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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들 좀 보세요, 지금 내 손에 들린 이것이 뭔지 아십니까?"

지금으로부터 62년 전인 1950년 2월, 위스콘신 출신 상원 의원 조셉 매카시는 웨스트 버지니아 휠링의 한 여성단체가 주최한 연설회에서 '괴문서'를 들고 호기롭게 외쳤다. 그가 손에 든 것은 소련 스파이 노릇을 하는 빨갱이 국무부 관리 205명의 명단이었다. '나비효과'를 불러온 불온한 역사의 서막은 이름없는 작은 동네에서 이렇게 시작되었다.

1,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소련과 미국이 세계 재편을 목적으로 치열한 세력전을 펼치고 있던 차에 소련 스파이 '빨갱이'가 미국 행정부의 심장부에 득실거리고 있다니... 두 번의 큰 전쟁에서 자식 잃고 남편 잃은 일반 미국민들에게는 경악할 일이었다.

매카시의 '빨갱이' 명단은 당시 미국 정치권은 물론이고, 언론계, 학계, 산업계, 예술계 등에까지 엄청난 회오리를 일으켰다. 이 회오리가 퍼져나간 경로를 보면, 어떤 국가적 위기의식 앞에서 '집단사고(集團思考)'가 어떤 경로를 통해 형성되고, 그 앞에서 개인이 얼마나 무기력하고 비이성적 존재가 되는지, 더 나아가 한 사회가 얼마나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게 되는지 알게 된다.

이같은 경로를 이해하기 위해 당시 상황을 좀더 풀어 보기로 하자.

괴이하게도 매카시가 말하던 '빨갱이' 혐의자들의 면면과 숫자는 시간이 지나며 오락가락 했고, 심지어 그 명단이 어떤 경위를 통해 작성되고 입수되었는지 확인조차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파장은 일파 만파로 번져가기만 했다.

극우 정치인들과 언론은 당시 경력 조작, 불법 금품수수, 음주추태, 명예훼손 등으로 위기에 몰려 있던 매카시의 정치적 속셈은 눈 감은 채 오로지 '폭로'에만 집중하여 부풀리기 시작했다. 매카시가 제시한 주요 인물들의 혐의 가운데 일부는 상원 조사관들에 의해 곧 사실무근으로 밝혀지기도 했지만, 맹목적 애국심에 충만해 있던 미국 사회의 분위기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증거'가 필요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빨갱이' 소동의 여파로 육군장관 로버트 스티븐스가 사임했는가 하면, 트루먼의 심복 애치슨 국무장관은 위험 인물 1호로 지목되었고, 40년대 원자폭탄 제조를 지휘한 오펜하이머 박사마저 스파이 혐의자로 몰려 처벌을 받았다. 오펜하이머의 '빨갱이 혐의'란 미국의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했다는 정도에 불과했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소규모 공구상 운영자 로젠버그 부부가 스파이 혐의로 검거되어 처형당했다.

'빨갱이' 사냥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른바 공직자의 사상을 검증한다며 1947년에 만들어진 '충성도 심사 프로그램(loyalty test)'을 가동하여 수많은 공무원과 교수들, 심지어는 연예인들까지 검거했다. 필자가 미국 대학원 시절 알고 지내던 전직 미국인 교수도 당시 충성도 심사프로그램에 의해 "빨갱이로 의심되는 동료의 명단을 적어 내라는 압력을 받았다"며 "극우적 공포 분위기가 미국을 휩쓸었다"고 실토한 적이 있었다.

부자 재산 빼앗은 로빈 후드는 '빨갱이'?

작곡가이며 지휘자인 레너드 번스타인과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유명한 극작가 아서 밀러, 시인이자 극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도 이때 곤욕을 치렀고, 디즈니 랜드 설립자 월트 디즈니는 동료를 고발하고서야 의혹의 눈길에서 벗어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도 빨갱이 딱지가 붙여져 스위스 등지에서 무려 20여년 동안 떠돌이 생활을 한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다. <에덴의 동쪽> 등 여러 명작으로 유명한 엘리야 카잔 감독도 한때 빨갱이 의혹을 받았다.

당시 '빨갱이' 사냥은 실존 인물을 넘어 문학 작품의 가상 인물까지도 그 대상에 올려졌다. 남녀노소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아왔던 소설 속 인물 '로빈 후드'가 '빨갱이'를 영웅화한 것이라는 기막힌 해석도 나왔다. 부자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준 로빈 후드의 행동은 마르크스 철학을 상징화한 것이란다.

광풍을 만난 세상, <말타의 배>로 잘 알려진 스타 험프리 보가트가 당시의 상황을 "(애)국가를 부르고 있는데 엉덩이를 긁적인 사람은 모두 빨갱이 혐의를 받았다"고 익살스럽게 묘사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말도 안될 것 같은 일이 당시엔 말이 되었고, 후세 사람들은 이때의 '빨갱이' 소동을 가리켜 '20세기 최대의 스캔들'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처럼 온 세상에 빨간 물을 뿌려대며 기세를 부리던 '빨갱이' 소동은 의외로 싱겁게 종막을 고하고 말았다. 붉은 세력을 막아낸다는 명분으로 치른 한국전쟁을 거치며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매카시가 이제는 미 군부까지 공격하다 오히려 덜미가 잡히게 된 것이다.

1954년 4월 TV로 생중계 된 가운데 열린 36일간의 '육군-매카시 청문회'는 그가 지목한 빨갱이들의 무혐의를 입증해낸 재판정이 되었다. 이에 앞서 3월 9일 매카시는 CBS의 전설적인 언론인 에드워드 머로우가 진행한 <시 잇 나우>(See It Now)라는 인기 토크 쇼에서 조목조목 비판을 받는 대 망신을 당한 터여서 청문회에 대한 미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었다.

당시 청문회를 시청한 미국인들에게는 두고 두고 회자되는 유명한 논쟁이 있다. 청문회 막바지에 벌어진 이른바 매카시-웰치 논쟁이다. 청문회가 열린지 30일째 되던 날, 매카시는 육군 내부에 빨갱이가 우글거리고 있다는 종래의 주장을 되풀이하며 이번엔 조셉 웰치 육군 법률고문에게 태클를 걸었다.

비미활동위원회(Committee on Un-American Activities)를 이끌고 있던 매카시는 웰치가 젊은 시절 '좌파' 법률 단체에서 활동한 적이 있는 프레드 피셔라는 변호사를 후원해 왔으니 웰치도 빨갱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분홍색도 주황색도 새빨간색으로 보였고, 젊은 시절 일도 오늘의 일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에 빠져 있던 매카시에게 피셔나 웰치나 모두가 빨갱이였던 것이다. 그는 청문회 내내 혐의자들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고함을 치거나 협박하는 태도로 일관해 동료 의원들과 일반 미국민들에게 의혹만 쌓고 있었다.

색맹환자의 광란극에서 깨어난 미국민들

그러나 웰치는 부드러우면서도 냉철하고 단호한 사람이었다. 거센 폭포수를 거꾸로 올라가는 한마리 물고기와 같았던 그의 반격은, 이미 석연찮은 느낌을 갖고 있었으나 워낙 광풍이 드셌던 터라 숨죽이고 있던 동료 의원들과 미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미스터 세네터(상원의원), 나는 당신이 새파란 젊은이에게 그런 상처를 줄 만큼 잔인한 사람이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가 당신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평생 짊어지고 살게 될 것을 생각하니 통탄스럽습니다. 나에게 당신의 잔인함을 용서할 권한이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것입니다. 나 스스로는 (당신을 용서할 수 있는) 신사라고 생각합니다만, 나 외에 다른이들로부터 용서를 받아야만 할 것입니다."

얼굴이 벌개지며 당황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한 매카시에게 반박할 틈을 주지 않고 웰치는 다시 속사포처럼 퍼부었다.

"미스터 매카시, 정치적 살인행위를 그만 중단하지 않으시렵니까? 당신은 할 만큼 했습니다. 당신은 인간에 대한 예의도 없습니까? 도대체 당신에겐 인간에 대한 센스가 남아 있지 않다는 겁니까? 신의 존재를 가정한다면, 당신도, 당신이 내세운 명분도 선하다고 생각하기 힘듭니다. 이제부턴 더이상 당신을 상대하고 싶지 않습니다."

매카시가 우물우물 뭐라고 반박하려 들었으나 그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뚜벅뚜벅 회의장을 걸어 나갔다.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전 미국을 수 년 동안 불안과 공포, 불신 속에 잠기게 했던 '괴물'의 면전에 대고 속시원한 소리를 내뱉은 신사에게 보내는 기꺼운 지지의 박수였다.

그간 청문회 현장을 생중계로 지켜보았던 미국민들도 막판에 벼락같은 결정타를 가한 웰치에게 박수를 보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청문회 기간 동안 간첩으로 지목한 159명 가운데 '의혹'이 있는 사람은 '우연에 의해서도 일어날 수준'인 단 9명에 불과했다는 것이 역사비평가들의 해석이다.

매카시는 청문회에서 자신의 병역 조작과 여러건의 개인 비리까지 밝혀져 되려 탄핵을 당했고, 그 충격 때문이었는지 3년 뒤인 1957년 알코올 중독으로 세상을 하직했다.

한마디로, 50년대 매카시 광풍은 과거를 숨기고 정치적 야망에 들떠있던 알코올 중독자이자 '색맹' 환자가 엮어낸 막장 드라마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선동성 강한 이 드라마는 시류를 탄 언론의 '협조'로 마녀사냥식 집단사고(集團思考)를 만들어 냈고, 이 집단사고는 개인들의 유기적 집합체인 사회를 엉뚱한 방향으로 뒤틀며 광란의 역사를 만들어 냈다.
21세기 한국 땅에 환생한 매카시

최근 우리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종북, 좌파' 논쟁은 60여년 전 미국 땅에서 벌어진 빨갱이 논쟁과 흡사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어서 혀를 내두르게 한다. 특히 새누리당 군출신 한기호 의원의 주장을 보고 있노라면 매카시가 한국땅에서 환생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한 의원은 지난 8일 '천주교 박해 당시 십자가를 밟도록 해서 신자 여부를 가려낸 것처럼 북한에 관한 질문으로 종북 국회의원들을 가려 낼 수 있다'며 "지금 (야당 국회의원) 30명 정도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전력자들"이며 "이들이 사면 복권됐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전향 여부를 (이런 질문을 통해)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단다. 그는 "북핵 문제, 3대 세습, 주한미군철수, 천안함.연평도 사건 등의 문제에 질문을 하면 답이 나올 것"이라고 구체적 사상검증 방법까지도 제안했다고 한다.

이를 테면, 한 의원은 "북핵을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 "북한의 3대 세습을 비판하는가 아니면 침묵하는가" "주한미군철수를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임을 믿는가 안 믿는가" 따위의 질문을 통해 '빨갱이'를 가려 내겠다는 것이다. '수소폭탄 개발에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 같은 질문을 던져 찬성하면 애국자요, 반대하면 빨갱이로 낙인을 찍던 '충성도 심사 프로그램'의 발상과 너무도 흡사하지 않은가? 그것의 맹목성, 비 합리성, 정치적 포퓰리즘, 집단광기가 한데 어우러져 있다는 점에서 빼다 박은 것처럼 닮았다면 어폐가 있을까.

 시장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새누리당 한기호 후보. (자료사진)
시장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새누리당 한기호 후보. (자료사진) ⓒ 성낙선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헌법 아래에서 한 나라의 국회의원이란 사람이 '국민들의 머릿속을 뒤져서 처벌하겠다'는 식의 유치한 의식수준을 갖고 있다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고, '십자가 밟기'를 들먹인 발상 자체도 끔찍하기만 하다. '십자가 밟기'는 조선시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한 의원이 그렇게도 싫어할 인민군이 한국전쟁시 사용했다는 기독교계의 기록을 한 의원은 읽었는지 모르겠다. 밟으면 우리 편이니 살려주고, 안 밟으면 저쪽 편이니 죽이고.

'십자가 밟기' 주장에 이어 최근 벌어지고 있는 애국가 논쟁을 보고 있노라면 오래전 미국 땅에서 던져진 험프로 보가트의 '농담'이 60여 년 후 우리 땅에서 진담으로 통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여서 쓴웃음이 나온다. 통진당 이석기 의원을 몰아세우고 있는 측들은 '애국가를 국가로 인정하면 우리 편인데, 국가가 아니(아닐 수도 있다)라고 주장했으니 넌 종북 빨갱이다!'는 논지를 펴고 있는 듯하다.

이러다가 어느날부터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데 부동자세로 오른손을 가슴에 얹으면 자유대한민국의 국민이고, 한눈 팔고 딴짓하면 종북 빨갱이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시간문제이겠다. 일각에서 성문법이라기 보다는 관습법 정도의 근거를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애국가, 오래전부터 일부 보수 종교단체에서는 우상숭배라며 거부하던 애국가, "하나(느)님이 보우하사..."라는 노랫말이 특정종교 색채를 드러낸다며 비판 받던 애국가. 그런데 이제와서 털끝하나 건드려도 종북 빨갱이로 매도될 시대가 도래하고 있으니... 험프리 보가트가 지하에서 '껄껄껄' 웃지 않을까.

뭐, 유명 대학 '빠콩' 총장이라는 분이 민주화-노동-통일운동을 하는 대학생들을 싸잡아 '한국 대학생 가운데 수만 명이 주사파'라고 하던 때도 있었고, '창발적'이라는 북한 용어(?)를 썼다하여 사상검증을 요구 받은 통일 부총리도 있었고, '모택동이 중국 인민의 밥을 먹여 주었다'는 서술로 빨갱이로 찍힌 교수도 있었고... 정치적 시류에 따라 크고 작은 좌빨 논쟁이 일었으니, 작금의 '종북, 빨갱이' 논쟁이 전혀 세로울 것은 없겠다. 그러나 적어도 10년여의 민주시대를 경험한 마당에 아직도 이같은 단세포적인 마녀사냥식 여론몰이에 불을 지피고 편승하는 대통령,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들과 그 아류들, 그리고 이들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있는 세력들이 있다는 것에 절망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우리 땅에 조셉 웰치같은 인물은 없는가?

현재 걸핏하면 종북 타령을 하고 있는 한국의 정치권 인사들 조차도 한때는 "보다 많은 대화, 보다 많은 접촉, 보다 많은 협력"을 내세운 정부의 대북 정책에 따라 북한을 드나들고, 북한의 '스타' 위원장을 비롯한 막료들과 술잔을 부딪치며 '종북'을 하던 때가 엊그제였으니 상당수의 국민들이 어리둥절하고 혼란스런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 이겠다. 이들 가운데는 북한을 드나들면서 '남북의 서로 좋은 것들을 교환하고, 본받을 것은 본받고 배우자'는 종북적 태도로 남북교류를 추진해 오던 인사들도 있었던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예나 지금이나 매우 흥미로운 것은, 종북논쟁을 일으키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매카시처럼 뒤가 구린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친일파, 쿠테타 세력, 독재 권력에 깊은 관련이 있거나, 윤리적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아온 인사들의 면면과 그들의 삶의 궤적을 살펴 보라. 잠시 '자중자애'의 제스처를 취하며 눈치를 보다 망각이 미덕이 될 만한 시간이 흘렀다 싶으면 여지없이 "누구누구는 종북이고 빨갱이며, 여기저기에 주사파가 널려있다"는 식의 옛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아아, 60여년 전 미국 땅에서 태생한 매카시즘이 '불후의 명곡'이 아니라는 것이 판명 난지가 어제 오늘이 아니거늘, 우리 땅에서만은 오랫동안 애지중지 여겨질지 누군들 상상이나 했겠는가. 슬슬 눈치나 보며 연말 '빅샷'을 앞두고 머릿속 계산을 하기에 바쁜 정치꾼들이 널려있는 하수상한 시절, 대한민국에 환생한 매카시와 그 아류들을 향해 시원한 한방을 날려줄 조셉 웰치 같은 인물이 우리 땅에는 없는가?

덧붙이는 글 | 플로리다 코리아위클리에도 올려졌습니다.



#매카시#매카시즘#빨갱이#애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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