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부터 1997년까지 수원에 있는 신학대학원을 다녔습니다. 학교 옆에 부대찌개를 아주 잘하는 할머니 집이 하나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강의를 하러 오시는 교수님이 계셨는데 그 부대찌개 집에 들러 드시곤 했습니다. 학생들도 자주 그 집에서 부대찌개를 먹었습니다. 저 역시 부대찌개 맛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아직도 그 집만큼 맛있는 집을 찾지 못했습니다. 2000년 진주에 와서 어느 부대짜개 집을 들렀는데 한 숟가락 뜬 후 바로 그 집을 나왔습니다. 수원 할머니 집 부대찌개 맛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지요.
이후 부대찌개는 식당이 아니라 집에서 자주 해먹습니다. 특히 큰아이가 좋아합니다. 부대찌개에 들어가는 재료가 대부분 햄 등 인스턴트라 걱정은 되지만 조미료를 전혀 넣지 않은 조리법으로 걱정을 조금 달랩니다.
지난 수요일 아내가 일을 다녀오면서 부대찌개 재료를 사왔습니다. 아이들이 좋아라합니다. 부대찌개가 먹고 싶다고 엄마에게 말도 하지 않았는데 엄마 스스로 부대찌개를 해주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도 맵고 짠 음식을 먹고 싶었는데 아내가 그 마음을 알았나 봅니다. 육수는 멸치로 대신합니다. 딸아이가 멸치 육수에 고추장을 붓습니다.
"예쁜 아이! 육수에 고추장을 넣어?"
"육수에 고추장을 넣지 무엇을 넣어요?"
"아니 육수가 다 끓고, 햄을 넣고 그 위에 양념장을 하는 것 아냐?"
"아니 그렇게 하는 것이 어디 있어요. 육수를 끓이면서 고추장을 넣어요. 엄마가 그랬어요.""아빠는 부대찌개 할 때 육수 따로, 양념장 따로 한다. 그럼 엄마에게 배운대로 육수에 고추장을 바로 넣고 끓인 부대찌개 맛이 어떤지 궁금하네."
엄마 말을 듣고, 부대찌개를 끓이는 딸 아이 솜씨가 어떨지 궁금합니다. 7시쯤 학교에 돌아온 큰아이는 부대찌개를 끓였다는 말을 듣고, 입에 침이 고입니다. 문제는 예배를 마치고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빨리 예배를 마치고 부대찌개를 먹기를 바라는 그 심정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습니다.
"엄마 예배 마쳤으니 빨리 밥 먹어요. 휴대용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 놓고 끓여 먹어요."
"휴대용 가스레인지는 불이 약하니까? 가스레인지에 먼저 끓여야 해."
"아까 서헌이가 다 끓였잖아요."
"그때는 육수를 만들었지. 아직 햄과 소시지는 덜 익었잖아."아내는 가스레인지에 불을 집혀 팔팔 끓인 후,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올렸습니다. 보글보글 끓은 부대찌개를 보니 절로 침이 입에 고입니다.
부대찌개 위에 라면 사리를 올렸습니다. 당면을 넣을 때도 있습니다. 입맛따라 사리가 달라집니다. 라면을 먹고 싶으면 라면을, 당면을 넣고 싶으면 당면을 넣어면 됩니다. 부대찌개가 다 끓자 아이들은 사흘이나 굶은 것처럼 밥 한 그릇, 부대찌개 한 그릇을 먹었습니다. 먹다보니 부대찌개 한 솥이 바닥을 보였습니다.
막둥이는 매운 것을 잘 먹지 못하지만 부대찌개만은 잘 먹습니다. 5살 때 서울 가서 부대찌개를 먹은 적이 있는데 아직도 그 맛을 기억하면서 "엄마 오늘 부대찌개 먹고 싶어요"를 외칠 때가 있습니다. 햄과 소시지 같은 인스턴트 재료가 들어가지만 부대찌개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아이들 건강 망치는 부모라는 타박을 듣겠지만, 아 어쩔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