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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두관 전 경남지사가 지난 8일 정오께 해남 우수영 명량대첩지에서 측근들의 성화에 못이겨 '장군 노릇'을 연출하고 있다. "지나친 연출은 보기 좋지 않다"고 김 전 지사가 처음엔 거부하자 한 측근은 "기자들의 끈질긴 요청"이라며 이를 관철시켰다.
김두관 전 경남지사가 지난 8일 정오께 해남 우수영 명량대첩지에서 측근들의 성화에 못이겨 '장군 노릇'을 연출하고 있다. "지나친 연출은 보기 좋지 않다"고 김 전 지사가 처음엔 거부하자 한 측근은 "기자들의 끈질긴 요청"이라며 이를 관철시켰다. ⓒ 이주빈

 김두관 전 지사가 측근들이 제안한 '돌발 연출'을 받아들여 '이순신 장군처럼' 장군복을 입고 칼을 꺼내 전승을 다짐하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김두관 전 지사가 측근들이 제안한 '돌발 연출'을 받아들여 '이순신 장군처럼' 장군복을 입고 칼을 꺼내 전승을 다짐하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 이주빈

정치인 역시 배우 못지않게 '설정'과 '연출'을 많이 한다. 한 현장에서, 하나의 장면을 통해, 보다 많은 이들에게 효과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생색 낸다'고 쉽게 폄훼할 일은 아니다. 어떤 설정과 연출을 하는가에 따라 그 정치인의 성향과 중심가치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지난 8일 정오께, 김두관 전 경남지사가 전남 해남 우수영 명량(울돌목) 대첩지를 들렀다. 오후 3시로 예정된 땅끝 대선출마 선언식에 앞서 자신의 결의를 다지려고 잡은 일정이었다.

명량대첩이 무엇이던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고작 열두 척의 배로 133척 선단으로 구성된 왜국 수군을 대파한 해전사에 길이 남을 전투 아니던가. 김 전 지사는 아직은 당내 경쟁자들에 비해 지지율 낮고, 지지세 약하지만 결국 자신이 충무공 이순신처럼 종국의 승리를 가져올 주인공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을 것이다. 훌륭한 '설정'이었다.

설정에 맞게 명량대첩지에서의 현장 연출은 순조로웠다. '약무호남시무국가(若無湖南是無國家, 만약 호남이 없었으면 곧바로 나라는 없어졌다)'가 선명하게 쓰인 출입문을 지난 김 전 지사는 거침없이 명량대첩비를 둘러봤다. 대첩비 앞에서 기자들에게 간단한 멘트를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김 전 지사 측이 미리 밝힌 그 다음 일정은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 현장이었던 울돌목 해협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김 전 지사는 지지자들과 함께 "듣던 대로 물살이 매우 빠르네요"라며 울돌목 해협을 응시했다. 계획된 연출은 딱 거기까지였다. 돌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한 측근이 어디에선가 장군복 등을 빌려 와 김 전 지사에게 "장군복을 입고 칼을 휘두르며 이순신 장군처럼 호령하는 모습"이라는 새로운 연출을 제안했다. 매우 당혹해 하는 김 전 지사에게 그 측근은 "기자들의 끈질긴 요청"이라고 말했다.

김 전 지사는 처음엔 "지나친 연출은 보기 좋지 않다"며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측근이 "기자들의 끈질긴 요청"이라고 거듭 권하자 "이것 참, 허허 참"하며 마지못해 장군복과 칼을 들고 이순신 장군 동상 옆에 섰다. 머쓱한 김 전 지사의 표정과는 상관없는 환호와 박수가 터졌다. '정치인 노릇'도 '장군 노릇'하는 것만큼 힘든 모양이다.


#김두관#이순신#땅끝마을#대선#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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