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앞도 못 보는 무능한 정부 때문에 아침부터 분통이 터지네요."
논란이 끊이질 않던 무상보육이 중단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부모들이 모이는 카페에서는 난리가 났다. 아침부터 무슨 날벼락이냐는 분위기다. 무상보육이 전면 중단되는 것이냐, 전업맘은 지원을 못 받는 거냐, 어떤 이는 아이 나이를 밝히며 어떻게 되는 건지 묻는 등 부모들은 '멘붕' 상태다. 정부가 팔 걷어 붙이고 나서서 무상보육을 외칠 때는 언제이고, 단 몇 개월 만에 돈이 없어 접겠다니 부모들은 도무지 납득하지 못한다. (새누리당은 논란이 확산되자 5일 예비비와 지방채 발행 등을 통해 현행 무상보육을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재벌 손자 핑계대며 선별보육으로 회귀?그렇다면 정부는 이 사태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까. 그렇지 않기 때문에 정부에 드는 배신감은 더 크다. 무상보육을 둘러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재정 갈등은 올 1월부터 시작되었다. 예정에도 없던 만0-2세 무상보육이 결정되자 지자체는 재정을 감당하기 어렵다며 전국시도지사협의회를 통해 여러 차례 정부에 건의서를 보냈다. 급기야 지자체가 3월 말과 4월 말에 공동으로 성명서를 내어 현 재정으로는 올 하반기까지 무상보육을 감당하기 어렵다며 정부의 전면적인 지원을 요청해왔다. 정부는 지방정부의 책임을 강조하면서도 지방의 과부화된 재정 문제를 풀어줄 수 있을 것처럼 뜸을 들이며 총선 이후부터 지금까지 시간을 끌어왔다.
그런데 3일 드디어 김동연 기재부 2차관 입을 통해 상황 정리에 나섰다. 현재의 무상보육을 철회하고 재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재벌가 손자에게 보육비를 지원하는 것은 사회정의에 맞지 않다는 발언을 해 무상급식에 이어 보편복지 논란에 다시 불을 지폈다. 이전까지 보육료지원은 소득하위 70% 가정에 그쳐 맞벌이 가정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맞벌이에 전세 살고 차라도 있으면 보육료지원은 좀처럼 받기 어려웠다. 하지만 만5세와 만0-2세 무상보육이 모든 가정으로 확대되면서 그나마 맞벌이 가정도 혜택을 입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선별보육으로 회귀하겠다며 밝힌 정부의 논리대로라면 소득 상위 30%에 포함된 다수의 맞벌이 가정은 재벌가인 셈이다. 아이들 보육료에 추가 경비까지 전액 부담하면서 아이 하나 감당하기 빠듯한 맞벌이 가정은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재벌이라면 잘해봐야 상위 1%에 불과하고, 거기다 정말 재벌가 손자들이 일반 어린이집을 다니겠느냐고 반문한다. 기재부가 무상보육 재검토를 공식화하면서 '재벌가 지원, 사회 정의' 운운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실책을 덮으려는 엉터리 논리라는 비판이다.
이번 무상보육 대란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실책에서 비롯되었다. 보육료지원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사전에 충분히 협의해 예산이나 인프라를 준비해야 하는 매칭사업이다. 그러나 만0-2세 무상보육을 결정하면서 이 기본적인 과정이 지켜지지 않았다. 지난 연말 예산처리 과정에서 급조된 영아 무상보육은 애초부터 정부와 여당의 총선용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했다. 때문에 보육료를 지원받게 된 보육관계자들은 물론 부모들조차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무상보육에 대한 장기 계획 없는 즉흥적 지원아니나 다를까. 영아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부담 없이 어린이집을 이용하게 한 무상보육이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영아들이 어린이집으로 한꺼번에 몰리면서 어린이집 부족 사태가 일었다. 가정에서 아이를 돌보던 엄마들조차 '안 보내면 손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어린이집으로 몰려들었고, 정작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은 보육시설에 들어갈 자리가 없어져서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엄마들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자리가 난 어린이집이라면 아이를 일단 보내고 봐야 했다. 애꿎게도 전업맘에게 그 비난이 향했다. 전업맘들이 취미생활하려고 어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다며, 비정한 부모로 몰아갔다.
영아들이 어린이집으로 몰리자 당연히 재정에 적신호가 왔다. 무상보육 재정이 가장 먼저 고갈된 곳은 다름 아닌 서울시의 서초구다. 전국에서도 재정자립도가 가장 높은 서울시, 서울의 25개 자치구 중에서도 '부자동네'인 서초구였기 때문에 모두가 의아해했다.
이제까지 보육료지원은 소득하위 70%로 제한되어 부자동네 서초구는 상대적으로 보육지출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소득상위 30%로 무상보육이 확대되면서 서초구의 재정 부담이 급격히 늘었다. 지난해 연말 서초구에서 보육료지원을 받았던 만0-2세아는 1600여 명이었으나, 영아 무상보육 확대 후 5100여 명으로 3배 가까이 급증했다. 서울시가 임시방편으로 여유가 있는 자치구의 보육지원액을 가져와 돌려막는다지만, 다른 구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정부의 추가 지원이 없는 한 올 9월이면 서울시 절반 이상의 자치구는 무상보육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서울시만의 문제는 아니다. 현재 전국 지자체의 사정도 열악하긴 마찬가지다. 실제로 <오마이뉴스>의 조사에 따르면, 9월 서울과 경기, 10월 중으로 인천, 대전, 충북, 광주 지역의 예산이 고갈될 위기에 있다.
정부 말대로 선별보육으로 돌아선다고 해도 정부의 현금지원에 따른 형평성 논란이 여전히 남는다. 현재 보육료지원과 양육수당(현재 소득 하위 15% 저소득층 가정의 0~2세가 대상) 둘 다 현금지원에 해당된다. 이 둘 간의 지원액 차이가 커 문제가 되고 있다. 만 0세아의 경우 보육시설을 이용하면 정부는 한 아이당 보육료지원으로 75만원을 시설에 지급한다. 그러나 가정에서 부모가 직접 돌볼 경우 월 20만원을 준다.
기재부가 손을 대려는 부분도 양육수당과 보육료지원의 차이를 좁히는 방향이다. 우선 만0-2세에 주어지는 양육수당의 범위를 차상위계층에서 최대 소득하위 70%까지 늘리려고 한다. 그러나 단순히 지원 대상만 늘릴 것인지, 보육료지원과 양육수당간 차액이 크니 양육수당을 최대 25만원까지 높일 것인지는 고민 중이다.
시설 보육료 지원 75만원 vs. 양육수당은 20만 원
그러나 양육수당을 5만 원 늘린다고 제 효과를 발휘할까. 육아정책연구소에서 펴낸 '영아 양육비용 지원정책의 효과와 개선방안'을 보면, 부모들은 평균적으로 현재 보육료지원만큼 양육수당을 줘야 아이를 집에서 키우겠다고 답했다. 적어도 양육수당이 30~40만 원 수준으로 올라야한다는 얘기다. 정부가 당장 양육수당을 이 금액까지 올릴 수 없는 처지라면 영아의 어린이집 이용이 크게 줄지 않으리라는 분석이다.
또 하나는 보육료지원이 확대되는 만큼, 과연 믿고 맡길만한 어린이집이 많아졌는가하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보니 부모들은 도대체 무상보육으로 좋아진 게 뭐냐는 반응도 더러 나온다. 부모들이 가장 선호하는 국공립어린이집은 이명박 정부 들어 전체 시설 중 5.3% 비중으로 줄었다. 안 그래도 국공립 한 시설당 대기자 아동수가 100명이 넘었는데, 무상보육으로 사태는 더 심각해졌다.
무상보육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모든 정당들이 올 총선에 내건 공약이다. 특히 새누리당은 총선 공약을 100일안에 입법화하겠다고 약속까지 했는데, 기재부가 백기를 들면서 물거품이 될 판이다. 젊은 유권자들 중에는 총선을 앞두고 보육정책 때문에 고민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니 또 '속았다'며 토로한다.
사실상 복지는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한 발짝도 나아가기 어렵고, 한번 늘리면 수혜층의 반발로 되돌리기 어려운 분야다. 지난 총선에서는 어느 정당도 복지재정을 적극적으로 늘리겠다고 말하지 못했다. 새누리당은 재정 합리화만 언급해 실현성을 의심케 했고, 민주통합당 역시 세수 확대를 위한 방안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못했다.
무상보육은 보육의 공공성을 끌어올리는 윤활유가 되어야지, 보육의 토대마저 무너뜨리는 폭탄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무상보육의 의미를 단순히 현금지원에만 방점을 찍어서는 보육의 현안이 풀리지 못한다. 아이 키우는 부모라면 소득에 관계없이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을 물론, 이용할만한 공공인프라 확충이나 보육교사의 처우까지 포괄하는 대안이어야 부모들의 분노를 삭힐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새사연(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최정은 기자는 새사연 연구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