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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냐 물이냐. 2005년 중국의 한 한국인학교에서 근무하던 나는 일주일 뒤인 10월 국경절에 떠날 여행지를 두고 동행자들과 며칠째 씨름 중이었다. 동행자는 동갑내기 동료 교사 Y와 유학차 당시 중국에 와 있던 현 남편이자 당시 남자친구인 J. 그런데 내가 열세였다. Y와 J는 계림으로 산 보러 가자는 데 일치했고 나 혼자 쓰촨성의 구채구를 고집하고 있었다.

"영화 <영웅>에 나온 그 절경,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지 않아? 호수가 하도 투명해서 아무리 깊어도 속이 다 들여다보인다잖아. 그리고 계림에 비해 구채구는 한국 사람들이 잘 몰라. 그런 데를 가야지 뭔가 있어 보이지 않겠어?"

별별 이유를 다 들어 꼬셔봐도 둘 다 쉽사리 넘어오질 않았다. 결국 나는 "누구 남자친구인지 잘 생각하고 입장을 정하라"며 J를 협박해 다수를 확보하는 비겁한 방법으로 구채구 여행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치사하다며 입을 비쭉거리는 Y에겐 미안했지만 나는 사실 절경 이상의 이유로 구채구에 가고 싶었다.

흑백 자료화면 속, 해방을 기뻐하는 장족들

 '티벳 자치주 성립 40주년 기념' 방송이 방영되던 중국의 CCTV
'티벳 자치주 성립 40주년 기념' 방송이 방영되던 중국의 CCTV ⓒ 박은선

9월 1일 저녁, 중국어 공부 한답시고 TV를 틀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던 나는 한 채널에 시선이 꽂혔다. 인민복을 입은 군인들이 행렬하고 그 곁에서 전통의상을 입은 소수민족들이 눈물까지 흘리며 박수를 치는 낡은 흑백 영상이었다. 이어서 산기슭 높다란 곳에 위치한 하얀 궁전의 모습이 비춰졌다. '빠딸라이궁'이라는 중국인 아나운서의 발음을 듣고서야 그곳이 포탈라궁이며 눈물 흘리며 기뻐하는 이들이 티베트 소수민족인 장족들임을 알았다.

흑백 자료화면이 끝나자 박수 치던 이들의 후손일 장족들의 전통춤과 노래가 어어졌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장족 여자아이는 흰 천(장족들에겐 환영의 표시로 흰 천을 목에 걸어주는 풍습이 있다)을 높이 쳐든 채 청아한 목소리로 "우리를 해방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노래를 불렀다.

한참을 아나운서의 해설에 집중한 뒤 나는 그날이 '티베트자치주 성립 40주년 기념일'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기념일 방송은 오래전 보았던 <티베트에서의 7년>이란 영화의 영향 때문일까 도무지 믿어지질 않았다.

'인민군이 포탈라궁에 들어설 때 정말 당시의 장족들은 기쁨의 박수를 쳤던 걸까? 해방되어 기쁘다며 한어로 노래하는 현재의 저 장족들은 정말 진심으로 웃고 있는 걸까? 정말 그럴까?'

그때부터 나는 궁금해졌다. 장족들의 생각과 삶이. 포탈라궁 앞에 세워진 웅장한 중국식 건물, 그리고 그 건물 위의 붉은 별을 보며 나는 한 번이라도 한 명이라도 장족을 만나보고 싶었다. 하지만 단 며칠간 티베트까지 다녀오기는 무리인 터라 궁여지책으로 상대적으로 가까운 쓰촨성의 장족 자치주를 국경절 여행지로 골랐던 거다.

장족 자치주 중 구채구는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하니, '무슨 학술 연구하러 갈 일 있느냐'며 여행을 위한 여행지를 고집하는 Y와 J를 꼬시기에 이만한 곳이 없었다.

지주와 투쟁하는 쓰촨성의 장족 청년들

중국민항을 타고 내린 곳은 쓰촨성의 수도 청두였다. 버스를 타고 구채구에 가기에 앞서 우리는 하루 동안 청두의 명소들을 들르기로 했다.

발톱 하나가 내 키보다 큰 어마어마한 규모의 낙산대불과 문화혁명의 여파로 모가지가 잘려나간 작은 불상들이 있던 낙산, 도무지 낯가릴 줄 모르는 원숭이들의 습격을 받던 아미산 등 청두에는 볼거리, 즐길 거리가 많았다. 또 짜장라면 '사천짜장'이 왜 매운 맛인지 단박에 이해될 만큼 혀가 아리고 눈물 쏙 빠지도록 매운 쓰촨 음식들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청두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장족 대학생들과의 만남이었다.

아미산을 내려오던 중 계곡 부근에서 카드놀이를 하는 청년들을 만났다. 우리에게 '고스톱'이 있다면 중국인들에겐 '홍스'가 있다. 홍스(紅十)는 10이 쓰인 다이아나 하트의 빨간색 카드를 활용한 카드놀이다. 나는 홍스를 중국동포(조선족) 친구에게서 배운 일이 있어 다짜고짜 다가가 "워 커 능 홍스, 이취 이취!(저 홍스 할 줄 알아요, 함께 함께!)" 하며 문법도 안 맞고 성조도 엉망인 중국어로 말을 걸었다.

다행히 청도대학에 다닌다는 장족 청년들은 그런 나를 재밌어하며 카드놀이에 끼워주었다. 그런데 막상 게임을 시작하자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내가 아는 홍스의 규칙이 아니었다. 이유를 묻자 이들은 "이 게임은 홍스가 아니라 또띠주"라고 했다.

"홍스와 달리 빨간색 카드를 하나만 활용해서 게임을 하는데, 그 카드를 가진 사람이 띠주(지주)가 되고 나머지는 농민이 되요. 농민들이 단결해서 띠주를 공격하는 게 게임의 룰이죠."

마오쩌둥의 군대... '침략'이었을까 '해방'이었을까

 발톱 하나가 나보다 크던 낙산대불.
발톱 하나가 나보다 크던 낙산대불. ⓒ 박은선
아,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게임의 이름인가. '또띠주(斗地主)'는 '지주와 투쟁한다'는 의미다. 이들은 붉은 카드를 쥔 이를 나머지 사람들이 단결해 공격하면서 게임의 이름 그대로 지주와 투쟁하고 있었던 거다.

"게임이 너무 무시무시한데요?"
"지주들이 더 무시무시했죠. 공산당이 우릴 해방시켜 다행이지. 그러고 보니 요즘이 우리가 해방된 국경절이네요."

뭔가 뿌듯한 웃음을 가득 머금은 장족 청년의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공산당의 침략'을 받아 고유의 행복한 삶을 침해받은 아픔 가득할 것이라 생각하고 이곳에 왔거늘 이들은 전혀 다른 얘길 하고 있었다.

아미산을 내려오면서 사천 지역이 우리의 호남 지역과 닮은꼴이란 생각이 들었다. 붉디붉은 흙색도 닮았고 더운 날씨에 음식이 상하지 않도록 양념을 강하게 하는 것도 비슷하다. 그리고 넓고 비옥한 평야도 닮았다.

그렇다면 대토지를 소유한 지주와 피땀 흘리며 설움 속에 살던 소작농들의 삶도 닮은꼴이었을 터, 전라도의 민중의식이 남다른 만큼 어쩌면 이곳 사천 지역의 장족들도 계급사회가 끝이 나길 바라고 또 바라지 않았을까? 그런 이유로 마오쩌둥(모택동)의 군대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 장족들은 그것을 정말 '침략'이 아닌 '해방'으로 환영하진 않았을까?

이번 여행의 노른자인 구채구행 새벽 버스를 예매해 놓고도 나는 그날 밤 이 생각 저 생각에 헷갈려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덧붙이는 글 | '여행사연 쓰고 공정여행 가자!' 응모 글



#구채구#쓰촨성#장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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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사회과 교사였고, 로스쿨생이었으며, 현재 [법률사무소 이유] 변호사입니다. 무엇보다 초등학생 남매둥이의 '엄마'입니다. 모든 이들의 교육받을 권리, 행복할 권리를 위한 '교육혁명'을 꿈꿉니다. 그것을 위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글을 씁니다. (제보는 쪽지나 yoolawfi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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