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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수장의 연이은 폭탄선언

 

"앞으로 한 두 달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이 있을 것이다. 하반기 우리 모습도 상당히 영향을 받을 것이므로 현재로서는 이렇다저렇다 말하기가 어렵다." (2012년 5월 25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유럽 재정위기가 스페인으로 번질 경우 대공황에 버금가는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기록될 것" (2012년 6월 4일, 김석동 금융위원장)

 

"2008년 리만 사태에 비하면 이번 위기는 여러 면에서 더 심각하다... 끊임없이 위기를 불러오고 양극화를 심화시켜온 신자유주의가 종언을 고하고 이제 소비자와 투자자에 대한 보호, 사회적 책임 등이 강조되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패러다임이 등장할 것이다." (2012년 6월 8일, 김석동 금융위원장)

 

"세계경제 인식... 김석동 위원장과 다르지 않다. 유럽 재정위기는 6월말 최대 위기를 맞을 것이다." (2012년 6월 10일, 권혁세 금융감독원장)

 

한 달여 전 한국의 경제 부처 수장들이 쏟아낸 말들이다. 신자유주의가 종언을 고하고 새로운 자본주의 패러다임이 등장한다니, 이야말로 진보진영의 주장이 아닌가? 시장만능주의 이데올로기와 관치의 실행이 기묘하게 결합하여 있는 구 '재경부' 출신 인물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얘기들이다. 이런 말들이 진정이라면 정부의 하반기 경제정책부터 획기적으로 변화해야 할 것이다.

 

이들의 반성 또는 호들갑이 언론을 뒤덮은 후, 6월 28일 정부는 기획재정부에서 '2012년 하반기 경제전망'을, 관계부처 합동으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다. 과연 경제 부처 수장들의 바뀐 인식은 정책에 얼마나 반영되었을까?

 

정부의 하반기 경제전망 하향 수정

 

정부는 작년 말 3.7%로 예측했던 2012년 경제성장률 전망을 3.3%로 0.4%p 낮췄다. 이번 발표에서 다시 0.1%p를 낮춰 3.5%로 전망했다. 정부뿐 아니라 해외 투자은행도 연이어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고 있는데, 6월 말 현재 이들의 전망치를 평균하면 약 2.9% 정도다.

 

정부와 한은의 2012년 경제전망 정부는 2011년 말 2012년 국내경제성장률은 3.7%로 전망했지만, 2012년 6월 이를 3.3%로 낮췄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더 낮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정부와 한은의 2012년 경제전망정부는 2011년 말 2012년 국내경제성장률은 3.7%로 전망했지만, 2012년 6월 이를 3.3%로 낮췄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더 낮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 새사연

[표 1]을 보면 정부의 작년 말 발표와 이번 발표에서 가장 많이 수정된 것은 역시 수출입 전망으로 각각 거의 반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GDP에는 순수출(수출-수입)이 잡히므로 해외부문이 GDP에 미친 영향은 거의 없다. 오히려 수출보다 수입이 더 줄어서 경상수지가 20억 달러 정도 증가하는 것, 따라서 GDP는 약 0.2% 증가하는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매년 두 자리 수 이상 늘어나던 수출증가률이 이렇게 급감한다면 실제 생산과 투자 그리고 고용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정부의 발표에는 이런 고려가 들어가 있지 않다. 민간소비만 0.6%p 줄였을 뿐 설비투자 증가율은 오히려 2.6%p 높게 전망했다. 즉, 정부가 성장률을 낮춰 전망한 이유는 수출 감소 때문이 아니라 국내 소비 감소 때문이다. 이런 전망은 올바른 것일까?

 

작년 말 우리 연구원은 IMF, OECD 등 국제기관들의 전망치 중 UN경제사회국(DESA)이 발표한 세계경제성장률 2.6%를 가장 객관적이라고 판단했는데, 최근 UN은 이 수치를 0.1%p 또 낮췄다. 금년 상반기의 실적으로 보아 UN의 예측이 옳다고 해야 할 것이다. 최근 수정된 UN경제사회국의 전망에 따르면 세계교역성장률은 2010년 13.1%에서 2011년에 6.6%, 그리고 금년에는 4.1% 증가로 둔화할 것이고 한국 수출의 50% 가량을 받아들이는 동아시아의 성장률은 2010년 9.2%에서, 2011년 7.1% 그리고 금년에는 6.5%로 더욱 떨어질 것이다. 동아시아 수출의 절반을 소화하는 중국의 성장률도 2011년 9.3%에서 금년에는 8.3%로 떨어질 전망이다.

 

단, UN의 이런 전망은 EU사태가 그럭저럭 수습되는 경우이며 만일 유로가 붕괴하는 경우라면 성장률은 급락할 것이다. 작년 말 UN은 비관적 상황의 경우 0.5% 성장을 예측했다. 그럴 경우 중국의 수출이 급감하고 이에 따라 한국의 경제성장률도 폭락할 수 있다.

 

최근 루비니(Roubini) 뉴욕대 교수가 2013년에 닥칠 것이라 예언했던 "완벽한 폭풍(Perfect Storm)"이 이미 불고 있다고 한 것 역시 예사로이 넘길 수 없고,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스티글리츠(Stiglitz) 컬럼비아대 교수 등 경제학자들이 유럽의 앞날을 비관적으로 보는 것도 심상치 않다.

 

그런데 정부는 IMF 4월 전망을 좇아 세계경제성장율 전망을 3.5%로 잡았다. 작년 말 전망에 비해 오히려 0.1%p 높였다. 그리고는 한국의 수출 증가율 급락을 예측했다. "대공황에 버금가는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경제수장들의 발언과 이런 통계는 도대체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 


수출 감소에 대한 위기의식 없이 건설투자로 대응

 

어쨌든 [표 1]에서 읽을 수 있듯이 해외부문은 이번의 성장률 전망치 조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정부의 전망으로는 가장 큰 문제는 소비에서 발생하고 이를 설비투자의 증가 그리고 건설투자 증가가 메우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런 전망은 아마도 1사분기 민간소비가 1.5% 증가하는 데 그쳤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6월 7일에 발표된 한은의 '1/4분기 국민소득(잠정)' 추계에 따르면 가계소비는 0.9% 증가했을 뿐이고 정부소비는 3.4%에 달했다. 또, 1사분기 민간소비는 내구재 소비가 전기 대비 3.9% 증가하며 주도했는데 내구재의 성격상 이런 증가세가 앞으로도 유지되기는 어렵다. 2011년의 경우는 마이너스였다. 더구나 가계부채 때문에 중산층 이하의 민간소비는 오히려 감소할 가능성이 큰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1사분기의 반도체 장비 수입 급증에 힘입어 8.6%의 증가율을 보인 설비투자가 정부 예측대로 5.6% 증가할 수 있을까? 그 답은 같은 정부 문서 내에서 찾을 수 있다. 아래 [그림 1]의 오른쪽 그래프에서 보듯이 2000년 이래 설비투자와 수출증가율은 밀접하게 연관되고 있다. 그렇다면 한편으로 수출증가율이 19%에서 3.5%로 대폭 감소하는데 다른 한편으로 설비투자 증가율이 3.7%에서 5.9%로 올라가리라 예측하는 근거는 도대체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기획재정부가 전망한 2012년 하반기 설비투자와 수출 동향 2000년 이래 우리나라의 수출과 설비투자는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그러나 2012년 하반기 수출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정부는 설비투자는 증가한다는 모순된 예측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전망한 2012년 하반기 설비투자와 수출 동향2000년 이래 우리나라의 수출과 설비투자는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그러나 2012년 하반기 수출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정부는 설비투자는 증가한다는 모순된 예측하고 있다. ⓒ 새사연

결국, 정부가 직접 성장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문은 건설뿐이다. 작년에 5.0%나 감소했기 때문에 금년 성장률을 높이는 것 또한 용이할 것이다. 문제는 현재의 부동산 경기가 살아날 줄 모른다는 데에 있다.

 

정부의 정책이 내수확충에 맞춰진 것, 그리고 단기에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공공건설을 늘리는 방향으로 잡힌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과 재정을 확대해서 가계부채를 관리하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대증요법이 되풀이되었을 뿐, 실제로는 "경기보완효과가 큰 SOC 사업을 중심으로 공공기관 민간투자를 1.7조 원 수준 확대"와 도로, 철도 등에 대한 민자투자 활성화가 경기 대책의 핵심으로 보인다. 역시 토목이다. 불행히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는 경제수장들의 혁명적 인식 전환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폭탄선언과 폭탄 돌리기가 대선에서 의미하는 것

 

금년 한국의 경제성장은 작년 말 우리 연구원의 예측대로 2% 중·후반대에 머무를 것이다. 6월 초 경제수장들의 연이은 폭탄선언은 추경예산을 편성하여 토목 건설 등을 확대하기 위한 정지작업이었던 셈이다.

 

이런 정책은 선거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새누리당과 박근혜 의원에게도 안성맞춤이다. 위기에 빠진 저소득층을 지원하고 중산층의 파산을 뒤로 미루겠다는 데 반대할 정당이나 정치인이 어디에 있겠는가? 구조조정에 직면한 건설회사들도 공공건설과 소형 민간임대주택 건설로 한숨을 돌릴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나아가서 경기와 가계부채를 이유로 금리를 낮출 것이고 빚으로 빚을 돌려막는 정책도 되풀이될 것이다. 물론 가끔 고리채에 대해서는 철퇴도 날릴 것이고 언론은 대서특필할 것이다. 잘 하면 폭탄은 차기 정부로 이월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경제수장들의 놀라운 폭탄선언은 결국 폭탄 돌리기를 위한 것이었다.

 

만일 국제기구나 정부의 소원대로 내년부터 경제가 본격적으로 살아난다면 이런 폭탄 돌리기도 효과적인 정책이 될 것이다. 소득이 늘어나서 부채의 비율이 떨어지면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예측대로 세계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진다면 그것은 점점 더 큰 우환덩어리가 될 것이다.

 

이제 과거와 같은 성장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구조조정과 정반대 방향의 구조개혁이요, 정책 기조의 완전한 대전환이다. 당장 사교육비, 민간의료보험비, 주택 관련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서 민간소비를 늘려야 한다. 민영화나 규제완화의 정반대로, 공공성의 강화로 중산층 이하의 민간소비를 늘릴 수 있다. 더 근본적으로는 최저임금 인상과 EITC(근로장려세제) 확대, 네트워크형 중소기업의 생산성 확대, 사회적 경제에 의한 공동체 발전이 앞으로 '아래로부터, 안으로부터의 성장'을 주도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박정희 시대 이래 일관된 경제정책기조인 수출주도와 적하효과라는, '밖으로부터, 위로부터의 성장' 기조를 완전히 뒤집는 것이다.

 

줄푸세와 복지정책, 심지어 경제민주화를 동시에 시행하겠다는 박근혜 의원한테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정책들이다. 이런 '대전환' 없이는 CEO형 대통령도, 독재자형 대통령도 현재의 문제를 풀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지도자 하나 바꾼다고 과거의 정책이 요술을 부릴 수는 없는 법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정태인 기자는 새사연 원장입니다. 


#하반기 경제전망#국내경제 전망#경제성장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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