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수정 : 3일 오후 1시 28분]지난 6월 22일 새사연과 참여연대, 민변, 민주노총을 포함한 각계의 단체들이 연대하여 '경제 민주화와 재벌개혁을 위한 시민연대'(이하 경제 민주화 시민연대) 준비조직을 만들었다.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가 논쟁의 장에서 실천의 장으로, 개별적 저항에서 연대운동으로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시민연대의 명칭에서나 결성 취지문에서 나타나듯이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는 항상 함께 붙어 다니고 있다. '경제 민주화와 재벌개혁을 위한 시민연대'의 약칭을 '재벌개혁 시민연대'로 할 것인가 아니면 '경제 민주화 시민연대'로 할 것인가를 두고 약간의 토론도 있었다. 보다 포괄범위가 확장된 경제 민주화 시민연대로 어렵지 않게 약칭을 정했지만 그 안에 재벌개혁이 전제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경제 민주화와 재벌개혁은 어떤 상관관계에 있을까? 더 나아가 재벌개혁을 강조하지 않은 채 경제 민주화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일까?
불평등에 저항한 전 세계 점령운동외환위기 이후 15년 만에 재벌개혁 요구를 다시 우리사회의 가장 중요한 의제로 등장 시킨 계기는 글로벌 경제위기와 이로 인한 불평등의 심화였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재벌개혁 경제 민주화운동은 2011년 카이로에서 월가까지 세계를 휩쓸었던 점령운동의 맥락과 닿아 있다. 그런데 일부에서 이런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상하게 우리나라에서는 '점령하라' 운동이 왜곡되어 전개되었다. '1퍼센트에 맞서는 99퍼센트의 운동'이 투기적인 세계 금융 자본과 재테크 자본시장에 대한 비판의 맥락에서 전개된 것이 아니라, 반재벌 운동의 맥락에서 전개된 것이다."(정승일 외, "진보의 탈을 쓴 신자유주의자를 고발한다." 프레시안, 2012. 4.20)우선 이러한 문제제기부터 풀어보도록 하자.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그동안 감춰졌던 불평의 세계화가 수면으로 부상하고 이것이 곧 저항의 세계화로 전환되었다. 그 상황에서 세계적인 분노의 대상이 월가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금융자본인 것은 맞다. 그러면 한국에서도 여의도 증권가 자본이 우리 국민의 분노의 대상이고 99%가 저항해야 할 1%인가? 아니다.
재벌을 향한 분노는 왜곡된 점령운동이다?우리 연구원은 한국에서 점령운동 시위를 하기 전인 2011년 10월 초, 아예 의도적으로 운동을 왜곡할 목적의 주장을 했다. 한국에서는 월가점령운동을 도식적으로 모방하여 여의도 증권가 앞에서 시위를 하면 안 되고 삼성과 같은 재벌 대기업 집단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 경제에서 '너무 커서 존재해서는 안 되는 존재'는 누구인가. 바로 삼성, 현대, SK, LG로 대표되는 재벌 대기업 집단이다. 삼성과 현대 그룹의 공식적인 자산 총액은 한 해 국가 예산규모를 상회하는 330조 원이 넘는다. SK와 LG까지를 포함하는 4대그룹의 작년 매출액 603조 원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 규모의 절반을 웃돈다. 이들은 금융위기 이후에도 그 규모를 계속 키워서 2007년 대비 계열사 수자가 최소 30%이상 늘어났다.
현재 삼성그룹이 78개, 현대 그룹이 63개, 그리고 SK그룹이 86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너무 커져서 파산시킬 수 없을 지경이 아닌가. 더욱이 이들은 과거처럼 정권의 눈치나 보는 위약한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정권에게 훈수를 두고 여의도 국회에 촘촘하게 로비를 하며 자사 싱크탱크를 동원하여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낼 능력까지 보유하게 되었다. 미국의 월가가 그런 것처럼 진정한 실세로서 권력을 쥐게 된 것이다.
한국경제 불평등, 불공정의 뿌리는 재벌그런데 이들은 삼성의 스마트폰 선전의 예로 알 수 있듯이 월가와 달리 부단한 기술혁신과 경쟁력 강화로 얻은 대가이고 때문에 비난받을 수 없는 것인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미 올해 상반기에 크게 공론화된 것처럼, 하청기업에 대한 부당한 납품단가 인하, 골목상권이나 MRO사업 등에 이르기까지 무분별한 시장 잠식, 통신과 유류를 포함한 각종 독과점 가격 등을 통한 이익추구가 대기업 현금창고를 채우는데 기여했던 것이다. 또한 경제위기 와중에 정부의 규제완화, 감세, 고환율 정책의 지원을 받아 수익행진을 구가했음도 주지의 사실이다.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고용불안과 경제적 불평등, 불공정의 뿌리이자 부를 독점하는 1%가 있다면 당연히 그 맨 앞자리에 재벌 대기업 집단이 있어야 한다. '부유한 월가와 가난한 미국 국민'이 있다면 '부자 삼성과 가난한 한국 국민'이 우리 앞에 있는 냉엄한 현실인 것이다. 시위에 참여한 미국 시민들이 '월가에게 금융규제를, 증세를, 사법처리를' 구호로 내걸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재벌 대기업 집단에게 규제를, 증세를 해야 하고 불법적인 증여 상속 등에 대해 법의 엄정한 집행을 해야 한다. 한국에서도 99% 국민운동이 번질 조짐이다. 99%를 환영한다. 당사자의 행동이야말로 진정한 변화를 열어갈 최후의 대안이기 때문이다. 99% 한국 국민이 저항해야 할 1%는 재벌 대기업집단이며 요구해야 할 핵심구호는 재벌개혁이다.
이스라엘 시민들도 재벌에 분노했다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런 '왜곡'은 우리나라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스라엘 시민들도 2011년 저항운동의 칼끝을 자국의 재벌을 향해 겨눴다. 그리고 그 결과 2012년 4월 정부가 실질적인 재벌 쪼개기 조치를 취하도록 만들었다.
2011년 8월 700만 인구의 이스라엘에서 30만 명이 거리로 나왔던 전무후무한 시위가 있었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우리의 경우처럼 이스라엘도 아랍권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정도 시위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시위의 발단은 주택 값이 너무 올라 시작된 텐트시위였으니, 정확히 지난해의 세계적인 저항운동의 궤도 위에 있었던 시위이다.
튀니지나 아랍의 경우 치솟는 물가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서민들이 시위를 일으켰다. 이스라엘의 경우 유사하기는 하지만 약간 다른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의 물가는 4%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이집트의 작년 물가 상승률이 13%이었고, 인도가 6.8%, 중국이 5.4%, 그리고 우리나라 4.0%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소비자 물가 상승이 이스라엘 국민을 거리로 나오게 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렇다면 남유럽처럼 실업이 심각한가? 아니다. 실업률도 경제위기 초기에 7% 수준에서 작년에 5.6%로 낮아지면서 완화되고 있는 중이다. 최근 유로 지역 실업률이 10%를 돌파하고 스페인은 20%를 훌쩍 넘어간 것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그러면 부채와 재정 상태는 어떤가? 국가총부채는 GDP의 74% 정도이고 재정적자 규모도 -4% 전후여서 그 자체만으로는 유럽 국가들에 비해 심각하다고 할 만하지 않다.
이스라엘 재벌의 독점이 불평등과 물가상승 초래그러면 이스라엘 시민을 분노하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나? 역시 핵심은 불평등이었다. OECD국가들 가운데 이스라엘보다 불평등 정도가 높은 국가는 4개국 밖에 없을 정도로 이스라엘의 불평등은 심각하다. 2008년 기준 이스라엘의 지니계수는 0.39인데, 유럽 연합이 0.30 전후이고 우리나라도 0.31내외인 것을 감안하면 3만 달러 국가치고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불평등 정도를 기록하고 있다.
2000년대 초에 0.35에서 빠르게 악화된 것이다. 이러한 불평등의 결과 2008년 기준 빈곤선 이하의 가구가 무려 24%였으며, 상당 가구가 소득으로 식료품과 주거, 교육과 건강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현실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것이 바로 2011년 8월의 이스라엘 시위였다.
심각한 불평등 구조가 계속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약간의 추가적인 물가 인상이나 소득정체도 곧바로 생활의 타격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불평등과 물가 부담의 본원적 원인이 독점적 재벌(monopolistic conglomerates)이 경제를 통제하여 독점가격을 매기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스라엘 시민들의 판단이었던 것이다.
최근 우리 국민들이 높은 석유가격은 독점재벌의 독점가격 때문이고, 높은 통신비는 통신재벌들의 독과점 가격 때문이라는 생각을 갖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덧붙이면 이와 동시에 이스라엘의 과도한 군사비 때문에 교육과 보건의 공적 지출 비중이 구조적으로 적어 사회보장 시스템이 취약했던 것도 한 몫을 했다.
신자유주의의 구체적인 모습은 국가마다 다르다규제 풀린 금융시스템이 붕괴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세계경제를 장기침체로 몰아넣고 소득 불평등의 강도가 커지면서 전 세계 시민들이 곳곳에서 저항운동을 시작했다. 논리적으로 이들에게 공통의 분노의 대상은 월가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금융자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일으킨 장본인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형태는 국가마다 다르다. 신자유주의가 착근된 형태가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해외자본이 좌우하는 금융시장과 재벌 대기업집단이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실물시장으로 이중화 되어있는 특징이 있다. 때문에 한국경제의 구조개혁도 한편에서는 금융시장에서의 대외충격을 줄이기 위한 '자본통제'와, 다른 편에서는 실물시장에서 재벌의 독점 횡포를 억제하기 위한 '재벌개혁'이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금융통제와 양극화 해소는 민주적 대안의 길에서 같이 가야 할 두 바퀴 친구가 되어야 한다.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는 금융통제 없이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이병천 참여사회연구소 소장의 지적을 새길 필요가 있다.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에 대한 세 가지 의견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서 최근 세 가지 갈래의 의견들이 있다. 첫째 의견은 새누리당에서 대변해 주었다. 지난 6월 5일 새누리당 경제 민주화 실천모임에서 이혜훈 최고위원이 6쪽 자리 발표 자료를 통해 "재벌개혁은 경제 민주화를 위한 선결조건"이라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는 힘의 균형과 견제인데 재벌의 경제력 집중은 이러한 힘의 균형과 견제의 원리가 원천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게 막아 힘의 남용을 초래한다." "정치권력이 집중되면 독재의 폐해가, 시장 점유율이 집중되면 독점의 폐해가 나타난다." "경제의 영역에서 민주화를 달성하기 위한 경제 민주화는 이러한 민주주의 원리가 작동되지 못하게 하는 재벌의 문제점을 고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혜훈 최고위원의 주장은 가장 상식적이면서도 정당한 주장이다. 이런 주장을 개인 이혜훈이 아닌 전체 새누리당이 얼마나 수용하고 지속시킬지는 일단 지켜보도록 하자.
그러면 두 번째로, 당사자인 재벌들의 생각은 어떨까? 전경련 역시 경제 민주화의 칼끝이 자신들에게 향해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무리해서 회피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다만 규제를 할 때는 법률에 근거해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신석훈 연구원은 "최근 정치권에서는 대 중소기업 간 양극화 해소를 위해 '재벌 구조의 경제 민주화'와 '재벌과 중소기업 간 경제 민주화'를 강조하며 다양한 정책들을 제시하고" 있다면서, "사전적인 행정규제 중심의 대 중소기업 간 양극화 해소 정책들을, 되도록 사후적인 사법적 구제강화 정책들로 개선해 나가는 것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소비자 등의 이익에 부합하는 헌법 합치적 양극화 해소방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재벌과 투기자본 중 하나를 '선택'하라니?세 번째 의견은 앞서 보았듯이 한국의 점령운동이 재벌을 향한 것이 '왜곡'이라면서 경제 민주화 운동이 필요하다면 그 핵심 문제제기 대상은 재벌보다는 투기자본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마치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실세가 미국인가 군부독재인가 하는 오래된 논쟁을 연상시킨다. 물론 우리나라 주요 재벌기업은 과거 군부정권과는 차원이 다르게, 국내자본이 아니라 이미 글로벌 플레이어인 점은 확연히 다르지만 말이다.
더 나아가서 한국경제의 진정한 개혁대상은 재벌이 아니라 금융자본이고, 재벌을 개혁한다고 재벌 기업 집단의 지배구조를 잘못 손대면 자본시장에서 외국 금융자본에게 소유권이 넘어갈 수 있다고 우려하는 주장도 있다. 특히 최근 경제 환경과 연관지어 "세계 금융시장의 대혼란과 훨씬 심각해질 국내외 경제상황을 고려할 때, 가장 시급한 것은 금산분리 등 재벌개혁이 아니라 외환금융시장 안정화 방안과 함께 외환금융시장에 대한 강력한 재규제 방안의 마련이다. 또한 대공황 수준으로 경제가 추락할 것을 대비해 수천만 시민의 생계를 안정화시킬 사회안전망의 대폭 확충 역시 시급한 과제"라는 것이다.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는 독재타도와 정치 민주화의 관계그런데 사실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는 독재타도와 정치 민주화의 관계만큼이나 명확한 것이다. 독재정권을 무너뜨린다고 해서 정치적 민주주의가 완성될 리가 없다. 무너진 독재정권 위에 세워야 할 민주주의는 매우 지난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는 1987년 6월 항쟁이후 지금까지 25년의 역사적 경험이 말해주고 있는 교훈이기도 하다.
그러나 독재정권을 무너뜨리지 않고 민주화를 말하는 것은 허망한 것임을 또한 역사적 경험을 통해 모두 공유하고 있다.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도 마찬가지다. 유통 대기업을 규제하지 않고 상인들의 생존을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매출의 40% 이상을 대기업으로부터 받는 하청이 차지하는 중소기업에 대해서 납품단가 현실화를 회피하고 중소기업 발전을 말하는 것도 허구이며, 주요 필수재나 내구재가 모조리 대기업의 독과점 품목인 현실에서 이를 외면하고 소비자 보호를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재벌을 피해서 민주화해야 할 경제영역 따위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독재정권 타도처럼 현재 시점에서 재벌개혁의 내용이 재벌 집단을 부정하고 재벌의 완전한 해체를 요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2012년 2월 당시 통합진보당 이정희 의원이 '재벌 해체 방안'으로 제안한 재벌개혁안도 사전적인 의미에서 재벌해체는 아닌 것이다. 또한 경제 민주화 운동이 주장하는 '기업 집단법'은 본질상 '재벌 인정법'이지 '재벌 해체법'이 아니다(새사연, <리셋 코리아>, 2012.5, 미래를소유한사람들).
재벌개혁을 재벌해체로 몰아가는 것은 문제
'기업분할 명령제'나 '계열분리 명령제'를 재벌 해체론이라고 부르는 것도 맞지 않다. 만일 그렇다면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미국의 반독점법 역시 독점을 해체하는 법이고 그 결과 미국에는 독점이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재벌 규제를 한다고 하면 모조리 재벌 해체론이라고 받아들이거나 해석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재벌에게 이익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국민들에게 불필요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여 재벌개혁을 지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2008~2009년의 경험을 돌이켜볼 때, 현재 한국경제에서 자본 유출입을 통제할 것이냐 재벌을 개혁할 것이냐는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정책적으로 동시에 시행해야 할 과제임이 너무도 분명하다. 특히 한국처럼 과도하게 자본시장이 개방된 여건에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혼란은 곧바로 한국 금융시장과 특히 외환시장에 영향을 준다.
당연히 다양한 자본유출입 통제 장치를 통해 방화벽을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재벌개혁을 미루거나 연기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2008~2009년 경제위기가 도래했을 때 원자재가 폭등하는데도 재벌 대기업들이 납품가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중소기업 사장들이 시위를 하는 진풍경이 일어났다. 유통대기업들의 골목상권 잠식이 격심해져서 상인들이 본격적인 저항을 시작했다. 재벌 대기업들이 앞장서서 신입사원 임금삭감과 기존직원 동결을 선언하며 노동자 고통분담을 선도했다. 이들은 우리 모두가 공유했던 경험이다.
재벌개혁은 자본통제와 동시에 진행되어야오히려 자본통제와 재벌개혁을 동시에 수행함으로써 재벌개혁과정에서 외국 투기자본들이 허점을 노려 자본시장에서 대기업을 인수합병하거나 무모한 경영권 탈취행위를 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재벌개혁을 하려다 외국 투기자본에게 당한다는 식으로 양자택일을 해야 하고 최악(외국 금융자본)을 피하기 위해 차악(재벌체제)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는 합당하지 않다. 지금 재벌 대기업 집단의 과도한 경제력 집중과 과도한 경제 권력을 규제하는 재벌개혁은 어떤 명분으로도 지체될 수 없다. 그리고 재벌개혁을 전제하지 않는 어떤 경제 민주화도 허구다. 아니 재벌에게 칼끝을 겨누지 않는 경제 민주화는 거의 모두 재벌에 의해 좌절될 것이다.
경제 민주화를 재벌개혁으로 환원시키지 말라는 주장은 재벌개혁을 일반인들이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출자총액제한 제도' 부활 등 기업 집단 내부 지배구조 개혁의 범주로 가두어 두면 안 된다는 걱정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보인다. 맞다. 지금 재벌개혁 경제 민주화 운동의 본질은 민생운동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외환위기 이후의 재벌개혁이나 그 이후 소액주주운동과 지금의 재벌개혁운동은 결정적으로 다르다.
재벌개혁 없이 경제 민주화가 가능한 영역은 없다민생차원에서 보면 사실 대한민국에서 재벌을 피해서 민주화 할 경제영역 따위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 문제, 자영업과 상공인 문제, 중소기업 문제, 수출과 내수 문제, 노동소득 분배율 개선 문제 등을 풀어내자면 반드시 재벌개혁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보건과 같은 복지도 재벌개혁을 피해가지 못한다. 핵심 대형 병원이 재벌 소유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재벌개혁 할 때가 아니라 반값 등록금 투쟁을 해야 할 때"라고 주장하지만, 이 조차 재벌개혁을 피해갈 수가 없다. 적지 않은 재벌들이 대학을 소유하고 있거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값 등록금 투쟁도 재벌개혁을 피해가지 못하는 현실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재벌권력이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기필코 경제 민주주의를 위해 재벌개혁을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딱 한군데 예외가 있다. 금산분리라는 벽 때문에 은행산업 영역에는 재벌의 힘이 미약하다. 차후 다른 글에서 논하겠지만 거기에는 재벌 대신 외국 금융자본이라는 막강한 세력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병권 기자는 새사연 부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