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날이 무덥다. 저녁께가 되었는데도 지하철역 안까지 더위가 밀려들어온다. 1호선 갈산역 세븐일레븐 앞에서 얼굴이 둥그런 남자가 '최저임금 인상'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여기 근처에 문 닫은 기타공장 어딨는지 아세요?"라고 묻자 그 분은 "콜트 말이죠? 이쪽으로 나가 쭈욱 걸어가 오른쪽으로요"라고 자세히 알려준다. 고맙다고 몸을 꾸벅 숙이고 기타 공장으로 향했다. 세계인이 좋아하는 기타, 콜트사의 기타. 그 중 비싼 물건은 몇백 만원은 거뜬히 호가하는 그런 꿈의 기타가 만들어지던 부평과 대전 계룡의 공장. 그곳에는 더 이상 기타도 근로자도 없다.
2007년 사측은 적자를 이유로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그때부터 해고된 노동자들은 1000일이 훌쩍 넘도록 복직 투쟁을 전개해왔다.
2009년에는 인천지법에서 부당해고 판결을 내렸다. 다시 기타를 만들 날이 눈앞에 다가오는 듯했다. 예전처럼
화공약품과 분진에 노출될 테지만 노동할 수만 있다면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도 여전히 상황은 같다.
1974일째의 문화제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홍대의 라이브클럽이 아닌 부평의 전자기타 생산라인에서 진행되었다. "이쪽(공장)에 해고 노동자들이 없는 틈을 이용해 계속 사측에서는 (공장을) 허물려 합니다." 대전의 통기타 공장에서 일했던
임재춘씨의 말이다. 지난 16일 새벽 6시 30분경 80여 명의 용역들은 공장을 헐기 위해 포크레인을 동원, 공장을 에워쌌다. 공장 안에는 해고된 조합원을 포함해 6명만이 있었다. 민주노동자연대 활동가 김랑희씨는 "다행히 폭력 사태는 없었다"고 했다.
스마트 폰의 구글 지도로 부평의 콜트기타 공장을 검색해보면 '완전 폐쇄상태'라는 글자가 나온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텅 빈 작업실 밖의 후덥지근한 공터에서 노랫소리가 들린다
. "이씨, 네가 시키는 대로 당할 줄 아나... 박씨(박영호 콜트악기 사장을 지칭) 네가 시키는 대로 내가 당할 줄 아나..."
공연은 삼군, 이진호씨에 이어 깜짝 게스트 미류씨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마지막 순서는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 밴드'인 콜밴, 콜트콜텍 밴드의 퍼포먼스였다. 킹스턴 루디스카가 먼저 '기타를 만드는 사람들의 밴드(를 만드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다고 한다. 콜밴은 일 년 전부터 악기를 배워 틈틈이 합주를 해왔다. 오늘 동영상 촬영을 맡으신 분에 따르면 "처음엔 정말 아니었는데... 용 됐다". 연주 실력이 늘은 건 좋은데, 콜밴이 벌써 일 년이 넘게 합주를 해오다니. 요즘 말로
'웃프(웃기고 슬프)'다.콜밴의 첫곡은 '땡벌'이었다. 관객들은 "난 이제 지쳤어요, 기다리다 지쳤어요" 라는 노래의 후렴구를 같이 따라했다. '콜밴'은 곧이어 '나 어떡해'를, 마지막 곡으로는 '사노라면'을 개사해 '해고된 노동자에게도 태양은 뜬다'는 자신들의 희망이 담긴 노래를 불렀다.
2000일이 머지 않았다. 다가오는 7월 15일부터 25일은 2000일 주간이다. "그 주간에 복직을 위한 문화제를 하는 대신 출퇴근을 했으면 좋겠다." 조합원들의 말이다. 공연에 참석한 '삼군'은 "복직이 되면 뮤지션, 이웃 주민들과 함께
자신들이 만든 기타로 노래를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인근 조합원은 "RATM(해외의 유명 록밴드) 보컬도 (기타는) 착취의 도구가 아닌 해방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며 웃었다. 이들에게는 김윤아가 부른 'Going home'의 가사가 기가 막히게 어울린다. '가장 간절하게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해 본다, 너에겐 자격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