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에 사는 친구가 이번주말이면 연꽃이 한창일 것이라고 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세미원'이 있으니, 안성까지 가는 시간을 아낄 요량으로 두물머리에 있는 세미원으로 향했다.
비가 그친 뒤, 뜨거운 햇살에 살이 따갑다. 어제까지만 해도 서늘하더니만 하루 사이에 이렇게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비가 올 적엔 햇살이 그립더니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비구름이 잠시라도 지나갔으면 하는 변덕스러운 마음.
주말을 맞이하여 많은 이들이 세미원을 찾았다. 내가 너무 오랜만에 온 것인지, 그 전에는 무료입장이었는데 입장료를 받는다.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유지를 하려면 그래야지 하면서도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못들어갈 지언정, 그때가 더 좋지 않았나 싶다.
그때는 조금 미안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봤는데 이젠 돈을 내고 들어왔으니 그런 마음이 없어진다. 이 차이를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세미원의 연꽃은 이미 한창 때는 지난듯했다. 피어난 꽃과 피어날 꽃몽우리보다 연밥이 더 많이 보인다.
세미원에 가지고 들어갈 수 없는 것들이 몇 가지 적혀 있었다. 음식물, 삼각대, 동물 등등, 일반 공원과 다른 점에 있다면 '삼각대'라는 것이 조금 특별나다. 이전에도 그랬다.
그러나 조금 안으로 들어가자 삼각대를 가져오지 않은 내가 바보같고, 돗자리를 깔고 음식을 나누는 이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무료입장과 유료입장의 차이를 보는 듯 씁쓸하다.
햇살은 눈부시고 따가웠으며 강바람도 잠잠했다. 아주 간헐적으로 불어올 뿐이라 뜨거운 햇살의 기운을 어찌하지 못했다.
몇몇 장비의 조건들도 맞지는 않았지만, 제대로 모델이 되어줄 만한 연꽃을 찾지 못했다. 물론,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다. 꽃을 보는 눈을 잃어버렸나 보다. 아무튼 연꽃은 지고 있었다. 더 피어 있어도 좋으련만.....
곁에 오랫동안 가까이 하고 싶은 것은 왜 그리도 빨리 떠나 허망하게 하고, 어서 보내고 싶은 것들은 끝까지 남아 나를 괴롭힌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갖가지 망령들이 우리 곁에서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분단 국가가 겪어야만 하는 이데올로기적인 갈등, 약소국가가 겪어야만 하는 강대국들의 횡포, 그 사이에서 매국노짓을 하는 권력자들 - 매국노짓도 쥐꼬리만한 권력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 -, 그런 것들은 독버섯처럼 끊임없이 피어나건만... 더 피어 있어도 좋았을 연꽃은 어찌 그리도 허망하게 빨리 지는가?
남한강변의 부들을 바라본다. 그래도 강변이라고 강바람이 분다. 저기 북한강물은 푸른 빛이었던 것 같은데, 남한강물은 흙탕물이다. 이번 장맛비 때문인가 보다.
연꽃을 보러 왔다가 부들을 더 오랫동안 바라본다. 삶이 그렇다. 계획한 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허투로 살지만 않는다면 계획대로 살아가지 못해도 그보다 못한 결과에 놓여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믿음이다. 그런 믿음 조차도 상실한다면 우리가 이 세상을 어찌 살겠는가?
세미원 초입에 돌탑이 놓여 있었다. 나는 돌탑만 보면, 그 돌멩이 하나하나에 들어있을 소망들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하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그 순간의 순수함 있을 터이니 이뤄지길....
자주는 아니지만, 간혹 세미원에 들러 산책을 하곤 했었다. 참으로 고마웠다. 그러나 이젠 자주 들르지 못할 것 같다. 유료화되어서가 아니라, 그곳을 걷는 나의 마음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남의 수고에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도 참 알량한 마음인가 보다.
덧붙이는 글 | 세미원은 이전엔 수년간 예약을 하고 방문할 수 있었으며, 얼마간은 농산물상품권과 교환을 해주었으나, 현재는 대인 4,000원의 입장료를 받는다.
개인적으로 입장료를 받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이전과 달라진 탓에 걷는 마음이 달라졌음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