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는 최대한 살살 다뤄야 한다. 말 그대로, 불면 날아갈까, 잡으면 깨질까 그렇게 해야 한다. 계속 꽁꽁 싸매고 있다가 9월쯤 '나 안 해!' 이래버리면 결국 박근혜가 되는 게임이다. 민주당처럼 거칠게 다루는 건, 야권 그 어떤 후보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정치권 사정에 밝은 한 전략가는 최근 민주통합당이 안철수 교수에 대한 압박 수위를 점점 높이자 이렇게 말했다. 안 원장이 정치를 할지 말지 아직도 결정을 하지 못했다는 것은 아예 불출마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뜻이기 때문에, 절대로 그를 '거칠게' 다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안 원장 없이, 민주통합당이 대선에서 승리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면 더욱 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게다. 그는 솔직하게 이런 말도 했다. 최종 단계에서 그에게 응원단장이라도 맡길 요량이라면 살살 다뤄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이 전략가는 "이 상태로 대선 가면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이 대통령 되는 것은 너무 뻔한 판"이라고 통박하기도 했다.
안철수 원장의 정치참여 문제를 둘러싼 민주통합당 내부논쟁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발단은 이해찬 대표로부터 시작됐다. 이 대표는 언론을 통해 "대선에 대한 안 원장의 입장이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 같다"고 밝혔다.
라디오 인터뷰에 출연한 이 대표는 "안 원장은 지금도 좀 늦은 셈"이라며 "정치에 참여할 뜻이 있다면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인터뷰를 통해서는 "안 원장이 원샷경선에 참여하려면 다음달 20일까지는 입당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로 나선 손학규 상임고문은 "아무 실상도 없는 이미지만 있다"고 공격했고, 김두관 경남지사는 "무소속 후보가 국정을 맡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이종걸 최고위원은 지난 18일 최고위에 참석해 이런 말도 했다. "이 대표가 회의에서 '몇 개 채널을 갖고 얘기해 보았는데 아직 어떤 대답도 없다'는 취지로 말했고, 이를 근거로 각 언론이 안 원장 측의 태도 결정이 안됐다는 식으로 제목을 뽑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본인이 확인해보니 "이 대표의 의견이 안 원장 측에 전달조차 되지 않았다"며 "그럼에도 언론에 기사가 나가게 해 걱정"이라고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총선 전후로도 안 원장과 관련된 입장을 무수히 쏟아냈다. 당내 친노 인사들이 안 원장의 영입을 막고 있다거나, 한두달 내 당이 안 원장의 영입에 대한 입장을 정해야 한다는 등의 입장을 밝혔다. 지난 5월에는 "안 원장이 민주당에 입당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안 원장에 대한 상처내기... 누구에게 도움되나 생각하시라"이를 둘러싸고 정치권 내부에는 안 원장이 민주통합당 의원 몇몇을 메신저로 두고 라인을 관리하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본격적인 대선행보를 위한 활동이라는 설이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민주당 인사들이 안 원장을 팔아 자기 정치에 유리하게 써먹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안 원장에 대한 민주통합당 인사들의 설왕설래가 깊어갈 즈음, 안철수 원장의 공보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유민영 전 청와대 춘추관장이 직접 해명에 나섰다. '안 원장의 대변인'이 된 유민영 전 관장이 공보담당을 맡은 뒤 처음으로 나온 입장이었다.
유 전 관장은 19일 늦은 오후 '안철수 원장 관련, 민주당 일부 인사들의 발언에 대한 입장'을 통해 "근래 민주당 일부 인사의 발언은 안 원장에 대한 상처내기"라며 "그런 발언의 진의가 어디에 있는지 알기 어렵다,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 생각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서로에 대한 존중이 신뢰를 만든다"고 말했다.
유 전 관장이 이날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는 세 차례로 나뉘어 있지만, A4용지에 타이핑을 치면 네 줄짜리다. 이 네 줄짜리 입장문은 짧지만 상당히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안 원장은 '존중과 신뢰'를 강조했다. 아직 이번 대선에 자신이 출마하겠다고 본격적인 선언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잠재적 야권의 유력 대선 후보다. 안철수 원장의 출마가 사실로 굳어지면 정치권은 심하게 요동치게 돼 있다. 정치참여 여부를 결정하기 전부터 그는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을 이길 야권의 1위 후보였다는 사실이 그 점을 웅변한다.
따라서 그가 민주당 인사들에게 '존중과 신뢰'를 강조하면서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 생각해보라'고 주문한 것은 상당한 메시지가 깔려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민주통합당에서 대선을 뛰는 후보들과 경쟁관계임에는 분명하지만, 서로 헐뜯고 야지를 놓는 것이 과연 도움이 되겠냐는 호소 같기도 하다.
실제 최근 야권 내부에서는 그 누구든 '내가 후보가 되겠다'는 인식보다는 '야권의 신명을 살리고 새누리당을 꺾을 수 있는 후보가 누구냐'의 관점으로 올 대선을 바라봐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인식이 퍼지고 있기도 하다.
여하간 그는 계속되는 강연정치를 통해 자신의 의제를 국민에게 던졌다. 정의와 복지, 평화는 안철수식 정치의 키워드라는 게 설명됐다. 정당정치에 어떤 변화가 요구되는지에 대해서도 밝힌 바 있다. 부산대 강연에서다. 그는 부산대 강연에서 유럽식 정당모델에 대해 설파하면서 한국의 정당정치 문화에 변화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정권교체도 중요하지만, 정치교체가 더 중요하다고 밝힌 맥락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설령 민주진보쪽이 정권을 교체한다고 해도 '구체제' 시스템을 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 국민의 불행은 계속 되고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심화되는 것이 뻔한 게 아니냐는 현실적 인식을 어쩌면 그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따라서 이같은 깊은 고민 속에 빠져있는 상황에서 민주통합당이 계속 "할래 말래"에 대한 입장만 내놓으라는 식으로 나오니 뿔이 난 게 아닌가 하는 판단도 든다.
안 원장이 유 전 관장을 통해 민주통합당 인사들을 향해 "발언의 진의가 어디 있느냐"고 묻고,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보라"고 당부한 것은 그가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밝힌 입장의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안 원장은 당시 한나라당을 향해 "현 집권세력의 정치적 확대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야권과 함께 '구체제'를 넘어 새로운 대한민국의 역사를 써야 한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밝혀왔다. 진영논리를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그 말은 당내 질서에 따른 계파정치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열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렸다고도 볼 수 있다.
또 안 원장은 본인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사회적 발전에 도움이 되는지 먼저 판단하겠다고 이미 선언한 바 있다. 그 고민이 깊어지고 길어지는 것에 대해 조급증이 난 민주통합당 인사들이 시간을 이유로 공세의 수위를 높이자 심리적 압박이 '네 줄짜리 입장문'으로 외화된 게 아닌가 싶다.
선진통일당 "무소속의 안철수, 정당을 정하라"안 원장의 사정에 밝은 한 정치권 관계자는 "안 원장이 아직 결심을 하지 못했다는 것은 진심"이라며 "20년 30년씩 정치해온 사람이 대선출마를 결심하는 것은 단기간에 가능한 일이지만 전혀 다른 영역에서 활동했던 사람이 정치의 영역으로 옮길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간으로는 아직도 짧은 것이 아니냐, 오히려 후딱 대선출마를 결심하는 게 오히려 더 우스운 게 아니냐"는 반문도 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권 입장에서 보자면 안 원장의 입장이 빠른 시간에 결정되지 않으면 시간부족으로 '타이밍을 놓칠 수 있다'는 현실적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최악의 경우는 안철수 원장이 계속 이렇게 뜸을 들이다가 한 9월쯤 '나 안 해!' 이래버리면 야권은 그야말로 폭탄을 맞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그가 그런 선택을 하지 않도록 뭐가 됐든 야권과 함께 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선진통일당은 20일 안 원장을 향해 "정당을 선택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원복 선진통일당 대변인은 "헌정역사상 무소속 인사가 대통령이 된 일이 없다"며 "메시아 대망론처럼 안철수 원장에게 구세주인가 묻고 있다, 안 원장이 뭔가 확실한 답변을 해야 한다고 판단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 대변인은 "안 원장은 더 이상 무소속의 정치를 고집하지 말고 정당을 선택하라"며 "거대 양당을 선택하든지 힘들고 고난의 길이라 하더라도 선진통일당과 함께 하자"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