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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과수로 옮겨지는 금강산 관광객 시신 지난 2008년 7월 11일 저녁 북한 금강산 특구내 해수욕장 인근에서 북한군 피격으로 사망한 관광객 박왕자씨의 시신이 양천구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도착, 관계자들에 의해 연구소 안으로 옮겨지고 있다.
국과수로 옮겨지는 금강산 관광객 시신지난 2008년 7월 11일 저녁 북한 금강산 특구내 해수욕장 인근에서 북한군 피격으로 사망한 관광객 박왕자씨의 시신이 양천구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도착, 관계자들에 의해 연구소 안으로 옮겨지고 있다. ⓒ 연합뉴스 이상학

다음 달 11일이면 '고 박왕자씨 피격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지 4년이 된다. 금강산 관광의 파국은 남북관계의 현재를 그대로 보여준다. 

서해에서 남북한 해군이 교전을 벌여도 동해에서는 금강산관광객을 태운 유람선이 뜨면서 남북 간의 열전을 식히는 '냉각재'역할을 톡톡히 했었다. 그러나 북한이 남한 땅인 연평도를 포격하는 전쟁 직전 상황에 이르렀지만,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뒤에는 개성공단만이 최악의 파국을 막는 가느다란 숨통이 되고 있을 뿐이다.

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인한 물적 피해액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지난해 9월 당시 구상찬 한나라당이 집계한 추정치에 따르면, 남한은 현대아산 등 기업과 강원도 고성지역에서 1조374억 원, 북한은 703억 원의 피해를 봤다.

이명박 정부 출범 5개월여 만에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뒤 현재까지 이 문제 해결에 가장 근접했던 시점은 2009년 8월 17일이었다.

정부가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다 끝내 직접 방북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고집스럽게 5번이나 체류연장을 한 끝에 묘향산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 금강산 관광 조속재개- 김정일 위원장의 특별조치에 따라 관광에 필요한 모든 편의와 안전철저 보장 ▲ 군사분계선 육로통행과 북측 체류지역 원상회복 ▲ 개성관광재개- 개성공단활성화 ▲ 백두산관광 ▲ 추석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5개항에 합의했을 때다.

현정은 "김정일 '앞으로 절대 박왕자 사건 같은 일 없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2009년 8월 16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방북 중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일행과 면담하고 기념촬영을 했다. 김 위원장 오른쪽은 정지이 현대U&I 전무이며 왼쪽에 서 있는 인물은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겸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 오른쪽에 서 있는 인물은 현대아산의 최규훈 계약지원실장(부장).
지난 2009년 8월 16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방북 중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일행과 면담하고 기념촬영을 했다. 김 위원장 오른쪽은 정지이 현대U&I 전무이며 왼쪽에 서 있는 인물은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겸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 오른쪽에 서 있는 인물은 현대아산의 최규훈 계약지원실장(부장). ⓒ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현 회장이 귀국 기자회견에서 '고 박왕자씨 사건'과 관련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앞으로 절대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고 밝힌 부분은 그의 방북의 백미였다. 북한의 절대적 지배자인 김 위원장이 금강산 관광객들에 대한 신변보장을 약속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묘향산 합의에 따라, 2008년 12월 1일부터 취해온 '육로통행·출입·체류 제한조치'를 철회하고 추석이산가족 상봉을 이행해 금강관 관광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또 현 회장의 귀환 직후인 8월 23일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에 북한의 고위급 조문단이 방문해 이명박 대통령을 면담한 것도 기대감을 더욱 높였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정부는 "민간사업자 간 합의이므로 당국 간 합의가 필요하다"는 방침을 내놨다. 당시 '묘향산 합의문'이 현대그룹과 북한의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사이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이를 북한 정부의 방침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진상조사, 재발방지, 신변안전보장이라는 금강산관광재개 3대 조건을 당국 간 합의문에 명시해야 한다는 정부 주장의 연장선상이었다.

그러나 북한의 체제 특성상 최고지도자가 약속했고, 민간과 당국의 구분이 모호한 북한에서 1994년 10월 김용순 당 중앙위원회 비서를 위원장으로 설립된 아태평화위와의 합의는 사실상 북한 정부의 방침이므로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은 묵살됐다. 정권 핵심부가 북한에 현금이 들어가는 금강산관광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말들이 나왔다.

남북, 2009년 하반기에 '정상회담 양해각서' 초안까지 만들었는데...

 지난 2010년 4월 24일 천안함 침몰 29일째를 맞아 백령도 장촌포 함수 인양작업 해역에서 인양된 천안함 함수가 바지선에 올려져 있는 가운데, 절단면에는 그물이 설치되어 있다.
지난 2010년 4월 24일 천안함 침몰 29일째를 맞아 백령도 장촌포 함수 인양작업 해역에서 인양된 천안함 함수가 바지선에 올려져 있는 가운데, 절단면에는 그물이 설치되어 있다. ⓒ 유성호

돌이켜보면, '묘향산 합의'와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에 대한 북한의 고위급 조문단'이 방남한 직후인 2009년 하반기는 이명박 정부 남북관계의 분기점이었다. 2009년 10월 당시 노동부 장관이던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이 북한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싱가포르에서 만나 '연내 정상회담 개최'에 대해 양해각서 초안을 작성했고, 이를 바탕으로 한 달 뒤인 11월 개성에서 남한의 통일부와 북한의 통일전선부 사이에 당국 간 비공식 회담까지 열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상회담은 무산됐다. 임태희 전 실장은 21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무산' 이유를 묻는 질문에 "김양건 부장과의 싱가포르 접촉 뒤에는 업무가 통(일부)-통(전부)라인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그 뒤 어떻게 해서 무산됐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남북 한쪽에서 새로운 요구가 제기됐다는 말을 소문 정도로만 들었다"며 자세한 대답을 피했다. 이명박 정권 내에서 정상회담 문제를 놓고 강온파의 의견 대립이 컸다는 얘기가 나중에 나왔다.

북의 제의와 남의 수정제의 끝에 2010년 2월 8일 개성에서 금강산관광 재개문제 논의를 위한 실무회담이 열렸으나 변화는 없었다.

당시 북측의 후속접촉 제안에 남측은 "북측에서 진전된 입장을 가져오는 것이 중요하다"며 거부했다. 이때 남측은 국제기준의 합의를 요구했고, 북측이 구체적인 내용을 묻자 "그것은 북측 자체적으로 판단하라"는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담 두 달여 뒤인 3월 26일 천안함 사건이 터지면서 금강산관광 재개문제 등을 포함한 남북관계는 회복불능 상황에 빠져 버렸다. 4월 13일 북한은 금강산 내 이산가족면회소 등 남측 소유 5개 부동산에 대한 동결조치를 집행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현재 남북은, 류우익 통일부 장관이 "북한이 관광객의 신변안전을 확실히 보장하는 조치 등을 마련한다면 북한과 대화하고 관광재개도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하자, 북한은 "관광객 신변안전 문제는 우리가 남조선 현대그룹 회장(현정은)의 평양방문 기회에 최고의 수준에서 담보해 준 문제"라며 "이는 책임을 우리에게 넘겨씌우고 금강산 관광을 가로막은 저들의 대결적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해보기 위한 것"이라고 반박하는 설전을 반복하고 있다.

남북관계 전반의 개선없이 금강산관광 문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임을 보여준다.


#금강산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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