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은 '안녕하세요?'와 '빨리빨리'이다. 특히 '빨리빨리'는 이주노동자들만이 아니라, 한국 사람을 알고 지내는 외국인들은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표현이다.
'빨리빨리'는 부정적인 면에서는 한국인의 조급성을 나타낸다. 하지만 긍정적인 면에서는 한국인의 역동성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압축 성장 과정을 겪으며 우리는 '빨리빨리'라는 문화를 만들어 냈고, 이를 당연하게 여겨왔다. 그래서 느긋하게 살아왔던 이주노동자들이 처음 한국에 오면 '빨리빨리' 문화에 적응하는 데 애먹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사회에
'빨리빨리'를 요구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이주노동자의 권리는 어디로... 노조 설립 소송은 '대법원 최장기 계류사건'지난 5월 22일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가 대법원에 정보공개청구결과 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법원에서 최장기 계류 중인 행정소송은 2007년 2월 올라온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아래 이주노조) 설립 신고 반려처분 취소'소송이었다. 계류 기간만 5년 4개월이 넘는다. 이전 최장기 계류사건이었던 현대미포조선 해고노동자 김석진씨의 해고무효소송은 판결이 나오기까지 3년 4개월이 걸렸다. 이주노조 설립 관련 소송은 이보다 2년을 훌쩍 넘겼는데도 법원은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고 있다.
이주노조 설립 신고 반려처분 취소사건의 시작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은 지역별 노동조합인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을 설립하고, 서울지방고용노동청(아래 서울노동청)에 노동조합 설립 신고서를 제출하였으나 반려됐다. 이주노동자들은 이에 항의하며 2005년 4월 30일 서울노동청을 대상으로 행정소송을 청구했다.
서울노동청의 주장을 전적으로 받아들였던 1심과 달리 서울고등법원은 '불법 체류 중인 외국인이어도 우리나라에서 근로를 제공하면서 임금 등으로 생활한다면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는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즉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헌법상 노동3권의 주체가 된다고 판결을 내린 것이다.
서울노동청은 법원의 이같은 결정에 불복, 2007년 2월 23일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법원은 이 재판에 대해 아무런 판단을 내리지 않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에서 보듯, 법적인 면만 따지면 이주노조 설립을 취소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 법조계의 일반적인
의견인데도 말이다. 인권위도 이주노동자 문제에는 '빨리빨리' 대신 '꾸물꾸물'
문제는 법원만이 아니다. 지난 5월 말에 있었던 '재외동포 고충해소 합법화 조치로 인한 비동포 외국인에 대한 차별' 진정 건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은 '빨리빨리'가 사라진 인권위의 모습을 보여준다.
지난해 법무부는 2011년 1월 3일부터 6월 30일까지 10년 이상 국내에 불법 체류한 재외동포와 그 배우자, 직계 비속에게 시간제 취업이 가능한 일반연수(D-4)비자를 발급해줬다. '재외동포 고충해소'란 명분을 내세워 국내에 오랫동안 거주한 중국동포들이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었다.
그러나 인도적 목적의 정책을 재외동포만 대상으로 하는 것은 '외국인은 국제법과 조약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 지위가 보장된다'며 외국인 또한 헌법상 기본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한 헌법 제6조 2항에 어긋난다. '외국인은 국민과 유사한 지위에 있으므로 원칙적으로 기본권 주체성이 인정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과도 다르다. 이 때문에 이주노동자 560명은 '신청대상에서 제외된 비동포 이주노동자 등의 합법화와 차별 시정'을 요구하며 2011년 3월 21일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이날은 '세계 인종 차별 철폐의 날'이었다.
진정을 낼 당시 재외동포 합법화 조치가 시행 중이었던 만큼, 이주노동자들은 인권위가 이것을 긴급 사안으로 '빨리빨리' 다뤄주기를 기대했다. 시정 권고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합법화 기간인 6월이 지난다면, 법무부가 '다 지난 일이다. 차후에는 검토하도록 하겠다'는 식으로 유야무야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인들의 기대와는 달리, 인권위에는 '빨리빨리' 대신 '꾸물꾸물'만 있었다.
인권위는 일 년이 넘은 지난 4월 24일에야 "법무부 장관에게, 향후 인도적인 차원에서 외국인 대상의 출입국 관련 구제 등의 정책을 추진할 경우에는 비동포 외국인이 배제되어 차별받지 않도록 할 것을 권고한다"고 결정, 5월말 진정을 낸 사람들과 법무부에 결정문을 통보했다.
"한국정부·대법원이 이주노조활동 방해하고 있다" 법원 "미셸 카투이라 전 이주노조 위원장 비자취소·출국명령 정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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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지난 5월 24일 서울고등법원은 미셀 카투이라 전 이주노조 위원장의 비자 취소와 출국명령 처분에 관한 소송에서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의 비자 취소·출국명령은 적법하다'며 1심 판결을 뒤집어 관련 시민단체의 반발을 사고 있다.
소송을 대리했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7일 "법원이 이주노조 활동을 탄압하기 위한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의 의도를 간과했다"며 "이주노조와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외면하는 법원을 규탄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주노조는 지난 15일부터 '이주노조와 미셸 카투리아 전 이주노조 위원장에 대한 탄압 중단'을 요구하며 온라인 서명운동을 진행 중이다.
우다야(Udaya) 이주노조 비상대책위원장은 "미셸 전 이주노조 위원장은 이주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입국을 못하고 있다"며 "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입국을 막는 나라는 없다"고 비판했다.
"이주노동자는 누구나 노조 활동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그러한 권리를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당연한 권리 실현을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을 탄압하고, 합법적으로 노조활동을 하는 사람까지 입국을 못하게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미셸 동지는 G1비자(치료·소송 등을 이유로 3개월 이상 머물러야 할 때 내주는 비자)를 갖고 자진 출국했다가 입국하려 했지만 거부당했습니다. 이주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입국을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노조 활동했다는 이유만으로 입국을 못하게 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한국정부나 대법원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 노조 활동을 방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 정부의 의지에 달린 문제입니다. 하루 빨리 이주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인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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