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25일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62주년이 되는 날이다. 나는 그때 여섯 살 난 소년이었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내가 본 한국전쟁 이야기를 5회 정도 연재하고자 한다. 마지막 회는 최근에 발간된 한국전쟁 당시 프랑스 종군기자(AFP, 르 피가르 소속) 네 명이 야전에서 발로 뛰며 작성해 전송한 기사들을 한데 묶은 <한국전쟁 통신>을 소개할 예정이다.

기사 사이에 소개하는 사진은 기자가 2004년, 2005년, 2007년 세 차례 미국 메릴랜드 주 칼리지 파크에 있는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에서 발굴한 것들이다. 이 한국전쟁 사진 자료 가운데 일부는 이미 <오마이뉴스>에 '사진으로 보는 한국전쟁'이라는 제목으로 30회 연재한 바 있고, 그리고 눈빛 출판사에서 <지울 수 없는 이미지 1, 2, 3><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 장면><한국전쟁 Ⅱ> 등의 제목으로 사진집을 펴냈다. <기자 주>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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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2월 2일, <오마이뉴스> 누리꾼 성금으로 꾸려진 백범 김구 선생 암살 진상규명을 위한 우리 조사단 일행은 마침내 미국 메릴랜드 주 칼리지파크에 있는 국립문서기록관리청를 찾아갔다. 그곳의 출입과 경비는 매우 철저했지만, 일단 입장하자 생각보다는 매우 자유로웠다. 5층은 사진 자료실이라서 영문에 능통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우리나라 자료를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들어갔다.

1950년 한국전쟁 파일을 찾았다. 9개의 파일에 수천 장의 사진이 마련된 바, 복사물의 번호를 적어서 신청하자 직원이 원본 사진을 꺼내주면서 반드시 장갑을 끼고 찾아서 본인이 복사한 후 제자리에 꽂아두라고 했다.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기자, 타임머신을 타고 50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B-29의 융단폭격 장면, 치열한 시가지 전투, 전쟁고아들의 모습, 인민군 포로, 장갑차와 대포들이 불을 뿜는 장면, 군부대를 찾은 위문대들의 모습…. 그리고 해방 무렵 조선총독부 광장에 일장기가 내려가고 성조기가 게양되는 장면 등. 여태 내가 보지 못한 사진들이었다. 그동안 내가 본 사진들은 반공일변도로 북한군의 침략 상만 클로즈업 한 사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곳 아카이브에 소장한 사진에는 한국전쟁 실상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었다.

나는 이들 사진을 보자 고려 때 원나라에 사신으로 간 문익점 선생이 목화씨를 보고 붓두껍에 넣어 왔다는 얘기처럼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모두 복사해 가고 싶었다. 하지만 아카이브에서 복사비가 비싸(한 장당 90센트) 망설이던 가운데 다행히 스캔은 된다고 하여 동포 주태상씨의 스캐너를 빌려 이튿날부터 본격으로 스캔할 수 있었다.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현대사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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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자료를 다른 나라에 가서 찾는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한국의 귀중한 자료는 국내보다는 미국 일본 러시아 영국 중국 등지에 더 많이 있다. 고대사는 중국에, 근대사는 일본에, 근 현대사 자료는 미국 러시아 영국 중국 일본에 산재해 있다.

우리나라의 자료를 다른 나라가 더 많이 소장하고 있다는 것은 단적으로 지난날 우리의 국력이 그만큼 약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나라가 기록을 중요시하지 않은 탓도 있고, 있는 자료조차도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거나 은폐하기 위해 훼손한 일도 없지 않았다.

"기록하는 자가 앞서 간다"는 말은 진리다. 선진국일수록 기록에 철저하다. 아무리 기억력이 좋아도 기록을 능가할 수 없다. 고려 때 청자를 빚었던 도공은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에 그 비법이 끊어지고 말았다. 진실한 기록, 한 장의 사진은 역사의 물줄기를 틀기도 한다. 현명한 백성은 조상이 남긴 기록을 보고 시행착오를 범하지 않는다. 기성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해야 할 가장 큰 책무는 역사의 진실을 남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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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한국전쟁 62주년 맞이한 이즈음 <한국전쟁 통신>이라는 제목의 프랑스 종군기자들이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발로 써서 전송한 기사들을 한 권으로 묶은 책이 번역돼 나왔다.

이 책<한국전쟁 통신>은 1950년 6월 25일 전쟁 발발 당일에서부터 중공군 개입과 1·4후퇴, 그리고 1951년 3월 서울을 재탈환하기까지 프랑스 종군기자(AFP, 르 피가로 소속) 네 명의 기사들을 한데 묶은 것이다. 이들이 전선에 각각 흩어져 취재한 것을 세르주 브롱베르제가 한데 묶어 1951년 파리에서 책으로 펴냈다.

이 책은 6·25전쟁의 실상을 가장 먼저, 가장 빨리 전 세계 독자들에게 알린 책으로, 프랑스에서 그해의 가장 뛰어난 '기록문학' 수여하는 '알베르 롱드르 상'을 받았다. 그들의 취재 이후 전쟁이 고지전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므로, 그들이 전장에 나섰던 시기는 사실상 한국전쟁의 절정기였다.

지금까지 국내에 공개된 외국인의 6·25전쟁에 대한 기록은 주로 미국의 입장에서 쓴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들 기자는 비교적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사를 쓰려고 한 흔적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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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산악지대가 많은 한국에서 미군의 무지막지한 물량공세로 말미암아 오히려 전세를 불리하게 하였다는 사실을 시종일관 이야기하고 있다. 보병 전을 전개해야 할 곳에서 포병 및 근접항공지원이 초래한 전술적 실패에 대한 지적이다. 반면에 장비가 부족하고 훈련이 덜 된 한국군이 겪어야 했던 고난과 유엔군과의 관계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둘째, 기자들은 전쟁의 참화에 신음하는 한국인들에 대해 연민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뜻하지 않은 전란에 휩쓸린 아이들과 피란민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돋보인다. 특히 이들은 평양 수복 직후 평양 시민과의 인터뷰를 통해 전쟁을 겪는 한국인들을 심도 있게 이해하려고 했다. 고 이휘영 서울대 교수의 친형 리휘창의 '철의 장막'에 대한 증언, 산돌교회 창립자 채필근이 들려주는 해방 이후 평양 수복기까지의 수난사는 흥미진진하다.

셋째, 한국전쟁에 종군한 종군기자들의 활동상을 알 수 있게 하였다. 여기자 마거릿 히긴스와 영국 처칠 수상의 아들 랜돌프 처칠의 전장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등장 그리고 언론 검열과 유독 많았던 종군기자 사상자에 대해서도 자세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전쟁의 당사자이면서 오히려 지난 60여 년간 6·25전쟁의 실상과 교훈을 잊고 있는 한국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눈빛 아카이브' 사진을 추가 편집하였으며, 소장하고 있는 영국의 <픽처 포스트>지의 종군사진가 버트 하디의 사진 11점도 국내 최초로 공개하였다.

가엾은 사람의 물결

정오에 맥아더 장군은 (중앙청) 일층 대회의실로 내려왔다. 그는 이승만 대통령의 팔을 힘차고도 정답게 잡았다. 영부인은 엷은 백색 한복차림으로 벌써 자리에 앉아 있었다. … 12시 10분, 모두 기도했다. 이어서 맥아더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인사를 건넸다. 대통령은 감격적이며 낮은 목소리로 답례하고 나서 통일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 '서울 수복' 145~146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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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뒤, 나는 비행장으로 가는 길가 마을에서 한국군 병사들이 미곡을 쌓아 놓고 불을 지르는 모습을 적지 않게 보았다. 적이 식량으로 쓰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 사실 오전에 LST(수송선) 한 정이 부두에 나타나 육지와 배를 오가며 군중(피란민)을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보초들의 인솔을 받으며 폭력을 쓰지 않고는 도저히 막기 어려울 정도로 군중(피란민)이 밀려들기 시작하면서 도선(배)마다 만원이었다. 게다가 과적한 도선은 곧장 바다속으로 가라앉기도 했다. - '흥남철수' 286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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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1월 2일 오후, 서울의 벽마다 드문드문 남은 주민에게 이승만 정부가 부산으로 철수했다고 알리는 작은 벽보들로 덮었다. 내무부장관 조병옥의 이름으로 발표한 공고였다. 사실 정부는 오래 전에 떠났고, 적을 헷갈리게 하려고 '유령' 정부만 남겨 놓았었다. 즉시 광풍이 거리에 넘쳤고, 당황하고 가엾은 사람의 물결이 … 한강으로 이어졌다. - '38선 전투(1·4후퇴)' 293 쪽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뒤늦게나마 그들(종군기자)의 눈으로 한국전쟁의 참 모습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역사를 위하여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시는 이 땅에 동족상잔의 야만스러운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빌면서 5회에 걸친 내가 겪은 한국전쟁 연재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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