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저녁 7시 반, 가톨릭청년회관에서 '85크레인과 비정규직의 사랑 노래'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사회를 맡은 변영주 감독은 "이 토크 콘서트의 제목에 '희망'이라는 말 대신 '사랑'이 쓰인 이유를 생각해봤다, 아마 제목을 지으신 분이 '희망'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첫 번째 순서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강연이었다.
그는 "새벽의 크레인은 막막했다, 이 곳이 바다 속인지 하늘 꼭대기인지 모를 정도였다, 죽은 것인지 산 것인지도 구분할 수 없었다"라고 크레인에서의 소회를 밝혔다. 좌중은 숙연해졌다.
하지만 곧 '5년만 더 크레인 위에 있어라'는 트위터 멘션에 '우리 교대하자'고 답장했다는 김 지도위원의 입담에 관객들의 웃음이 터졌다.
그는 해고당한 조합원들의 연봉을 모두 합치면 34억인데도 불구하고 60억 원을 들여 용역을 고용한 사측을 격앙된 목소리로 비판하기도 했다. 강연은 금세 막바지에 이르렀다. 그는 마지막 말을 남기며, 무대를 떠났다.
"저녁마다 기도를 해주는 생면부지의 사람들, 희망 버스를 타고 오는 사람들, 도대체 당신들은 어떤 사람들이기에 우리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주는가. 이 은혜를 꼭 갚아야겠다는 생각에 죽을 수 없었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받은 차별
'꽃다지'의 흥겨운 공연 뒤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일과 투쟁에 대해 말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김형우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 김순자 울산과기대 청소노동자, 송화선 청년유니온 조합원, 오수영 학습지노조 재능지부 노동자가 참석했다.
대화는 김형우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의 '비정규직 인생'을 듣는 것에서 시작했다. 그의 익살맞은 말투는 연신 관객의 웃음을 자아냈다. 사회자는 그에게 노조를 설립하게 된 이유를 물었다.
"비정규직인 줄 알고 들어갔으면서 왜! 난리냐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었던 불합리한 차별이 많았다. 비정규직은 휴식 시간에 써클룸이라고 하는 탈의실에 못 들어갔다. 작업이 끝나고 쉴 때도 의자에 앉지 못하게 했다.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동료들과 2년 정도 준비해 노동조합을 만들게 됐다."
'88만 원 세대'이자 대화 참가자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송화선 청년유니온 조합원은 자신이 방송국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받은 차별에 대해 말했다.
"방송국에서 파견직으로 근무할 때 잦은 성희롱으로 인해 인사부에 익명으로 신고했으나, 다음날 불려 갔던 것은 나였다. '미안하다, 됐냐?'는 사과를 받는 것에 그쳤다. 오히려 내가 주위의 수군거림을 들어야 했다. 같은 피해를 겪었던 정규직 직원들이 나를 보고 '비정규직이니까 잃을 게 없어서 신고했나 보지.'라고 하는 말을 직접 들었을 때 가장 슬펐다."
그가 청년유니온의 조합원이 된 이유도 파견직이기에 당한 불합리한 처우에서 비롯됐다. 일하고 있던 방송국에 생리 휴가를 신청했으나 인사부는 그에게 "당신은 우리 회사 직원이 아니다, 따라서 휴가 신청이 되지 않고 그날 무급 처리된다"고 통보했다. 방송국의 노동조합조차 정규직만을 위한 현실에 분노했던 무렵, 우연히 청년 세대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창립된 청년유니온을 접했고, 조합원으로 동참하게 됐다.
힘든 투쟁을 계속하는 이유
뒤이어 오수영 학습지노조 재능지부 노동자가 입을 뗀 순간 콘서트장 내부는 적막해졌다.
"재능교육 노조는 용역들에게 당한 수모를 한 번도 제대로 구술하거나 진술한 적이 없다. 10년도 넘게 일한 직장에서 그런 일을 당했다는 것이 너무나 부끄럽고 치욕스러워서다."
현재 재능교육 노조는 사측과 교섭 중이다. 노조는 사측이 용역을 동원해 저지른 일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사측은 용역을 고용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 중이다.
"교섭 테이블에서 내 맞은 편에 앉은 사람은 김현태 재능교육 경영기획실장이다. 1인 시위 중이던 내 머리채를 잡고 벽에 치며 얼굴에 침을 뱉었던 사람이다. 그는 여전히 노조가 진보적인 매체의 기자들을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실제 없었던 일을 기사화했다는 변명을 하고 있다."
사회자가 이 정도로 힘든 투쟁과 교섭을 왜 계속하는지에 대해 묻자, 그는 김진숙 지도위원을 언급했다.
"나 역시 이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더이상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다. 다른 직장의 비정규직 문제 역시 재능교육과 다르지 않다고 들었다. 재능교육 문제를 해결하고 '희망'을 이야기해보고 싶다."
19대 총선의 진보신당 비례대표 1번이기도 했던 김순자 울산과기대 청소노동자는 "학교에서는 처음에 내가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1번으로 나가는 줄 알고 대책회의를 하는 등 난리가 났다, 그런데 (덜 알려진) 진보신당이라는 얘기를 듣고 느슨해졌다고 들었다"고 말해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노조활동을 계속하는 이유를 그에게 물었다.
"내 문제를 스스로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아직 할 일이 많다."
4년 후에도 권유가 있으면 총선에 출마할 것이냐는 질문이 이어졌고, 그의 대답을 들은 관객들은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저 같은 사람이 (국회의원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됐으면 제일 좋겠다. 그러나 도움이 된다면 출마할 의사가 있다."
절실히 필요한 것은 연대
이후 '콜트콜텍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 밴드'의 공연이 이어졌다. 자신이 만든 기타를 들고 공연을 하는 그들의 모습을 관객들은 눈을 떼지 않고 지켜봤다. 그들은 정리해고 철회를 위해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농성 중이다. 사회자는 그들에게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연대입니다. 투쟁 현장에 찾아와 말 한마디를 걸어주는 것, 밥 한 끼를 같이 먹는 것이 가장 큰 힘이 됩니다."
'갈비 연대'와 '루시아'로 잘 알려진 박희경씨 역시 "어떤 일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분들을 종종 본다, 나의 주변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부터 찾아야 한다, 한 번이라도 현장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만큼 스스로에게 와 닿는 일은 없을 것이다, 글·방송 등 백 마디의 말보다 그들과 함께 밥을 먹고 말을 건네는 행위가 가장 소중하다"고 말했다.
'연대'라는 말에 담겨 진 '밥 한끼, 말 한 마디'라는 단순하고도 깊은 함의를 이미 알고 있던 사람들도, 이제야 알게 된 사람들도 모두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마지막 순서인 '허클베리 핀'의 공연을 즐겼다. 이렇게 '85크레인과 비정규직의 사랑 노래'는 '희망'이라는 단어에 대한 고민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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