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세종대 생협에서는 편의점에서 1100원에 파는 콜라 한 캔을 600원에 팔고 있습니다. 이 콜라의 원가는 470원입니다."강사의 설명을 들은 한 청중이 자기도 모르게 '헐~' 이라는 감탄사를 내뱉자 강의실에는 웃음꽃이 번졌다.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성공회대학교 피츠버그 홀에서는 '2012청년협동조합컨퍼런스'가 열렸다.
사회적 경제에 관심이 있는 국내 20, 30대 청년들과 협동조합에 대한 인식과 가치를 공유한다는 취지로 열린 이 유료 컨퍼런스에는 350여 명의 청년들이 수강신청을 넣었다. 행사 첫날인 6일에는 오전부터 쏟아진 빗줄기에도 불구하고 200명에 가까운 청년들이 몰렸다.
청년협동조합 컨퍼런스... 빗속에도 청년 200명 몰려올해는 UN이 지정한 '협동조합의 해'다. 반기문 UN사무총장은 2009년 총회에서 2012년을 세계 협동조합의 해로 지정하며 "협동조합은 경제적 성과와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일깨워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 총장의 말은 최근 세계적인 경제 위기 속에서 협동조합이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을 해결하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6일 열린 컨퍼런스에 참가한 청중들 역시 같은 지점을 주목하고 있었다. 행사 첫 프로그램은 음악, 생활, 주택건설, 의료 등의 분야에서 현재 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있는 활동가 6명의 릴레이 강연이었다. 6개의 강연 후 진행됐던 질의 응답 시간이 되자 각각의 강사 앞에는 청년 청중들에게 걷힌 수십 장의 질문지가 쌓였다.
컨퍼런스에 참가한 청년 청중들이 활동가들에게 가장 많이 던진 질문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이익을 추구하는 협동조합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6명의 활동가들은 모두 "가능하니 일단 해 보라"고 권했다.
이원숙 인천평화의료생협 사무국장은 "경쟁에서 벗어나 공존의 삶을 고민하면서 길을 모색해보라"고 조언했다. 기노채 주택건설협동조합 준비모임 대표는 "저도 여러 사람이 함께 잘 사는 가치를 어떻게 실현시킬까를 여러분 나이 때에 처음 고민했다"면서 "협동조합을 알게 된 순간 28년 전 했던 고민을 해결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만큼 열정을 가진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협동조합, 나 혼자 먹고 살자는 이기주의 아니라 좋아요"이날 컨퍼런스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청년들이 참석했다. 청소년 대안학교인 푸른숲 학교에서 온 고등학교 1학년 김지민양은 "자본주의에서는 사람의 의견이 쉽게 무시되는데 협동조합은 사람의 가치를 지킬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에서 온 중학교 3학년 안지영양은 "나 혼자 먹고 살자는 신자유주의식 이기주의가 아니라 좋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협동조합을 소재로 각각 '세계 경제위기에 협동조합이 대안이 될 수 있는가' '협동조합의 가치는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학교 과제 논문을 준비중이다.
경희대 학생인 유난실씨와 서성민씨는 학교 내 생활협동조합이 잘 되어 있는 것을 보고 협동조합에 관심을 느껴 이 곳을 찾았다. 경제학 전공인 유씨는 "소비자 협동조합 이외에는 어떤 다른 가능성이 있는지 궁금해서 왔다"고 말했다.
서씨는 "배우고 있는 주류 경제학과는 다른 내용이지만 자본주의를 보완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분야인 것 같다"고 관심을 드러냈다.
세종대 생활협동조합의 문효규 이사장은 협동조합의 장점으로 민주성을 꼽았다. 문 이사장은 "생협은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가지고 있고 학교 구성원들이 주인이기 때문에 구성원들에게 최대한 편익을 보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학교를 운영하고 싶어하는 재단의 경우 이러한 점 때문에 생협을 못마땅해 하기도 한다"며 자신의 모교를 예로 들었다. 세종대는 재단 주도로 현재 생협의 사업권을 외주업체에 넘기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세종대 학생인 문 이사장은 이날 강연에서 강사로도 나섰다.
"청년 실업, 88만원 세대... 그래서 더 매력 느꼈죠" 성공회대에서 열린 이 행사는 10여 명의 학부생들이 주축이 돼 만들어졌다. 강의 내용을 정하고 강사를 섭외하고 비용을 모금하는 것을 포함한 행사 전반을 모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이끌었다. 협동조합이 가진 가치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컨퍼런스 주제를 '청년들을 자극하라'라고 정한 것도 청년들에게 협동조합의 매력을 알리고 공유하자는 의미다.
행사 기획을 맡고 친구들을 모은 조수미씨는 "교수님에게 우연히 들었던 협동조합 얘기가 발단이었다"면서 "왜 이런 게 알려져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일단 도전해보게 됐다"고 설명했다. 조 씨는 지난 해 8월, 경영학과 학생들 다섯 명을 모아 팀을 꾸렸고 참여하는 학생의 수는 점점 늘었다.
조씨를 포함한 학생 모두가 처음에는 협동조합에 대해 잘 몰랐다. 일단 하기로 하고 공부를 하다보니 점점 매력을 느꼈다는 게 학생들의 설명이다. 이강산씨는 "8월까지만 해도 협동조합에 대해 30초도 설명을 못 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씨는 학교 공부를 잠시 미뤄놓고 자신이 맡은 컨퍼런스 홍보 업무에 필요한 웹 개발을 독학으로 해결하는 열성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평소 하고싶은 일을 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며 "오늘 200명이 넘는 사람이 온 걸 보니 뿌듯하다"고 말했다.
컨퍼런스를 준비하면서 협동조합의 매력에 빠진 것은 이 씨 뿐만이 아니었다. 나지은씨는 "일단 알게 되면 이걸 혼자만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게 협동조합의 매력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문경록씨는 "청년실업과 88만원 세대 등 우리가 처해있는 환경 때문에 더 매력을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협동조합을 공부하면 왠지 청년들이 쓸데없는 경쟁 없이 다 같이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며 웃었다.
다섯 명의 학생들은 학내에서 열린 해외탐방 공모전에도 뽑혀 일본에도 함께 다녀왔다. 일본의 대학 생활협동조합은 세계에서도 최고수준으로 인정받고 있다. 정다희씨는 "성공회대에서도 생협을 준비중인데 우리 팀이 일본에 다녀와서 브리핑을 했고 관련 내용이 많이 반영됐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새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되는 올 12월을 기점으로 청년들에게 협동조합을 알리는 일을 하는 협동조합을 만들 계획이다. 기존 법에서는 생협 설립 시 조합원 300명에 3000만 원 이상의 출자금이 필요했지만 새 법이 발효되면 출자금 제한 없이 조합원 5명만 모이면 협동조합 설립이 가능하다. 이씨는 "다섯 명 모두, 다른 일을 하게 되더라도 협동조합을 알리는 일은 계속 하고싶어서 협동조합을 만들기로 했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