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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량가족 레시피> 겉표지
<불량가족 레시피> 겉표지 ⓒ 문학동네


청소년기는 '오롯이 혼자이고 싶을 때'와 '외로울 때'가 공존하는 시기다. 갑자기 그 두 가지의 감정이 충돌하는 현상을 마주하게 되는 청소년들의 시간. 좀 더 나이가 먹고, 독립을 하고, 혹은 실제 독립을 하지 않아도 수만 가지의 감정과 현실에 부딪히다 보면 알게 되는 그 감정은 청소년들에겐 여태껏 경험하지 못했던, 경험해 봤어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혼란'으로 다가온다. 성장이 필요한 시기, 그 시기엔 위로받을 수 있는 관계가 필요하다.

'사는 게 힘들다'고 느끼기 시작한 순간부터 인간은 성장한다. 위로 받으면서 오히려 단단해지는 심장이 인간 내부 한 가운데 있다. 청소년기엔, 따뜻한 위로가 필요하다. 위로를 받으면서 아이들의 심장은 더 붉어지고, 단단해지고, 일으켜지며 뜀박질할 수 있다.

여기, 불안한 가족관계로 인해 눈물과 냉소로 점철된 심장을 갖고 있는 한 소녀가 스스로 심장을 일으킨다. 일단, 자기에게의 위로가 필요했던 이 소녀의 발칙하고도 유쾌한 삶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기회를 스스로 만든 내게도, 나의 청소년기에도 뒤늦게나마 위로를 떨군다.

여든 살이 넘은 할머니, 아빠, 뇌가 고장나버린 뇌경색 삼촌, 다발경화증이란 고질병을 이기지 못해 늘 기저귀를 차야 하는 오빠, 이 소녀만 보면 욕부터 해대는 언니, 그리고 주인공 여울. 그 소녀가 여울이다. 그리고 언니, 오빠, 여울은 이복남매다. 게다가 이들의 엄마는 모두 다 다르다.

엄마들이 차례차례 떠난 곳에, 엄마 대신 할머니와, 대책 없는 아빠, 뇌를 잃어버린 삼촌, 배다른 오빠, 언니, 여울만 남았다. 여울이네 가족구성을 보면 짐작할 수 있듯이 여울은 학교에서 자서전을 써오라는 숙제에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직시하며 진저리 치기도 한다. 자서전을 쓰는 것은, 거짓을 버무리지 않고서는 콩가루 집안에 대해 광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없이 우울하고 비뚤어졌을 법한 이소녀의 독백과 행동은 예상했던 만큼 창의적이다.

열일곱 소녀, 여울의 탈출구는 코스튬 플레이였다. 연출하고 싶은 캐릭터를 정해서 그에 맞게 화려하게 의상을 걸치거나, 혹은 가발을 쓰고, 가면을 쓰기도 한다. 그것도 아님 진하게 화장을 하는 방법도 이용한다. 표현하고자 하는 캐릭터가 되고자 준비 기간부터 무대에 오를 당일까지 캐릭터에 무한 애정을 쏟는다. 그 화려한 탈출구 속의 여울은 그곳에서 만난 슬픔과 갈등을 간직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성장한다.

결국, 고3 언니는 아빠랑 싸우다 집을 나가 독립을 하고, 이후에 오빠와 삼촌마저 아빠와의 다툼 끝에 집을 나가버렸어도, 자신이 제일 먼저 혼자가 돼야겠다는 예전의 가출 결심을 불량가족 일원에게 펼치지도 못한 채 빼앗겼어도, 여울은 속으로 불평만 할 뿐이다. 정작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자신이 어리다고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탈출구였던 코스튬 플레이를 통해 얻게 된 자기 위로와 타인에 대한 위로를, 내심 가족에게도 베푼다. 그리고 아빠마저 사업실패로 구치소 신세를 지게 돼 집을 떠나 버리자, 가족을 기다릴 줄 아는 성숙한 성장을 가진 열일곱 소녀로 거듭나게 된다.

이 창의적이고, 겉으론 비뚤비뚤 거리지만 마음은 올곧은 소녀 여울은, 자신의 가족이 진화하여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위기에 처한 가족을 바라보는 열일곱 소녀의 시선은 위로를 머금고 있다. 위로를 배운 여울은 위로하고, 일어서고, 일으킬 줄 아는 성장을 했다. 여울의 성장에 불량가족의 희망이 보였다. 지금 열일곱 소녀가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다. 돌아올 가족들의 눈에 소녀의 성장이 보이길 바란다. 돌아오게 된다면 한 번쯤은 소녀를 위로해 주기를 또 바란다. 열일곱 소녀에겐 괜찮다는 위로가 필요하다. 소녀의 붉어진 심장 뛰는 소리가 돌아올 그들에게 꼭 들리기를.


불량 가족 레시피 - 제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손현주 지음, 문학동네(2011)


#불량가족레시피#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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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문화, 다양한 사회현상에 관해 공부하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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