한국종합조사 자료는 1990년부터 5년 주기로 다섯 차례에 걸쳐 취합된 것이다.

신동준 국민대학교 교수는 한국인들이 교육, 취업, 승진에 있어서 기회적 불평등을 얼마만큼 인식하고 있는지를 분석했다. 신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교육, 취업, 승진의 기회가 불평등하다는 응답은 2009년 기준으로 각각 전체의 28%, 47%, 44%였다. 또한 남성보다 여성이, 나이가 적을수록, 학력과 소득이 낮을수록 기회 불평등을 더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 취업, 승진 분야 중에서는 그래도 상대적으로 교육 분야에 공정하게 기회가 돌아가는 셈이지만 국제적으로 비교해 보면 이는 평균 이하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신 교수는 "성별, 민족, 계층 등 사회적 배경에 상관없이 대학입학 기회가 공정한지를 측정하는 인식도는 2.5점으로 조사대상 38개국 중 20위"라고 지적했다.

이 인식도 조사는 '매우 그렇다'를 5점, '그렇지 않다'를 1점으로 놓고 해당 국가의 국민들에게 의견을 물은 결과다. 사회적 배경이 개인에게 주어지는 기회 정도를 좌우한다고 느끼는 사회 구성원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한국 근로자들의 공정성 인식에 대한 연구에서는 이런 인식이 더욱 뚜렷하게 관찰됐다. '한국근로자들의 공정성인식'을 발표한 김상욱 성균관대 교수는 "한국 근로자들은 다른 국가 근로자들에 비해 사회적 성공을 위해서는 자신의 노력보다는 출신 집안이나 부모 학력, 아는 사람, 뇌물, 종교 등의 외적 요인들을 매우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특히 집안 사정이나 아는 사람들을 성공의 '필수요소'로 여기는 성향은 중국에 이어 조사대상 국가중 2위로 나타났다.

여성 등 사회 소수자들이 느끼는 사회 공정성에 대한 연구도 소개됐다. 여성의 사회 처우가 여전히 불평등하다는 인식은 1990년 49.8%에서 2009년 43.2%로 감소했지만 당사자인 여성과 남성이 느끼는 불평등 정도에는 온도차가 있었다.

송유진 동아대 교수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불평등에 대한 인식이 2배 정도 높았다"면서 "고학력자일수록 여성에 대한 처우가 불평등하다고 답했다"고 지적했다. 성별이 출세기회에 중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조사 대상이었던 26개국 중 7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니계수 낮은 한국, 불평등 체감도는 더 높아"

통계에 드러난 한국인들의 사회 공정성 인식과 실제 현실이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 연구들도 있었다. 장상수 순천대 교수는 교육 기회가 공정하게 주어지냐는 질문에 48.9%가 그렇다고 대답한 2010년 통계를 파고든 연구를 내놨다. 남성과 여성 사이의 교육 기회 불평등은 감소됐지만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학업성적에 미치는 영향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장 교수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사회 평균(50%)인 부모의 자녀 성적이 상위 10%일 확률은 10%, 사회적 지위가 상위 34%인 부모를 둔 자녀가 상위 10% 안에 들 확률은 22.5%로 비약적으로 증가 한다"고 설명했다. 응답자들은 교육기회가 공정하다고 답했지만 실질적으로 '돈 많은 집' 자녀가 더 많은 교육 기회를 얻고 있는 셈이다.

신승배 성균관대 교수는 한국의 직업별 소득불평등 인식을 일본과 비교했다. OECD 통계에 따르면 양극화 정도를 가늠하는 지니계수는 일본이 한국보다 높다. 그러나 신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체감 불평등정도는 한국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 교수는 "실제 현실에 대한 인식이 공정성과 관련한 세간의 인식을 결정한다기 보다는 공정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사실을 결정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회 전체적 수준에 대해서는 '공정해졌다'고 답하면서 자신과 연관된 일에 대해서는 '불공정하다'고 답하는 경향도 보고됐다. 이명인 고려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자신의 일에 비해 소득 수준이 어떠한지를 물어본 소득공정성 값은 1995년 -0.5066에서 2009년 -0.5525로 다소 감소했다.

이 교수는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소득과 재산이 어느 정도 평등, 불평등하다고 생각하는가를 물었을 때는 오히려 점점 평등하다고 말하는 비율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19일 열린 한국사회 공정성 세미나에서 축사를 하고 있는 김황식 국무총리
19일 열린 한국사회 공정성 세미나에서 축사를 하고 있는 김황식 국무총리 ⓒ 김동환

"공정성에 대한 명확한 정의 필요해"

이날 발표된 10개의 연구 논문들은 한국 사회의 공정성에 대해 모두 한 방향을 지목했다. 한국인들이 체감하는 사회 불평등도가 1990년 이후 점차 개선되고 있다는 것이다. 세간의 인식과는 상반된 평가다. 여기에 사용된 '공정성'이란 정확히 어떤 개념일까? 발표 후 이어진 종합토론에서는 이 점이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특히 사회학 전공자가 아닌 학자들의 비판이 거셌다.

황경식 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발표자들이 말하는 공정성이란 개념이 기회균등이라는 형식적 공정성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사회에서 도덕적 명분을 갖는 실질적 공정성은 단순한 기회균등을 넘어 약자에 대한 배려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황 교수는 "오늘 발표된 연구들은 이런 형식적 공정성에도 아직 한국사회가 미달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며 "정의사회로 가기에는 너무도 모자란 수준"이라고 평했다.

박찬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도 이와 비슷한 인식을 보였다. 박 교수는 "사람들이 동일한 규칙 아래 경쟁하도록 하는 것이 우선 시급하다"면서 "뒤처진 사람들을 앞으로 옮겨주는 적극적 배려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경영학을 전공한 전성빈 서강대 교수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발표 내내 나오는 공정성이라는 개념에는 나름대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학문 전체를 포괄하는 설득력을 가지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유금록 군산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도 "행정 같은 경우 다양한 분야를 포함하고 있어 분야 별로 공정성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면서 "공정성에 대한 개념부터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김황식 국무총리가 격려차 방문해 눈길을 끌었다. 김 총리는 "정부에서는 5개 분야 80개 과제를 선정해서 공정의 잣대로 챙겨보며 개선하고 있다"면서 "발전적인 논의가 실질적 대안으로 마련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정성#기회#한국종합조사#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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