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꽃 이름 물어봤다가...들에 핀 소국을 보면서 '온실 안 화초'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아무 어려움 없이 자란 이들을 비판할 때 자주 드는 비유입니다. 솔직히 온실 안 꽃은 생명이 질기지 못합니다. 요즘 같은 가뭄에 온실에서 자란 꽃에 물을 조금이라도 주지 않으면 금방 시들어 죽습니다. 하지만 들에 핀 꽃은 웬만한 가뭄에도 질긴 생명력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꽃 이름을 너무 모릅니다. 아내에게 꽃 이름을 물었습니다.
"여보 이 꽃 이름이 뭐예요?""많이 본 꽃인데 모르겠네요.""많이 본 꽃인데 이름을 몰라요?"
"그럼 '꽃박사'하고 결혼하지 왜 나하고 했어요!""….""아니 꽃 이름 좀 물어봤다고, 꽃박사하고 결혼하지 왜 나하고 결혼했느냐니. 그런 말이 어디있요?""어디 있긴 여기 있지요."
꽃 이름 물어봤다고. 물론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졸졸 따라 다니면서 꽃 이름을 물어봤으니 화가 날 만도 하죠. 날도 가물고, 더운데 말입니다. 하지만 아내에게 처음 듣는 말이라 충격이었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것 있으면 물어보면서 내가 묻는 것에 화를 내다니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화가 났지만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꽃 이름 모르는 내가 죄인일 수밖에.
이름 모를 꽃은 지천이었고, 생긴 모양이 꽃인지 풀인지 모르는 녀석들도 있었습니다. 어떤 녀석은 꼭 밤톨같이 생겼습니다. 가뭄 같은 악조건에서는 더 왕성한 것 같습니다. 사람 손길을 타는 곡식들은 가뭄에 메말라가지만 스스로 태어나고, 자라고, 피고, 지면서 이들은 질기고 질긴 생명을 지켜가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꽃은 지천인데 시골은 점점 사람냄새가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인정이 메말랐다는 것이 아니라 빈집이 여기저기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슴이 횅한 느낌입니다. 그 옛날 이 집도 사람이 북적거리고, 아이 울음소리가 온 동네에 우렁차게 들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소 먹을거리 볏짚 잠자리였고, 풀만 무성했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빈집은 하나둘씩 또 불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더 많은 시간이 지나면 한 동네가 다 사라질도 모릅니다. 그런 날이 오면 이 나라는 사람 사는 세상이 될 수 있을까요? 그럴 것 같지만 사람 하나 살지 않는 동네가 많아지면 질수록 사람 냄새는 사라질 것입니다.
바람은 저 빈집에 사람이 다시 들어와 북적북적거리면 좋겠습니다. 너도 살고, 나도 살는 세상은 우리 모두가 사는 세상입니다. 바로 살림세상이 되는 것이지요. 아내에게 꽃 이름 모른다고 타박을 들었지만 빈집에 사람이 다시 들어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횅한 가슴을 채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